불법 홍길동이 난무하는 수의사처방제‥법개정·단속 시급

처방대상 동물약 사용도 ‘농장 마음대로’..직접진료 100% 원칙 지키려면 환경 선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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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6년차를 맞이한 수의사처방제는 아직 출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자처방전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과 처방전 편법 발급에 대한 엄정한 단속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양돈수의사회는 22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개최한 2018 수의양돈포럼에서 양돈업계의 수의사처방제 현황과 제도개선 방향을 조명했다.

(왼쪽부터)22일 수의양돈포럼에서 수의사처방제 토론에 나선 엄길운 TF팀장,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전무, 김대균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 정현규 양돈수의사회장
(왼쪽부터)22일 수의양돈포럼에서 수의사처방제 토론에 나선
엄길운 TF팀장,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전무, 김대균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 정현규 양돈수의사회장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도 농장 마음대로..수의사 진료는 ‘선택 옵션’

이날 양돈수의사회 처방제TF팀(팀장 엄길운)의 발표와 포럼 참가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돈 업계에서 수의사처방제는 제도도입의 취지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은 수의사의 직접진료(대면진료) 후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양돈농장이 수의사 없이도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농장은 수의사 진료 여부와 상관 없이 쓰고 싶은 약을 주문한다. 주문된 약이 처방대상이면, 약품상과 결탁했거나 고용된 수의사가 처방전을 발급해준다.

수의사가 직접 배달을 다니며 진료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직접 진료 없이 명의 대여 식으로 발급만 하는 ‘처방전 전문 수의사’가 대부분이다.

결국 ‘진료→처방전→구입’으로 이어져야 할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사용 순서가 ‘구입→(진료)→처방전’으로 뒤집혀 있는 셈이다.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이라도 수의사의 직접 진료는 ‘선택 옵션’에 불과하다.

이날 포럼에 참가한 한 양돈수의사는 “농장을 방문해 진료하고 어떤 약품이 적합한지 안내해주지만 그걸로 끝이며, 처방전을 발급하지도 농가가 요구하지도 않는다”면서 “(처방대상이든 아니든) 약품 구입은 전적으로 농가가 알아서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처방하고, 하루에 10개 이상 농가 방문하고..‘홍길동이 난무한다’

이처럼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을 발급하는 것은 수의사법 위반이다. 처방제 도입 6년차가 되기까지 이렇다할 단속 한 번 없는 사이에 불법 정황은 업계 전반에 만연했다.

이날 포럼에 따르면, 최근 감사원이 2017년 수의사처방제 발급 실태를 조사해 ‘해외 출국한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한 사례’ 6건을 적발했다.

대한수의사회가 2017년 전자처방전 발급기록을 분석한 결과 과다처방 의심건수는 45건에 달했다. 하루 10건 이상의 처방을 내리면 과다처방으로 의심하는데, 하루 10개소 이상의 농장을 직접 방문해 진료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단시간내에 멀리 떨어진 농장들을 대상으로 처방전을 발급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는 후문이다.

축지법을 쓰는 홍길동이 수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면, 이들 모두 직접 진료 없는 불법 처방전 발급이 의심되는 사례들이다.

게다가 이들 모두 전자처방전 발급기록만 가지고 파악한 불법 정황이다. 동물병원이나 도매상이 보관하고 있을 수기처방전의 발급 실태는 손도 못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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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진료 100% 원칙` 세우려면..전자처방전 의무화 바탕 강력 단속 선행돼야

이날 포럼은 ‘수의사처방제는 농장이나 수의사가 아닌 국민보건을 위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처방제는 내성 문제가 심각한 항생제를 포함해 위험한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처방에 따라 사용함으로써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다. 수의사의 직접진료를 처방전 발급 조건으로 못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양돈수의사회 처방제 TF는 감사원 점검이나 처방제 운영 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일선 양돈수의사들이 앞으로 직접진료 100%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엄길운 팀장은 “직접진료 후 처방은 수의사의 법적 의무”라며 “과도기적인 불편함은 있겠지만 우리의 의무를 우리가 지켜야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의사처방제를 통한 항생제 내성 관리는 국민 보건을 위한 일”이라며 “힘들어도 농장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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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선 임상수의사의 자세 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수의사 직접진료 없이는 농장이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는 제도적 환경에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처방전 전문 수의사의 불법 발급에 대한 단속이 불가피하다.

단속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효성 있는 효과를 얻으려면 ‘전자처방전 의무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기처방전을 제대로 단속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단속에 나선다 한들 업소별로 보관하는 처방전을 일일이 뒤져 불법 의심사례를 적발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시군청에 동물병원, 동물약품판매업소 관리 담당자는 많아야 1명인데, 1년치만 따져도 수천 건이 넘을 처방전을 다 읽어볼 수도 없다.

때문에 어차피 전자처방전을 기반으로 단속에 나설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수기처방전 작성 방식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를 막기 위한 전자처방전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1년 넘도록 상임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에는 4월에 상임위를 통과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지만, 개헌 정국이 국회 운영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우연철 전무는 “오는 5월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포함한 다수의 의약품이 처방대상으로 합류하고 전자처방전의무화 법개정이 진행됨에 따라, 처방전 불법 발급 문제에 대한 강력한 내부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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