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물원 속 동물들의 행복을 위한 노력

북미지역 동물원 4개소의 동물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탐방기/LG글로벌챌린저 ‘GAZA’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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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에 주목했다.

동물원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하 전시동물)들은 온전히 보호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스트레스는 정형행동으로 드러난다. 몸의 일부를 계속 긁거나, 의미 없이 몸을 흔들거나,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하는 이상행동으로 고통을 표현한다.

하지만 아직 많은 시민들은 그러한 문제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동풍부화’를 알게 됐다.

행동풍부화란 동물원에 전시되어 있는 동물들에게 야생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정신적 자극들과 유사한 물체, 냄새, 소리 등에 변화를 주고 야생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행동과 습성을 유발시켜, 동물들의 생활을 전보다 생기 있게 유지시켜 주는 활동을 의미한다.

전시동물들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킴으로써 정형행동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주제로 삼아 ‘LG글로벌챌린저’ 공모전과 탐방을 준비하게 됐다. 캐나다와 미국에 위치한 동물원 4개소를 방문해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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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동물원 오랑우탄 전시장의 행동풍부화 환경

 

토론토 동물원

우리가 제일 처음으로 탐방한 곳은 토론토 동물원이었다. 토론토 동물원은 우수한 교육 및 보존 활동으로 캐나다 최고의 동물원이자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다. 토론토 동물원의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배워 한국에 정착시킬 방법이 있을지 배우고 싶었다.

방문에 앞선 사전조사에서 “토론토 동물원은 “Daily enrichment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을 확인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동물원 현장의 ‘행동풍부화 데일리 스케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일 담당 사육사들이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실시내역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두 번, 세 번까지도 행동풍부화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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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사육사들이 매일 행동풍부화 실시기록을 남긴다

이 밖에도 가장 눈에 띄었던 부서는 행동풍부화에 활용되는 도구를 직접 만드는 곳이었다.

토론토 동물원의 매니저인 에릭 콜(Eric Cole)씨는 “먼저 아이디어를 짜내 디자인한 후 매니저에게 제안하여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살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몰라도, 없다면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 행동풍부화에 대한 토론토 동물원의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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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풍부화를 위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하는 토론토 동물원의 공방

피닉스 동물원

애리조나주의 피닉스는 건조하고 더운 기후라 마치 사막 같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피닉스 동물원은 이처럼 더운 기후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동물들과 피닉스의 토종 동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물원 내부는 마치 생태공원에 온 것 마냥 많은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로서 동물들의 양식으로 활용된다. 이들을 관리하는 정원사도 따로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전시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피닉스 동물원의 행동풍부화 큐레이터 힐다(Hilda)씨는 “동물의 2가지 주요 행동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풍부화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코끼리의 주된 행동은 ‘걷기’와 ‘먹기’이므로 먹거나 걸을 때 흥미를 자극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사회성 풍부화(social enrichment)’도 강조했다. 야생에서 모든 동물은 자기 종이나 다른 종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매달 동물들에게 조금씩 변화를 주고, 항상 바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동물의 습성을 효과적으로 유도해낼 수 있는 풍부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배설물’이다. 배설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동물들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여러 동물들의 배설물을 채취해 서로 바꾸어 사육장에 뿌려 놓는 것만으로도 동물들은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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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동물원 전시장의 모습

환경풍부화도 행동풍부화 만큼이나 중요하다.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로 전시장을 조성한 것도 그 일환이다. 콘크리트 바닥은 절대 없다. 오로지 흙과 모래와 풀로만 바닥을 구성했다.

힐다 씨는 동물들에게 인공적인 바닥이 얼마나 안 좋은 지 강조하면서 “이미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어 있는 동물원들은 그 위에 흙과 모래를 깔고 풀을 심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조류 전시장의 경우 3D 전시장으로 조성하여 새들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모든 동물의 사육장에는 동물들이 관람객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세인트루이스 동물원

포레스트파크 안에 위치한 세인트루이스 동물원은 무료 입장 덕분에 관람객들이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세인트루이스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동물을 위한 시민과 기업의 기부시스템이 잘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사람에게 판매할 수는 없지만 먹는데 문제가 없는 음식이나 과일을 기업으로부터 제공 받아 행동풍부화에 사용한다. 동물원은 의자나 건물, 다리와 같은 동물원 내의 이용 시설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 넣음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사육사들이 행동풍부화에 필요한 재료들을 위시리스트로 작성하여 위시트리에 걸어 놓으면, 시민들이 이를 확인한 후 동물들에게 선물하는 식으로 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인트 루이스 동물원의 행동풍부화 담당자는 “시민들이 기부를 하면, 그 것으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인 환경조성에 그치지 않고, 각 동물들이 ‘도전’하는 방식으로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시민과 기업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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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루이스 동물원 바닥 타일에 기부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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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루이스 동물원의 행동풍부화 위시리스트와 위시트리

  

디즈니 애니멀 킹덤

마지막 탐방지는 디즈니 애니멀 킹덤이다. 디즈니 애니멀 킹덤 측은 “워낙 규모가 커서 행동풍부화를 진행하려면 일률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며 ‘S.P.I.D.E.R. Framework’라는 행동풍부화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각각의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목표설정(Setting Goals), 계획(Planning), 실행(Implementing), 문서화(Documenting), 평가(Evaluating), 재조정(Readjusting)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디즈니 동물원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동물 행동풍부화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는 것이었다.

여름 어린이 캠프에서는 어린이들이 행동풍부화가 무엇인지 배우고 실제 프로그램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행동풍부화의 목적을 알리고 이해를 돕는 시민 과학 워크숍도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 공개된 연구실에서 동물의 호르몬 검사나 혈액 검사 등 관리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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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 공개된 디즈니 동물원 내부 연구실

탐방을 마친 후

13박14일의 탐방,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이었다.

토론토 동물원, AZA(Association of Zoos & Aquariums), 스미소니언 국립 동물원, 세인트루이스 동물원, 피닉스 동물원, 디즈니 애니멀 킹덤 모두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친절한 인터뷰와 설명은 물론이고 자료들도 한아름 안겨줬다. 큰 감사와 행복을 느꼈다.

전시 동물을 위한 행동풍부화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국내 전시 동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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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피닉스 동물원 큐레이터 힐다 씨와
정유영, 이은영, 김경은, 황혜진 팀원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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