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의테크니션 제도화②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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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테크니션 제도화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의 제도화를 놓고 찬성과 반대 입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수의계 내부에서 ‘자가진료 제한이 선결된다면 수의테크니션 제도화에 찬성해줄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최근 관련 발표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자가진료 제한과 테크니션 제도화를 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리란 기대도 나오지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올바른 접근방식인지는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응답하라 1994

1994년, 수의진료권 관련 법제의 변혁이 일어났다. 동물병원에서 수의사 진료에 따라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축주가 소유한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가 전면적으로 허용됐다.

당시만 해도 ‘수의사를 부르기 힘든 위치의 농장에서 간단한 의약품을 급한대로 활용하게 해주자’는 취지로 추진됐던 자가진료는 지금에 이르러 엄청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약품 오남용, 항생제 내성위험 확대, 비전문가 진료행위로 인한 동물학대뿐만 아니라 임상수의사의 생존도 위협한다.

1994년 법령 개정 당시에 이러한 부작용을 예견할 수 있었을지, 이러한 위험성을 수의사들이 인지하고 우려했었는지는 의문이다.

시계를 돌려 2016년으로 돌아오면, 이제는 당시 전면 허용됐던 자가진료의 범위를 다시 줄이기 위해, 수의진료권 일부를 위임하는 테크니션 제도화를 거래카드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도 수의사들도, 테크니션 제도화로 인한 변화를 어느 정도까지 예견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과연 ‘자가진료를 제한(자가진료의 허용범위를 축산업에 한정시킴으로써 반려동물에서의 자가진료를 금지)할 수만 있다면 그깟 테크니션 제도화의 부작용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치부할 수준인 것인가. 아니면 ‘Again 1994’가 될 것인가.

 

테크니션 제도화 도입을 위한 검토의 초점은 불법진료가 아니다

자가진료 제한 선결을 조건으로 테크니션 제도를 도입한다는 입장 저변에는, 수의진료권이 침해 받고 있는 기존 문제에 대한 별다른 개선 없는 채로 진료권 일부를 다시 위임하겠다는 정책접근에 대한 반감이 자리한다. 이에 더해 진료 관련 기술을 익힌 테크니션이 동물병원 외부로 배출되면서 불법진료 문제가 심화될 것을 우려한다.

테크니션 제도화로 불법진료가 늘어날 것인지를 두고서는 찬반 양측의 예측이 갈리지만, 반려동물 불법진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가 자가진료 제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가진료 제한과 연계하여 테크니션 제도화에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불법진료 문제 외에도 진료보조인력의 합법화가 임상환경에 끼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테크니션이 제도화된 미국에는 수의사 1~2명이 테크니션 20~30명을 고용해 예방의학 등 간단한 진료를 공장처럼 빠르게 돌리는 형태의 동물병원이 존재한다. 미국의 임상환경은 이러한 병원을 수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의 임상환경이 이러한 형태의 동물병원 출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

또한 테크니션 제도화가 인턴을 비롯한 진료수의사 고용 수요를 감소시킨다면, 그에 따른 개원압박 증가와 경쟁 심화가 또 다른 변화를 유발할 것이다.

1994년의 교훈을 떠올려보면 아직 떠올리지 못한,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즉 테크니션 제도화 여부는 그 자체로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협의할 사안이다. 마찬가지로 자가진료 제한 또한 그 자체만으로도 추진해야 할 정당성이 충분하다. 제도화가 임상환경에 어떠한 변화를 유발할지도 잘 모르고, 임상수의사 간 공감대도 없는 상태에서 ‘거래의 카드’로 손쉽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형태로 현안이 추진된다면, 테크니션 제도화로 정해진 결론 속에서 ‘자가진료 제한이라도 얻어 내자’는 정치적 접근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미성숙된 환경 속에 정치적으로 도입된 제도로 미래의 수의사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피해는 누구의 책임인가.

 

테크니션 제도화는 먼저 국내 임상환경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워 이를 토대로 한 수의임상발전의 ‘수단’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내 수의학교육과 수의사수급 등 여러 현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갖고 검토할 사안이며, ‘일자리 창출’이라는 외부목적을 위해 도입시점을 정해선 안 된다.

“1년차 인턴수의사의 고용이 진료보조인력 제도화로 위협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테크니션 도입이 섣부르다는 증거”라는 한 수의사의 자조 섞인 지적이 가슴 한 켠에 남는다.

 

테크니션 제도화 모습을 조망해보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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