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황윤 후보 출마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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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난 23일 서울 한남동 일원에서 열린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출범식에서 비례대표 1번 황윤 후보가 밝힌 출마의 변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편집자주>

SAMSUNG CSC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비례대표 1번 황윤 감독

저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둔 엄마이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고, 영화를 만들다 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제 꿈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카메라를 드는 영원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사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던 제가 20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실질적인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비인간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제도에 대한 저의 관심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동물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 겨울,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 고릴라, 침팬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머리를 흔들고 끊임없이 같은 공간을 왔다갔다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전시장 유리벽을 두들겼습니다. 그들의 눈동자는 제 평생 마주한 그 어떤 눈동자보다 슬픈 눈동자였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저는 제가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야생의 고향에서 붙잡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땅으로 이동되어 철창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코끼리, 오랑우탄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이 질문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눈으로 본 모습을 ‘보았다고 하지 않고 들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눈동자와 표정이 제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고향의 초원으로. 밀림으로 가고 싶다고. 스태프도 없었고, 장비는 캠코더 하나였으며 그 해 겨울은 70년 만에 폭설이 내려 카메라를 든 손은 얼어붙기 일쑤였지만, 제 가슴만은 뜨거웠습니다.

철창에 갇힌 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저는 매일 동물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인간 세계에 전하는 통역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동물원에 사는 ‘크레인’이라는 새끼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작고 약했던 새끼 호랑이 크레인은 아무도 없는 실내에서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울고 울었습니다. 저는 한 손으로는 크레인을 촬영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크레인을 쓰다듬으면서,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크레인은 멸종의 절벽으로 내몰리며, 인간의 전시상품이 되어 고통 받는 생명들을 대신하기 위해 제 카메라 앞에 나선 메신저이자, 제가 가야 할 인생의 길을 알려 준 은인이며, 이후 저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영원한 주인공입니다.

개발로 오염된 백두산과 두만강, 철창을 잡고 몸부림치던 사육곰들, 그리고 12개의 도로를 건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던 야생 삵 팔팔이, 고기이기 이전에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명임을 알려 준 엄마 돼지 십순이와 새끼돼지 돈수와 공장의 돼지들. 그들은 저에게 또 다른 크레인이었습니다.

어쩌면 크레인이 그들을 저에게 보낸 것일까요? 그들도 가서 만나보라고. 그들의 이야기도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또 다른 이야기가 곧바로 저를 찾아왔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매번 무거운 장비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작가이자 운동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작가가 이야기의 주제를 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가 작가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들로부터 부름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이런 쓰임에 저는 기꺼이 응해왔습니다. 제가 그들을 감히 구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오히려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비로소 저는 저에게 따뜻한 심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동물을 좋아했냐며. 또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나는 동물에 관심이 없다고요.

이런 반응을 접할 때면 난감합니다. 노동자를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다고 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언제부터 그렇게 노동자를 좋아했냐고 묻지 않습니다. “저는 노동자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대놓고 이야기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유독 비인간 동물에 대해서는 호불호,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할까요?

제가 비인간 동물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그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인간 동물들은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백만년 동안 대대손손 살아온 삶의 터전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기고, 인간의 길에서 차 바퀴에 치여 먼지처럼 사라지고, 멸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오락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공연장에서, 전시장에서, 실험실에서, 공장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은 나치다. 그 경계는 동물들에게는 영원한 트레블링카”라고 작가 아이작 싱어가 말했습니다. 트레블링카는 폴란드에 있었던 나치 수용소입니다.

그러나 작가 아이작 싱어가 일컫는 트러블잉카는 나치 수용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를 제도와 문화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우리 모두의 현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불공정한 구조에 대하여 제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는 침묵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동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거대한 폭력에 대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동물애호가가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불의를 보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로서,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불공정한 관계인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 작품으로 질문을 던져 본 것입니다.

인간은 대체 무엇이길래 어머니인 강과 산을 파괴하고, 이 거룩한 대지에서 태어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 형제를 착취하고 극단적인 고통으로 몰아넣고 멸종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것일까요. 그러고도 인간이 웅장하기를 바라고 평화롭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사람살기도 힘드니 동물과 자연이 사는 권리를 불공평하더라도 나중으로 미루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100년 전, 노예제도에 대해 찬성했던 사람들도 폐지를 외쳤던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랜 세월 남성들도 여성들에게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성이 남성의 도구가 아닌 것처럼, 유색인종이 백인들의 도구가 아닌 것처럼, 비인간동물 역시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자연과 동물을 착취하는 우리들의 폭력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르스가 근본적으로 생태계 파괴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인간사회와 접촉이 잦아진 것이 원인이었다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전에 없던 전염병이 해마다 창궐하고 살처분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살처분을 보면서 저는 정말 괴롭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러다가 천벌을 받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메르스, 사스, 에볼라 등은 모두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무지와 탐욕의 결과입니다. 해마다 창궐하는 이러한 전염병들의 공통점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것입니다.

2009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는 원래 명칭이 돼지 독감이었습니다. 학계에 따르면 돼지만 걸리는 독감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어서 인간에게 전이된 것으로서 멕시코에 위치한 대규모 돼지 도축장이 원인이었다고 밝혀졌습니다.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었고, 생후 10개월 된 태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드나드는 식구도 없고 손이 닳아지도록 씻고 또 씻었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력은 놀라웠습니다. 아들은 결국 돼지독감에 걸렸고 40도가 넘는 고열에 생사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살처분과 소독이 정말 전염병을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제도화된 동물학대를 보면서 제가 더욱 두려운 것은 생명 존엄성 훼손에 대해 무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살처분을 해마다의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본과 이윤을 위해 생명을 극한으로 착취하고 병에 걸리면 착취하는 행태가 학교폭력, 군대폭력, 성폭력, 노동자에 대한 폭력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대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로 전이됩니다.

무엇보다 야생동물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늘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생태계라는 경이한 생명의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SNS를 통해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북극곰의 사진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기후 변화와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급속하게 녹아서 북극곰이 아사할 지경에 이른 이 모습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후쿠시마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아들과 함께 봤습니다. 방사능 수치의 진실을 덮으려는 일본 정부에 속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방사능을 측정하고 체르노빌에 달려가 조사하는 과정이 담겨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아직도 기형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지역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암에 걸리고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다음이 한국일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요.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가 점점 황량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에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세월호, 밀양, 메르스, 후쿠시마, 뼈만 남은 북극곰이 모두 다 화면에 보입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입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잠든 아들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이른 새벽 길을 나섭니다. 어깨는 무겁고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며, 시간이 없어서 끼니를 버스에서 해결하는 일도 많습니다. 돈도 많이 못 법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가는 길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제 영화를 보고 다른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말하는 관객들을 만날 때 저는 ‘영화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는 제게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 이대로 재앙의 땅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저에게 또 다른 마이크를 잡도록 했습니다.

문화의 힘은,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은 법과 제도가 뒷받침했을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국회로 가고자 하는 이유는 카메라를 들었던 이유와 똑같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죽음의 땅이 되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비인간 동물들을 위해, 여성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서식지인 지구를 위해 저는 이 나라 국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20대 총선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합니다.

‘엄마라서 안돼요, 후보로 나갈 수 없습니다’라던 거절의 이유가 거꾸로 출마의 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이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제 아들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재앙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쓰레기와 방사능과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구가 아닌 맑은 강, 오염되지 않은 땅, 아름다운 숲에서 아이들이 놀고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전에는 많았지만 언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 개구리와 제비가 다시 돌아와 마을에서 흔히 마주치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북극곰이 적어도 아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싶습니다.

<본문은 데일리벳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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