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양이도 철새도 떠나지 않는 섬-홍도에서 시작하는 주민 주도형 생명공존 모델
국경없는 수의사회 김재영 대표 기고

고양이도 철새도 떠나지 않는 섬 – 홍도에서 시작하는 주민 주도형 생명공존 모델 : 국경없는 수의사회 김재영 대표
최근 홍도에서 고양이가 철새를 사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해결 방안의 하나로 국경없는수의사회가 홍도 고양이를 대상으로 집중 중성화수술(TNR)을 추진했지만 무산돼 매우 아쉽다.
그러나 철새 감소는 홍도만의 현상이 아니며 고양이 포식 하나로 설명할 수도 없다. 다른 도서 지역과 내륙에서도 서식지 감소와 훼손, 기후변화, 농약과 환경오염, 인공조명과 건물 충돌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양이를 섬으로 데려온 것도 인간이고 철새가 살아갈 환경을 변화시킨 것도 인간이다. 인간이 만든 문제라면 그 책임 역시 인간이 져야 한다. ‘고양이냐, 철새냐’를 선택하기보다 다양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두 생명의 피해를 함께 줄이는 책임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제거가 아닌 책임 있는 공존으로
살처분이나 이주방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살처분은 비인도적이며,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낯선 지역으로 옮겨 방사하면 익숙한 생활공간과 돌봄 환경을 잃어 심한 스트레스와 생존 위험에 놓일 수 있다.
TNR도 소수의 고양이에게 일회성으로 시행해서는 개체수 조절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섬 전체 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사하고, 짧은 기간에 높은 비율로 집중적인 TNR을 시행해야 한다. 이후에도 새로 태어나거나 유입되는 고양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섬에서 고양이를 모두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그 이후의 생태계 변화를 생각해야 한다. 고양이가 사라진 상태에서 음식물쓰레기와 수산 부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설치류가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주민의 생활과 위생에 피해를 주고 새의 알과 어린 새에게도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고양이를 없애기보다 고양이와 철새가 마주치는 시간과 공간을 줄여야 한다. 철새 핵심지역은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고양이는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TNR과 개체등록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 철새 지역을 자주 이용하는 고양이는 안전한 생활공간으로 유도하고, 음식물쓰레기와 설치류, 신규 고양이 유입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고양이가 머물고 싶은 생활거점을 만들자
집고양이의 조상은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 곡식 창고 주변에 모여든 설치류를 따라 인간의 생활공간 가까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양이가 넓은 영역보다 안전한 은신처와 안정적인 먹이·물·휴식 공간이 있는 곳을 생활터전으로 삼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홍도에서도 철새 핵심지역에서 떨어진 주민 생활권에 관리형 급식소와 쉼터, 놀이공간을 조성해 고양이가 머물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과 양만 급식하고, 남은 사료와 배설물은 즉시 치워야 한다. 급식소에서는 고양이별 출석과 건강상태, 새로 유입된 고양이도 확인할 수 있다.
급식과 놀이만으로 사냥 본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환경풍부화는 고양이가 주민 생활권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사냥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철새 지역의 고양이 출현과 피해가 감소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효과가 부족하면 위치와 운영 방법을 바꿔야 한다.
주민·전문가·행정이 함께해야 한다
홍도에서 일회성 중성화수술만 시행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주민과 수의사, 조류생태전문가, 신안군과 국립공원공단이 역할을 나눠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수의사는 고양이의 개체별 건강기록을 만들고 중성화·예방접종·기생충 관리와 질병 치료를 담당해야 한다. 조류생태전문가와 함께 철새의 부상과 폐사 원인, 고양이·철새·설치류의 관계도 과학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철새 사체가 발견됐다고 외형만으로 고양이의 포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충돌, 탈진, 감염병, 기아와 다른 동물에 의한 피해 등 여러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
정책의 중심은 주민이어야 한다. 고양이가 어디에서 생활하고 철새가 언제 어디에 내려앉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홍도 주민이다. 주민대표·신안군·국립공원공단·수의사·조류생태전문가가 참여하는 ‘홍도 생명공존협의체’를 구성해 조사 방법과 급식소 위치, 철새 지역을 자주 이용하는 고양이의 관리, 기금 사용을 함께 결정해야 한다.
주민을 생명공존 관리인과 생태해설사로 위촉해 고양이 점호, 철새 관찰, 음식물쓰레기 관리와 관광객 안내를 맡기고 정당한 활동비를 지급해야 한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이 주민의 자부심과 일자리, 소득으로 이어질 때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생명공존을 홍도의 새로운 가치로
일본 다시로지마와 대만 허우퉁은 고양이를 지역의 상징과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홍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양이와 철새를 과학적으로 보호하는 ‘생명공존 생태섬’을 목표로 해야 한다.
주민이 고양이·철새 생태탐방과 원헬스 교육, 생명공존 캐릭터와 지역상품을 운영할 수 있다. 관광객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생명공존기금은 주민 관리인의 활동비와 고양이 의료, 철새 보호와 생태조사에 사용하고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홍도는 더 이상 고양이와 철새가 대립하는 갈등의 섬이 아니라, 생명 존중을 새로운 문화·관광·교육의 가치로 발전시키는 섬이 돼야 한다.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면서 철새를 보호하고, 그 과정이 주민의 자부심과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홍도가 국내외에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생명공존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