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동물진료비 전수 공개? 협의 없는 강행은 제도를 만들지 못한다

진료비 전수 공개 입법예고 강행에 대한 한국수의임상포럼(KBVP)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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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임상포럼(KBVP)은 근거 중심 수의학(EBM)의 확립을 사명으로 하는 임상 학술 조직으로서, 지난 8월 6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강행한 개별 동물병원 진료비 전수 공개 시행규칙 입법예고와 이에 대한 대한수의사회의 8월 12일 성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대한수의사회는 그동안 표준영수증 도입 등 펫보험 활성화에 협조해 왔고, 이번 성명에서도 조건 없는 반대가 아니라 유권해석 사례집 발간, 무자격 진료 단속 강화, 나아가 자기 직역에 대한 처벌 근거 마련까지 포함한 기반 과제의 선결을 요구하며 협의의 문을 열어 두었다. 이는 제도를 거부하는 단체의 언어가 아니라 제도를 제대로 만들고자 하는 단체의 언어다. 그런 협의 상대에게 단 한 마디의 사전 협의도 없이 입법예고가 통보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진료비 공개는 전국 4천여 개 동물병원의 조사·응답·게시 실무 위에서만 작동하는 제도다. 그 실무를 감당할 당사자와의 협의를 생략한 채 강행된 제도는 부정확한 데이터, 현장의 혼란, 그리고 보호자와 수의사 간의 분쟁이라는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협의는 이해집단에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정책 품질의 최소 조건이다. 나아가 협의하던 상대를 무시하는 선례가 용인된다면, 앞으로 어떤 직역 단체도 정부와의 신뢰 위에서 조건부 수용과 단계적 이행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 강경 반대만이 합리적 전략이 되는 환경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만드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발주한 연구용역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은, 어떤 진료비 공개 정책도 작동하려면 표준 진료코드체계 구축을 비롯한 선행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로부터 8년, 선행작업은 이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자신이 만든 연구 결론을 건너뛰고 표준화 없는 원자료 전수 공개로 직행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한 적이 없다. 체중 등 특정 조건을 전제로 조사된 값을 실제 가격처럼 전수 나열해도 보호자에게 혼란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 역시 제시된 바 없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입법예고는 정책이 아니라 실적이다.

미국 인체 의료의 대규모 실증 연구들은 가격 공개만으로는 소비자 지출이 줄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국내 인체 의료의 비급여 공개에서는 공개 이후 다수 항목의 평균 가격이 오히려 상승하는 상향 평준화가 보고되었다. 미국수의사회(AVMA)는 가격 민감도 상승이 보호자의 진단·예방 진료 포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고했다. 영국조차 ‘정의된 진료행위’의 표준 목록과 품질 정보의 병행 제공, 규모별 단계 시행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다. 표준화 없는 전수 공개는 국제적 추세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전례 없는 실험이며, 그 실험의 비용은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치르게 된다. 상세한 근거는 KBVP 정책브리프 「가격 공개는 진료비를 낮추는가」(2026-08)로 이미 공개하였다.

첫째, 정부는 현 입법예고안의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대한수의사회를 포함한 수의계·소비자·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즉시 구성하라. 둘째, 협의체에서 표준 진료코드체계 구축, 맥락 정보 병기, 조사 데이터 검증·정정 절차, 단계적 시행, 효과 평가 체계, 진찰 후 비용 사전 설명 제도화 등 ‘작동하는 공개’의 조건을 우선 설계하라. 셋째, 2018년 연구용역이 제시한 선행과제의 이행 계획을 공개하라. 우리는 공개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 예고된 방식으로, 협의를 건너뛰고, 그 비용을 현장과 보호자에게 전가하는 정책이다.

KBVP는 표준 진료코드체계 구축과 진료 표준화 작업이 시작되는 즉시, 2017년 연구용역을 수행한 학술 조직으로서 모든 임상적 전문성을 다해 협력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한다. 제도는 만드는 것보다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어렵다. 정부가 협의의 테이블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

2026년 8월 13일 한국수의임상포럼(KBVP) 회장 김현욱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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