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직원 해고, ‘그냥’은 안 된다..인정받는 ‘정당한 해고’의 조건은?
최수환 노무사의 인사노무칼럼 ⑬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에게 직원 채용 후 첫 3개월, 이른바 ‘수습기간’은 일종의 안전장치로 여겨진다. 면접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진료 보조 스킬이나 고객 응대 태도, 동료와의 협업 능력 등을 검증해보고, 만약 병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비교적 부담 없이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 역시 수습(법적 성격상 ‘시용’ 포함) 기간 중의 해고에 대해서는 “정식 근로자보다 해고의 사유를 넓게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넓게 인정한다’는 말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되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중 상당수가 수습기간 만료 통보와 관련된 것이며, 병원 측이 “수습이라서 그만두게 했다”고 항변했음에도 부당해고로 인정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법원은 수습직원이라 할지라도 해고를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와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엄격히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조건을 갖춰야 수습 직원의 해고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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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적 느낌’이 아닌 ‘구체적 사실’로 증명해야 한다
수습 직원 해고 사건에서 병원 측이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는 해고 사유의 ‘추상성’이다. “우리 병원 분위기와 맞지 않다”, “업무 센스가 부족하다”, “성격이 예민하다”와 같은 원장의 주관적 평가는 법적 해고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
해고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근무 성적이나 업무 능력이 불량하다는 점이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수치로 입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의 테크니션을 평가한다면 ▲채혈 및 보정 과정에서 동물의 안전을 위협한 횟수 ▲약물 용량이나 용법을 오인하여 오투약 사고가 발생할 뻔한 사례 ▲내원객 응대 시 구체적인 불친절 발언 내용 및 컴플레인 접수 건수 등 ‘누가 봐도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 지표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사 시점부터 직무별 평가표(Evaluation Sheet)를 마련하고, 매월 혹은 정기적으로 점수를 매겨 기록으로 남겨두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기록이 없는 해고는 감정적인 처분으로 간주될 확률이 높다.
□ ‘개선의 기회’를 주지 않은 ‘기습 해고’는 부당하다
수습기간의 본질은 근로자의 적격성을 평가하고 교육하는 데 있다. 따라서 법원은 사용자가 해당 직원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3개월 내내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다가 수습 마지막 날 갑자기 “평가 점수가 미달이니 나가달라”고 통보하는 것은 부당해고로 판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당한 해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적’과 ‘기회 부여’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업무 처리가 미숙하다면 그 즉시 혹은 정기 면담을 통해 “보정 시 이러한 점이 위험하니 수정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이를 면담 일지나 업무 지시서 등의 문서로 남겨야 한다.
이러한 교정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았거나,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해고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즉, “우리는 가르치려고 충분히 노력했으나, 근로자가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 절차적 정당성: ‘구두 통보’는 무효, 반드시 ‘서면’이어야 한다
해고 사유가 아무리 명확하고 정당하더라도,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그 해고는 무효가 된다. 근로기준법 제27조는 해고의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수습 근로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많은 원장들이 “수습 종료니까 말로 해도 되겠지”라거나 “문자나 카톡으로 통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실수다.
수습 본채용 거부 역시 법적으로는 ‘해고’이므로, 반드시 병원 직인이 찍힌 종이 문서(해고 통지서)를 교부해야 한다. 이 통지서에는 단순히 “수습기간 만료로 해고함”이라고 적는 것보다는, “수습 평가 결과 직무 수행 능력 부족(평가 점수 미달, 잦은 지각, 구체적 실수 사례 등)으로 인하여 본채용을 거부함”과 같이 실질적인 사유를 함께 기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절차적 흠결은 노동위원회에서 다툼의 여지조차 없이 부당해고 인정으로 직결되는 사안임을 명심해야 한다.
□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의 ‘평가 기준’이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해고의 근거가 되는 규정이 사전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근로계약서나 병원 취업규칙에 “수습기간 중 근무 성적이 불량하거나 직원으로서 적격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본채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평가 점수 평균 70점 미만 시 본채용 거부”와 같이 근로자가 예측 가능한 구체적인 기준이 있다면 정당성 확보에 훨씬 유리하다. 근로자가 자신의 고용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가는 해고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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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수습직원의 해고는 원장의 ‘마음’이 아니라 ‘기록’과 ‘절차’로 결정된다.
수습기간은 무조건적인 해고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간이 아니다. 병원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수립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개선 기회를 부여하며, 최후의 수단으로 해고를 결정할 때는 법적 양식을 갖춘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만이 병원의 질서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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