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체의약품 제조시설에서 반려동물의약품 생산 허용

규제심판부, 인체용의약품 시설에서 반려동물의약품 생산 허용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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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약품 제조사의 동물약품 제조업 진입을 위한 제도개선 요청이 결국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단, 일부 반려동물용의약품에 한해 허용된다.

일선 동물병원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추측과 동시에, 약사예외조항에 따라 동물용의약품을 동물약국에서 바로 구입하는 보호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체용의약품 제조회사가 동물용의약품을 생산하려고 할 때는 동물약품 전용 제조시설을 별도로 만들고 검역본부로부터 동물약품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인체약품과 동물약품의 인허가 절차와 소관부서가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한 절차다(각각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체약품 제조회사들은 수 년 전부터 이것이 과도한 규제라며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인체약 제조시설이 GMP 기준에 맞춰 엄격하게 관리되고, 이미 동물병원에서 인체약을 동물진료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만큼, 동물약품 인허가 과정을 생략하거나 인체약 제조시설에서 동물약품을 생산에도 문제없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를 받는 인체약 제조회사는 선진국 수준의KGMP 기준을 적용받으며 3년마다 판정을 갱신해야 하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 소관의 동물약품 제조사들은 인체용보다 상대적으로 완화된 KVGMP 기준을 적용받으며, 제조업 허가 시 1번만 판정받는다.

인체용의약품 업계, 2014년부터 3번째 규제개선 요청

겸용의약품 허용부터 인허가 생략, 제조시설 공동사용 등 요구

결국, 반려동물의약품 일부 품목에 대해 제조시설 공동사용 허용될 듯

지난해 9월 ‘동물약품 제조업 진입을 위한 허가 및 시설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규제개선 요청이 국무총리실에 접수됐다. 2014년과 2016~2018년에 이은 3번째 규제완화 요청이었다. 앞선 두 번의 경우 최종 결론 없이 종결됐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수차례 논의가 이어진 끝에 인체약품 제조시설을 동물약품 제조에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동물약품협회가 ‘전면 불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고, 마지막에는 ‘반려동물용 신약만 허용하는 방안’까지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규제심판부는 30일(목) 최종 회의를 열고 인체의약품 제조회사가 기존 제조시설을 활용하여 반려동물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농식품부에 권고했다.

규제심판부는 민간 전문가가 규제개선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소관 부처에 의견을 권고하는 제도로 지난해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에 신설됐다.

이번 규제심판부 회의에는 이종영 중앙대 명예교수(의장), 한용만 KAIST 교수, 박영근 창원대 교수, 최진식(국민대 교수, 서동철 의약품정책연구소 소장(서면 참여)이 참여했다.

규제심판부는 “제약회사가 기존 제조시설 외의 동물용의약품 제조시설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중복투자 부담(수십억~수백억 원 소요)이 있고, 미국, EU,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인체의약품 제조시설에서 동물의약품 생산을 허용하고 있다”며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인체약품 제조시설은 엄격한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적용해 사람과 동물의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도록 제조시설을 철저히 관리·운영토록 하고 있다”며 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도 덧붙였다.

“영세한 국내 동물약품업계 피해 최소화 위해 반려동물만 허용”

다만, 규제개선 대상 동물용의약품은 ①국내에서 인체용으로 제조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 성분으로서 아직 동물용으로는 허가받지 않은 성분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의약품과 ②인체용·동물용으로 모두 허가받은 성분 중 기존 업계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은 22개 성분의 의약품으로 제한됐다.

22개 성분 : 과산화벤조일, 네오마이신, 네오스티그민, 라미프릴, 리도카인, 말레인산에날라프릴, 메데토미딘, 메벤다졸, 메트로니다졸, 아미노필린, 아트로핀, 에스트라디올, 염산테르비나핀, 이소플루란, 이트라코나졸, 인슐린, 텔미살탄, 프레드니솔론, 헤파린, 페니실린지나트륨-클레미졸+디하이드로스트렙토마이신, 페니실린지프로카인+페니실린지나트륨, 세파졸린

22개 성분은 인체용 및 동물용으로 모두 허가받은 성분(121개) 중에서 국내 인체약품 제조회사가 이미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는 성분으로 알려졌다.

규제심판부는 이에 대해 “축산 중심의 기존 동물용의약품업계(중소기업 위주)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대상 동물을 반려동물로 제한하고, 의약품 범위는 기존 업체가 생산하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의약품 중심으로 한정토록 권고했다”며 “인체용 제약회사가 고품질의 의약품 개발에 집중토록 하고 기존 업계와 상생을 통해 국내 동물약품 산업을 질적·양적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2021년 기준 국내 동물용의약품 시장 규모는 수출까지 포함해 총 1조 3,481억원 수준으로 영세하며, 그중 반려동물의약품 시장은 1,538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16.7% 수준이다. 또한, 반려동물의약품 시장 중 1,136억원 수입제품 매출이다(수입 비중 73.9%).

규제심판부는 규제개선이 시행되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반려동물용 항암제, 혈압약 등 고부가가치 의약품 생산이 가능해져 국내 동물의약품 산업이 미래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고품질의 다양한 반려동물 의약품을 공급함으로써 고가의 수입의약품이 대체되고, 선진국으로 동물약품을 수출하게 되며, 경쟁에 의한 가격하락을 통해 소비자 후생이 증대될 것으로 추측했다.

마지막으로 “수의사가 동물치료 시 적당한 동물용의약품이 없어 사용하던 인체용의약품(Extra-label use)이 동물에 적합하게 개량·공급되어 보다 안전한 동물치료와 동물복지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선 동물병원 의약품 사용에 미치는 영향 적을 듯

동물약국 이용 보호자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약사예외조항으로 국민 건강 위협 가능성 커져

한편, 이번 규제개선 권고에 대해 일선 동물병원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심지어, 현재 약국을 통해 공급받는 인체용의약품이 동물용으로 출시되면, 약품 수급과 사용이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인체약품 제조사가 반려동물용의약품을 쉽게 생산하면, 기존에 관계가 잘 형성된 동물약국을 통해 동물약을 대대적으로 유통할 것이라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22개 성분 중 상당수가 수의사처방대상 성분이지만,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수의사 처방전 없이 동물약국에서 합법적으로 판매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성분은 사람 범죄에도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규제개선을 계기로 다시 한번 ‘약사예외조항’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진정제 메데토미딘, 부교감신경차단체 아트로핀, ACEi 라미프릴 등은 모두 수의사처방전 없이 동물약국에서 보호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성분이다.

지난 2015년 동물용마취제를 이용해 사람을 납치·감금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일당인 조 모 씨와 최 모 씨(35세)는 각각 징역 4년과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강력계 형사가 “(범죄에 사용한) 동물용마취제를 일반인이 구입하는 것이 합법이라 처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동물용마취제, 호르몬제를 비롯한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약품을 처방전 없이 동물약국에서 판매·구입하는 것이 합법인 상황이다. 약사예외조항 때문이다.

*약사법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 : 주사용항생제, 주사용생물학적제제를 제외한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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