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 돋보기③] AI 백신접종,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코로나19 겪으며 인식 변화..백신 쓰면 방역개선·사후관리 없어질 것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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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원 그리기 방역에서 농장별 대응 시나리오로'(보러가기)에 이어..

수평전파 막아도 원발 위주 고병원성 AI에도 피해 여전

농장이 AI 바이러스 못 막는다’ 차단방역 미흡 근본 문제 수면 위로

이제껏 고병원성 AI 방역은 수평확산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에 국내 발생했던 고병원성 AI가 발생농장에서 퍼져 나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피해가 커지는 형태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넓어진 예방적 살처분(이하 예살) 범위나 축산분뇨차량의 시도간 이동제한, 알 운반차량의 1일 1농장 방문 원칙 등에서 이 같은 기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원발 위주로 발생한 올 겨울 H5N8형 고병원성 AI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다. 살처분 규모는 1700만수를 넘어서 2천만수를 향하고 있다. 반경 3km로 적용된 예살 탓도 있지만, 결국 농장 발생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손영호 반석LTC 대표는 “평시에 가금농장 진료를 다녀 보면, 고병원성 AI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감염병이 수시로 발생한다”며 “농가가 차단방역을 한다고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금농가가 차단방역만으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셈이다.

축산차량 관리 등 수평전파 위험을 줄이는 조치도 중요하지만, 정작 농장 앞까지 접근한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아낼 수 없다면 AI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처럼 매년 겨울 철새가 날아들고 야생조류와 가금농가 사이의 접점이 많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구제역도 결국 백신으로 막아내고 있다. 고병원성 AI 백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게 된 배경이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언제까지 백신을 쓰지 않을 것인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AI백신 항원뱅크 있지만..사실상 안 쓰는 전략

고병원성 AI 상재국인 중국, 동남아에서는 가금에 AI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6-17년 고병원성 AI로 3천만수가 넘는 큰 피해를 입자 백신접종론이 대두됐다.

2017년 말까지 민관 논의와 TF팀 운영을 거쳐 국내외에서 발생한 H5N1형, H5N6형, H5N8형 고병원성 AI에 대한 사독백신주 항원뱅크가 조성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AI 백신에 대한 찬반의견은 뚜렷하게 갈린 채였다.

찬성의견은 H5 항원이 일치하면 백신이 90% 이상의 폐사방어율을 보인다는 점을 지목했다.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살처분 정책에 비해 경제성이 높다.

반대의견은 백신접종이 국내 AI의 상재화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AI 백신의 방어능이 제한적일 경우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감염을 찾아내지 못한 채 순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 변이 위험이 높아져 인체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지목됐다.

정부는 반대의견에 더 무게를 뒀다. 항원뱅크를 조성하긴 했지만 긴급백신을 원칙으로 삼으면서 ‘최대한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더라도 살처분 정책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재화 우려 시점이 되어야만 백신을 고려하겠다는 것인데, 그 시점이 되면 이미 ‘예방’이라는 백신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백신 제조부터 현장 보급, 접종, 면역 형성까지 최소 1개월여가 소요되는 데다가 이미 대규모로 퍼진 상황에서 전국 가금농장을 일제히 접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AI 백신, 예전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3년이 지나 대규모 고병원성 AI 사태가 재현된 지금 AI 백신에 대한 시각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김재홍 전 서울대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AI 백신을 다시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대표도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두 전문가 모두 예전에는 신중론에 무게를 뒀다.

여기에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도 영향을 끼쳤다. AI 인체감염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는데 코로나19를 겪고 보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초 AI 백신에 대한 신중론은 상당 부분 ‘살처분 정책으로 축산업의 피해가 다소 있더라도, AI 백신도입으로 인해 인체감염 가능성이 커져선 안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인수공통감염병 예방은 물론 AI 인체감염이 가금산업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란 우려다.

하지마 이 같은 두려움은 코로나19 앞에서 무색해졌다. 손영호 대표는 “이제껏 고병원성 AI로 인해 전세계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700명 정도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한 명도 없다.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다”면서 “예전에는 AI 인체감염 위험에 공포를 느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패러다임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재홍 전 교수도 “코로나19로 인해 AI 감염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백신접종 주장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 전 교수는 “살처분 대신 무조건 백신하자는 시각도 위험하다”면서도 “지금처럼 2~3년마다 반복되는 고병원성 AI를 막을 수 있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면 AI 백신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쓰면 방어는 가능하다? 축종별로 백신·살처분 병행 방법도

손영호 대표는 “이미 AI 백신을 위한 뱅크가 조성되어 있고 검증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효과도 우수하다”면서 H5N8형 AI 야외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H9N2형 저병원성 AI 백신의 성공사례도 있다. 올해 Y280주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10년 넘게 좋은 효능을 보였다. 2009년 이후 뉴캐슬병이 국내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도 백신 덕분이다.

구제역 백신과 마찬가지로 야외주 항원의 지속적인 변화와 백신주-야외주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백신이 도입해도 살처분 정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축종별로 백신과 살처분을 병행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사육기간이 길고 타 질병에 대한 백신접종이 이미 일반화된 종계, 산란계에서는 AI 백신접종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사육기간이 짧은 육용오리나 육계는 백신접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감염 시 살처분 정책을 유지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백신을 접종한 닭에서 야외주가 감염된다 하더라도 증상이나 바이러스 배출이 적기 때문에 살처분 범위를 줄일 수도 있다.

윤종웅 회장은 “이미 AI 백신 개발 기술은 21세기에 와 있지만, 방역정책은 18세기 살처분에만 머물러 있다”며 “백신·살처분 병행 방역이 효과를 거둔다면 K방역이 축산 분야에서도 전세계의 선두에 설 수 있다”고 제언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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