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⑦] 직무태만(Neg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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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yechan 300

지난 주제인 과잉진료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발생하는 문제였다면, 이번 주제인 직무태만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두 가지다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측면에서는 맥락이 같다.

포르투갈 수의사회의 징계위원회에 2012~2015년 사이 접수된 불만 사례 분석 결과 가장 많은 약 30%가 수의사들의 직무태만에 대한 문제였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직무태만은 그만큼 보호자들이 체감하기 쉬운 수의사들의 윤리적 문제라고 이해할 수 있다. 

Negligence(태만)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Cambridge dictionary)를 보면, ‘(특히 직업적으로 다른 대상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행위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정의된다. 직무태만과 함께 흔히 쓰이는 ‘직무유기(dereliction)’라는 단어와의 법적인 의미 차이는, 직무유기는 그 직무를 아예 수행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다.

태만은 (의료)과실(malpractice)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과실은 태만 중에서도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손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던 의료사고 중 실수(mistake)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의사의 전문직무는 진료에 국한되지 않으며 병원 내에서 신경 써야 하는 다양한 일뿐만 아니라 임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수의사가 관여하고 있는 넓은 범위의 직무까지 고려한다면, 수의윤리에서 직무태만의 범위는 상당히 넓게 해석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 태만을 단순히 ‘게으름’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필자가 생각할 때 직업적 태만은 단순히 개인의 ‘귀차니즘’만이 전부인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태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해당 분야의 지식이 없거나, 조직 내에 태만의 문화가 만연해 있거나, 시스템의 부재에 기인하거나, 개인 간의 갈등 혹은 친밀함으로 인해 정상적 업무가 방해받거나,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식하는 태만의 범주가 다르거나,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거나, 혹은 노동의 문제일 수도 있는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관여되어 있다. 

또한, 표면적으로 문제시되는 대다수의 태만이 ‘보여지는 태만’이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태만 역시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의무의 윤리’ 측면의 태만과 ‘덕의 윤리’ 측면의 태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케이스 1.

당신이 원장인 병원에서, 일요일을 담당하던 수의사가 갑자기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은 급한 대로 1년 차인 인턴 수의사를 투입하여 일요일 진료를 맡겼다.

월요일 아침, 당신은 주말에 입원한 교통사고 환자를 넘겨받게 되었다. 그 개는 통증을 동반한 침울(depressed) 상태였으며, 자신의 대소변을 깔고 누워있었다. 즉시 수액과 진통제를 처치하였다. 진통제 투여 기록은 없었다.

당신은 정밀검사 결과 서혜부 감돈 탈장(strangulated inguinal hernia-진료기록에는 없었음)과 경골 골간 골절(tibia diaphysis fracture-인턴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절단을 권고함)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장 문합술(intestinal anastomosis)을 포함한 탈장 교정술과 경골골절에 대한 수술이 시행되었다. 당신이 인턴 수의사에게 이러한 상태를 말하자, 그는 주말 동안 탈장과 관련된 증상이나 큰 통증 반응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느낀 원장은 CCTV를 확인하였고, 주말에는 수의사뿐 아니라 테크니션도 입원환자를 돌보는 횟수가 평소보다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 난 당신은 인턴 수의사에게 해고를 통보하였다.

이 케이스는 수의윤리 교재에 있는 사실에 기반을 둔 케이스를 각색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행위의 옳음을 판단(도덕판단)할 때 옳음의 기준이 되는 ‘도덕원리’로 판단한다고 하였다. 도덕원리는 행위를 동기, 행위 자체, 결과로 나누어 생각하기도 하고, 이해당사자들의 각 입장을 이익, 해악, 자율성, 정의와 같은 관점에서 분석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수의윤리라는 응용윤리 분야에서는, ‘수의사 윤리강령’을 잘 정립된 일종의 도덕원리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의사 윤리강령도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국제적 표준에 맞추어 보완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관련기사 : 26년 된 대한수의사회 윤리강령, 확대 개편해야)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수의사 윤리강령의 내용에 따라 위 케이스를 분석해보자. 윤리강령 내용과 관련된 부분은 밑줄로 표시하였다.

먼저, 원장수의사는 인턴 수의사의 능력이 불완전하여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제공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요일 진료를 맡겨야겠다고 판단한 것에 문제가 있다. 인턴 수의사의 진료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원장 수의사는 그동안 같이 진료하면서 분명 인턴 수의사가 어느 선까지 진료 가능한지 알고 있었을 것(역량 파악)이다. 원장은 인턴 수의사에게 초진이나 응급진료가 아닌 입원환자 관리만 맡기거나, 다른 충분한 능력의 대진 수의사를 구하거나, 아니면 인턴 수의사가 감당할 수 없는 진료의 경우 자신에게 바로 연락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연결을 취해놓는 방법(리퍼)을 생각해 보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본인의 책임이 있음에도 인턴 수의사에게 마치 모든 잘못이 있는 것처럼 해고를 통보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지식과 경험이 더 많은 선배 수의사는 후배 수의사를 가르치고 지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육이 필요한 인턴 수의사를 진료상황에 혼자 방치하는 것은 결코 좋은 교육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노동문제로 접근한다면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요일 근무와 단독 진료를 진행하는 것은 애초에 근로조건으로 계약되지 않은 사항(법규 준수)일 것이다.

인턴 수의사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환자의 통증관리를 하지 않았고, 청결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았으며 수액처치와 같이 인턴 수의사라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처치조차도 수행하지 않았다.

CCTV를 통해 보았을 때 주말에는 환자를 잘 돌보지 않는 문화가 조직 내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인턴 수의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조직 내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팀원들이 직무를 다하도록 이끌지(상호감독) 않고 직무태만에 동조하였다면 수의사로서 전문가의식(프로페셔널리즘)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인턴 수의사가 서혜부 탈장과 관련된 문제를 전혀 진단하지 못했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경골 골간 골절에 대하여 절단이라는 수의학적 표준이라 보기 어려운 판단을 내린 것은 수의사로서 직무수행에 필요한 적절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직은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당연한 전제로 하므로 무능함은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인턴 수의사는 수련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능력이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절단이나 안락사 권고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을 내릴 때는 반드시 자신의 결정을 의심해야 하는데, 특히나 자신의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다른 수의사에게 의견을 물어봐야(의사소통, 협력과 협진) 한다. 이 상황에서 인턴 수의사가 원장수의사에게 연락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료를 진행하고 판단을 내린 것은 자신의 능력 밖의 결정을 한 것이다.

케이스 2. 동료 간의 갈등으로 인한 직무태만

다수의 수의사에 의해 분과진료가 이루어지는 동물병원

– 내과의 A 수의사와 외과의 B 수의사는 병원 내 모두가 아는 유명한 앙숙이다.

– 퇴근 시간 무렵 A의 환자가 응급으로 내원하였고, 방사선 사진상 GDV(Gastric Dilatation-Volvulus; 위확장염전)가 의심되었다.

– B는 퇴근길에 A의 환자를 보았지만, A와 엮이고 싶지 않아 퇴근을 서둘렀다.

– A 역시 B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휴무일인 C에게 수술을 요청했다.

– C가 병원으로 오는 동안, 환자는 사망하였다.

먼저 위의 상황은 과장이 섞인 허구임을 밝혀두지만, 수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좋기만 할 수는 없다. 특히 다수의 수의사가 분과진료를 하는 동물병원이 증가하면서, 동료 간의 ‘갈등’이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서 진료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직무를 두고 상호 간의 견해나 관점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직무갈등’, 그리고 직무 이외의 선호도나 성격 차이로 인하여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관계갈등’이 다른 하나이다. 이 두 갈등은 상호 연관성이 있어 한 가지 갈등이 심화되면 다른 유형의 갈등도 심화되며, 모두 감정적 변화를 동반한다. 대부분의 갈등, 특히 관계갈등은 조직성과에 부정적인 효과로 작용하며, 긍정적 효과가 있을 때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개인 간의 갈등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집단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특히 병원 내 갈등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직종 간의 갈등이나 의료계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진료과 간의 갈등인 ‘과 이기주의’를 그러한 예로 볼 수 있다. 동물병원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생하곤 하는데, 애당초 생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분과는 더 나은 전문성을 위해 발전한 제도이다. 그런데 분과시스템을 잘못 이해하면 진료영역에 마치 땅따먹기처럼 선 긋기를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이는 분과시스템이 업무 상호의존성을 증대시켜 더 큰 협력을 필요로 함에도, 어느 한쪽으로 명확히 분류할 수 없는 애매한 영역에 대한 모호성은 이기주의와 결합해서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하고 오히려 협력을 저해한다.

조직 내의 갈등은 많은 절차적, 물질적 비효율과 서비스의 질 저하를 야기한다. 또한, 갈등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아서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주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위의 케이스에서는 환자가 사망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갈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결과적으로 대부분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갈등은 당사자 스스로 갈등 해소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타인이 아무리 개입한다 해도 해결하기 어렵다. 동료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동료의 능력과 전문성에 대한 존중, 협진에 대한 가치 추구의 자세가 필요하며, 환자의 적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개인의 갈등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 천명선 교수님 ‘수의인문사회학 특론’ 수업의 주설아 선생님 발표를 참고하였습니다.

Magalhaes-Sant’Ana, M., M. Whiting, G. Stilwell and M.C. Peleteiro (2018). What challenges is the veterinary profession facing- ananalysis of complaints against veterinarians in Portugal. Professionals in food chains. Wageningen Academic Publishers. pp 3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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