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 안락사 논란] ˝부적절한 동물 안락사 요구는 수의사가 거절해야˝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 ICAM 가이드라인 참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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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2015년부터 약 4년 동안 230마리 이상의 동물을 안락사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물에 대한 안락사 기준을 빨리 만들어야 사태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동물 안락사 관련 기준은 존재한다. 정부가 직접 마련한 기준도 있고, 해외 동물보호단체·국제수의사단체 연합에서 제공하는 안락사 기준을 참고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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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단체의 기준 없는 동물 안락사..동물보호법 위반 소지 有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해외 동물보호단체·국제수의사단체 연합 ICAM의 동물 안락사 가이드라인에는 안락사의 이유 중 하나로 ‘자원부족(Lack of Resources)’가 나온다.

여기서 ‘자원부족’이란 재정 부족, 직원의 부족, 적정한 장비 부족, 시설 부족 등으로 동물의 치료와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사설유기동물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에서 ‘자원부족’으로 동물을 안락사하는 경우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만약 케어에서 실제로 건강한 동물은 자원부족 때문에 안락사시켰다면, 동물보호법 위반일 수도 있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는 ‘지침’에 따라 동물 안락사 시행

사설보호소와 동물보호단체와 달리,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 이하 보호센터)에서는 이러한 ‘자원부족’에 따른 동물 안락사가 사실상 허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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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법 제22조에 의거 지자체 보호센터에서는 동물의 안락사(인도적인 처리)가 시행된다. 실제로 2017년 1년 동안 보호센터에서 구조된 102,593마리의 유기동물(유실동물 포함) 중 20,768마리(20.2%)가 안락사됐다.

지자체 보호센터에서 유기동물을 공고한 뒤 10일이 지나도록 동물의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해당 시군구가 유기동물의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후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동물을 안락사할 수 있는데, 그 사유 중 하나가 ‘기증 또는 분양이 곤란한 경우 시도지사 또는 시군구청장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다.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명시된 ‘동물의 인도적인 처리’

1명 이상 입회 아래 수의사가 시행…수용능력 등 센터 ‘자원부족’에 따른 안락사 가능

지자체 보호센터에서 동물의 안락사를 결정하면, 수의사가 안락사를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동물의 안락사(동물의 인도적인 처리) 원칙과 처리 절차는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지침에 따르면, ‘센터 수용능력, 분양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보호·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개체’도 안락사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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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를 시행하는 수의사는 동물의 고통 및 공포를 최소화해야 하고, 시술자 및 입회자의 안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수의사 외에 1명 이상 입회해야 하며, 마취를 한 후 안락사 약물을 이용하거나 마취제를 정맥 주사하는 방법으로 안락사를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동물보호법과 안락사 기준은 사설 동물보호소나 동물단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케어 안락사 사태’를 계기로 사설보호소, 동물단체의 ‘자원부족’에 따른 안락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관리하는 지자체 보호센터와 주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동물단체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지자체 보호센터에서 ‘자원부족’에 따른 안락사가 소수 시행되더라도, 동물단체가 단체의 구조·보호동물을 ‘자원부족’에 의해 안락사하는 걸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동물단체에 ‘능력 이상의 무분별한 구조+무책임한 안락사’의 길을 허용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ICAM의 가이드라인 역시 각 단체가 자신의 역량(구조능력, 수용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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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M(The International Companion Animal Management Coalition)은 WSPA(세계동물보호협회), RSPCA(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 HSI(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IFAW(국제동물복지기금), WSAVA(세계소동물수의사회), ARC(광견병통제동맹)가 모인 연합체다.

이들은 동물보호소, 유기동물 입양센터, 동물병원 등을 위해 ‘개와 고양이의 안락사를 위한 복지 근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평생 보호하는 시설 불가능…안락사 의사결정 알고리즘 필요해”

“동물보호단체가 자신의 역량과 도와야 할 동물의 수를 명확히 파악해야”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단체별로 명문화된 동물 안락사 관련 규정을 만들고, 구성원이 언제든지 참고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

동물 안락사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단체의 안락사 규정을 만들 때 가능한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안락사 결정에 대한 내부 지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 ICAM 측 입장이다.

ICAM 측은 단체의 안락사 규정 마련 시, 단체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수의사, 법조인, 정부, 지역시민단체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추천했다.

그래야 개별 단체 안락사 규정에 대한 대중의 오해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물보호단체에 개를 버리면 평생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대중이 하고 있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ICAM 측은 “현실적으로 모든 동물을 평생 보호하는 시설은 불가능한데, 대중의 오해가 ‘동물보호단체들이 개를 데려가서 다 죽이더라’는 식의 부정적인 언론 보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체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많은 동물을 소유하는 것(애니멀호딩)이 동물학대의 한 유형인 것처럼, 동물보호단체 역시 단체가 보유한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역량 이상의 활동(ex. 구조활동)을 지양해야 한다.

ICAM 측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동물보호단체가 어느 정도의 동물복지 수준을 제공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하고, 도와야 할 동물의 수를 명확히 파악하며, 단체가 보유한 역량(직원, 예산 등)을 명확히 분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보호단체에 요구되는 역할(가령 구조 활동)이 역량을 넘어설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안락사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덧붙였다.

IFAW의 안락사 결정 알고리즘(일부)
IFAW의 안락사 결정 알고리즘(일부)

“안락사 의사결정 알고리즘 도식화 필요”

ICAM은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이고, 결정 과정에 주관이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며 “(안락사) 의사결정 구조를 알고리즘으로 도식화해두고, 단체 구성원이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여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수의인문사회학)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에서 구조한 동물의 안락사 여부 판단 절차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안락사를 판단하는 위원회와 의사결정 구조(플로차트)를 만들고 이를 단체 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적절한 동물 안락사 요구는 수의사가 거절해야”

“동물병원에 요청하면 무조건 안락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는 안 돼”

천 교수는 동물 안락사에 대한 수의사의 판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적절한 안락사 요청은 거부하고, 안락사 요청에 대한 대응 프로토콜을 동물병원 내에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천명선 교수는 “안락사가 동물병원에 요청하면 무조건할 수 있는 서비스처럼 여겨져선 절대 안 된다”며 “안락사 결정 판단이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를 수의사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락사 여부에 대한 의뢰 측의 판단이 부적절한 경우에는 안락사 요청을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요에 따라서는 (안락사를 요구하기까지의) 제반 자료를 단체·개인에 요구해야 한다.

천명선 교수는 또한 “무분별한 안락사 요청은 동물학대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때 수의사는 ‘주먹구구식 안락사 요청 행위’를 신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안락사 요청에 대한 대응기준을 명문화된 프로토콜로 만들고, 동물병원 직원 전체가 공유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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