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펜실베이니아대 수의대 교수로 새 출발하는 오다영·김기태 부부를 만나다

Radiation Oncology 조교수와 Attending Radiologist로 나란히 임용..치열했던 도전과 성장의 여정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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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펜실베이니아 수의과대학에 한국인 부부 수의사가 교원으로 임용됐습니다. 오다영·김기태 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서울대와 건국대 수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수의영상의학교실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로컬 동물병원 임상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PAVE 과정을 통해 미국 수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오다영 교수는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방사선종양학전문의 과정을, 김기태 교수는 미주리대학교에서 미국수의영상의학전문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최근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원으로 새 출발을 알린 오다영·김기태 교수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왼쪽부터) 오다영, 김기태 펜실베니아 수의대 교수

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콜로라도주립대학 Flint Animal Cancer Center에서 방사선 종양학 (Radiation Oncology)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오다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영상의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 오기 전 4년 정도 한국 로컬에서 영상의학과 수의사로 일을 하였습니다.

김: 안녕하세요,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의장교로 복무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영상의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로컬 동물병원에서 영상과장으로 근무하였고, 미국으로 건너와 미주리대학교에서 PAVE 과정을 거쳐 미국 수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최근에는 미주리대학교에서 영상의학 레지던시 과정을 마쳤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attending radiologist로 근무할 계획입니다.

오: 가장 큰 계기는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한 ‘고교생 수의학 아카데미(고수아)’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수의대에 진학하면 임상 수의사가 되는 것 외에는 어떤 진로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수아에 참가하면서 여러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다양한 연구를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셨고, 그때 정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기분이었어요. 원래 남들과 조금 다른 것, 새로운 것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수의대에 진학하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길이 펼쳐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기대감을 안고 수의대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본과생이 된 후에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최대한 다양한 진로를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학마다 검역원, 회사, 동물병원 등 학생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실습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선배님께 진로에 대한 좋은 조언도 많이 들었습니다.

본과 2학년 때에는 부학생회장을 맡아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청년 수의학 아카데미’의 강연자 섭외를 담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계신 선배님과 연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세계가 내가 일할 곳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진로의 범위가 훨씬 넓어지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능성을 경험해 본 끝에 결국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과 3학년부터 임상과목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그중에서도 특히 영상의학과 수업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영상을 통해 질병을 진단하고 이후 치료의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본과 3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영상의학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마음이 확실해졌습니다.

김: 모든 수험생이 그렇듯 저 역시 수능을 마친 뒤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제게 가장 큰 멘토이신 아버지는 늘 미래를 내다보는 습관과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을 때 과감히 도전하는 담대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시 대학교수셨던 아버지와 진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미국 생활 경험이 있으셨던 아버지께서는 미국에서 수의사라는 직업의 전망이 매우 좋고, 앞으로 한국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가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계기로 수의대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수의대 졸업 후, 특전사 장교 출신이셨던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공중방역수의사 대신 수의장교에 자원했고,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래이동물의료센터에서 제 첫 임상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래이동물의료센터는 서울대학교에서 영상진단을 전공하신 정우조, 권정국 두 원장님께서 개원하신 병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영상진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환자와 증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임상을 접할수록 내과와 외과를 연결하고, 환자의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상진단에 점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학교 영상의학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인턴 과정을 마친 뒤 바로 영상진단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래이동물의료센터에서 쌓은 경험이 지금까지도 제 임상적 사고와 진료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당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두 원장님과 함께 근무했던 선후배 수의사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 계기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방사선종양학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졸업 후 처음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영상 업무와 함께 여러 진료를 같이 보았는데, 주로 CT나 MRI 검사를 위해 내원하는 환자들을 맡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양 환자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강종양이나 뇌종양처럼 방사선 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질환의 환자들을 볼 때면 보호자분들께 치료 방법을 설명하면서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국내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었고, 이제 막 도입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방사선 치료가 중요한 치료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환자에게 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방사선 치료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이걸 제대로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찾아보다가 미국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운명처럼,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이셨던 윤정희 교수님께서 방사선생물학 책을 보여주시며 미국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셨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의 저는 솔직히 ‘우리나라 수의학에 방사선 치료가 정말 필요할까?’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몇 년 뒤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 필요성을 제가 스스로 절실하게 느끼게 된 거죠.

마침 비슷한 시기에 현재 제 남편인 김기태 선생님도 미국에서 영상의학 전문의 과정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우리 결혼하고 미국에 가서 한번 도전해 보자!”라고 하며, 미국에 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결심한 뒤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준비 과정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빌려 다시 한번 저에게 처음 방사선종양학이라는 분야를 보여주시고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어 주신 윤정희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저희 부부의 도전을 응원해 주신 허진영 선생님, 제가 근무했던 지역병원의 원장님들과 수의사 선생님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하게 응원해 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 학부 때부터 미국에 대한 막연한 관심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형도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 역시 언젠가는 미국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방학 동안 미국 대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했고, 본과 4학년 때는 미국의 대학병원(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과 다양한 규모의 로컬병원에서 익스턴쉽을 하며 미국의 교육과 임상 환경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현재까지도 “너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지고 있던 답이 있습니다.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인이 되고 싶다’, ‘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익스턴쉽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전 세계에서 모인 뛰어난 사람들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환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환경에 제 자신을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상과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퇴근길, ‘더 늦기 전에 미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강하게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지금의 아내인 오다영 선생님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했고, 바로 다음 날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미국 면허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그날을 계기로 구체적인 목표와 행동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결정을 지지해 주시고 진심 어린 응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멘토, 윤정희 교수님과 VCA의 허진영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오: 제가 PAVE를 했던 미주리주립대학에 Dr. Maitz라는 방사선종양학 교수님이 계셨어요. PAVE를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저에게 이력서를 들고 일단 그 교수님을 찾아가서 방사선종양학을 하고 싶다고 말해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데, 남편의 당찬 성격을 좀 본받아 보고자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렇게 Maitz 교수님을 찾아가 “방사선 치료를 공부하고 싶어서 미국에 왔는데,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교수님께서는 제 이력서를 보시더니 미국에서 일한 경험이 없으니 우선 인턴십부터 지원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연히 인턴십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PAVE 로테이션을 돌고 있었습니다. PAVE에서는 보통 본과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각 과를 2주, 길게는 6주씩 돌게 되는데, 제가 정말 기다렸던 Oncology 로테이션이 다가왔어요. 저는 그때 ‘다른 학생들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PAVE에서는 본과 4학년 학생들과 함께 로테이션을 돌지만, 저는 한국에서 대학원과 임상 경험까지 합쳐 이미 6년 정도 수의사로 일하고 온 상태였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학생들보다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Oncology 로테이션 동안에는 케이스를 하나 맡을 때마다 담당 레지던트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 가겠다는 마음으로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Oncology 로테이션 마지막 날에 각자 원하는 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다른 학생들은 종양 하나를 골라 발표했는데, 저는 골육종에서 stereotactic radiotherapy를 다룬 논문을 10편 정도 정리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까지 정리해서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자다가 깨워도 줄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던 것 같아요.

13분 정도의 발표를 준비해 갔는데, 막상 발표 직전에 교수님께서 시간이 없다며 8분 안에 끝내라고 하시면서 스톱워치를 바로 켜시더라고요. 속으로는 정말 속상했지만, 거의 속사포처럼 발표해서 어떻게든 8분 안에 끝냈습니다. 그런데 발표가 끝난 후 종양학 교수님 두 분께서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그동안 제가 로테이션을 도는 모습과 발표를 보니 인턴십 말고 레지던시에 바로 지원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자신들이 추천서도 잘 써주겠다고 하시면서요. 처음 미국에 와서 제가 과연 여기서 방사선종양학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시기였는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너 가능성 있다”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격해서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레지던시 동안에는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메이트들, 테크니션들, 그리고 수많은 보호자분들과의 소중한 기억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은데요. 그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하와이에서 온 요키라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생각납니다. 노부부께서 13살, 7kg 정도의 믹스견 요키를 데리고 오직 방사선치료를 받기 위해 하와이에서 콜로라도까지 오셨어요. 요키는 골반부와 어깨 두 군데에 수술 후 불완전하게 제거된 연조직육종이 있었습니다. 특히 할머니 보호자분께서 당시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본인이 받으셨던 방사선치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치료 과정과 예후, 가능한 부작용에 대해 정말 많은 질문을 하셨고, 첫 상담만 거의 3시간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충분한 상담 끝에 보호자분들은 요키에게 4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해주기로 결정하셨어요.

그런데 정작 치료를 시작하러 온 첫날, 요키의 상태가 좋지 않아 혈액검사를 해보니 간수치가 심하게 상승해 있었고 빈혈도 확인됐습니다. 요키는 과거 간세포암종을 수술한 병력이 있었는데, 검사를 해보니 종양이 재발한 데다 심각한 합병증(septic effusion)까지 발생한 상황이었어요. 결국 응급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약 일주일간의 회복 끝에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보호자분들과 다시 한번 긴 상담을 했어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 4주 동안 매일 마취를 해야 하는데, 요키가 그렇게 큰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는 보호자분들의 마음이 달라지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보호자분께서는 “우리는 요키의 방사선 치료를 위해 하와이에서 여기까지 왔고, 이것이 요키에게 최선의 치료라면 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노부부께 요키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특히 할머니께서 유방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곁을 지켜준,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요키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한 달 정도만 콜로라도에 머물 예정이셨던 노부부는 요키에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콜로라도에서 보내셨어요. 그리고 드디어 치료 마지막 날, 저희 Flint Animal Cancer Center 팀은 보호자분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하와이까지 조심히 돌아가시라는 메시지를 담은 케이크를 준비하고, 레이(하와이 꽃목걸이)도 만들어 보호자분들께 걸어드렸어요. 그 순간 지난 두 달 동안 함께했던 긴 여정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보호자분들과 저, 그리고 요키의 수술을 담당했던 외과종양학 펠로우까지 모두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그날의 감정이 그대로 떠올라요. 하와이로 돌아가신 후에도 보호자분들께서 요키와 잘 지내고 있다며 간간이 소식을 보내주셨습니다. 수의사로 일하면서 치료 자체도 중요하지만, 한 환자와 가족의 긴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이 느끼게 해준 환자였던 것 같아요.

사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밤을 새워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더 많은 감동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요키를 위한 파티

김: 하하, 정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와 드라마가 많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고, 억울한 일도 있고, 또 큰 보람을 느끼는 일도 있고요. 그래도 힘든 순간마다, 제가 지금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radiology residency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되새기려고 했습니다. 또 동료 레지던트들과 함께 하이킹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찾아다니면서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게 특히 강한 impact를 준 경험 중 하나는 AAVC Residents’ Professional Development and Leadership Conference에 참가한 일이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각 수의과대학에서 대표 레지던트들을 선발해 참가하는 프로그램으로, leadership, teaching, research, promotion, research funding, personal finance, conflict management, mental health management 등 앞으로 academic career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3일 동안 굉장히 세세하게 다루는 과정이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미주리대학교에서는 제가, 그리고 콜로라도주립대학교에서는 오다영 선생님이 선발되어 함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와 학교, 전공,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레지던트들을 만나 교류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었다는 점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촘촘하게 짜인 스케줄에 role-playing과 끊임없는 질의응답까지 이어져 상당히 intensive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마지막 세션에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수의학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저에게는 상당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제 분야에서 좋은 전문의가 되는 것을 넘어, 앞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도 교수를 꿈꾸는 대학원생들에게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였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경험은 전설적인 심장학 전문의 교수인 Dr. John Bonagura와 일주일 정도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미 여든에 가까운 연세였고, 말 그대로 ‘cardiologist들의 cardiologist’라고 불릴 정도로 저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3D echocardiography를 연구하고 있던 3년 차 레지던트의 옆에 몇 시간씩 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시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며 스스로를 계속 업데이트하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미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도 저렇게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데, 저 역시 앞으로 경력이 쌓이더라도 항상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질문하고, 겸손하게 배우면서 계속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공통: 둘 다 특정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미국에 온 만큼, 교육의 환경에서 일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레지던시 후 아카데미아에서 일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육은 저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지식은 나눈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나눌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성장할 수 있잖아요.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면서 누군가의 성장에 기여하고, 또 그 과정에서 저 역시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수의대의 교수 채용 과정은, 우선 교수직 공고가 나면 지원서와 함께 보통 3~4명의 reference 연락처를 제출합니다. 학교에서는 이분들에게 직접 연락해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일할 때는 어떤지 등에 대해 확인하게 됩니다. 추천서를 받기도 하지만, 별도로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어요. 미국에서 평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이력이 좋아도 함께 일하는 데 있어 우려할 만한 부분, 소위 ‘red flag’가 있다면 채용 과정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보통 4~5명 정도의 교수님들로 구성된 search committee와 30분에서 1시간 정도 Zoom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학교에 직접 초청되어 하루, 길게는 2~3일 동안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약 한 시간 정도의 세미나도 진행하고요.

방문 인터뷰는 생각보다 굉장히 길고 촘촘하게 진행됩니다. 보통 30분 단위로 여러 과의 교수님들, 레지던트들, 테크니션들과 계속 미팅을 하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도 함께합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지?’ 싶기도 했는데,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지원자의 경력뿐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를 서로 알아가는 것 같아요. 교수라는 직업은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협업해야 하기 때문에 interpersonal skill 역시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세미나는 보통 한 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연구나 앞으로 관심 있는 연구뿐 아니라 자신의 임상 철학과 교육 철학, 그리고 앞으로 이 학교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등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결국 교수 채용 과정은 단순히 연구나 임상 능력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우리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종합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 저는 Radiation Oncology 조교수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지원 당시에는 제가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연구에 좀 더 중점을 둔 포지션과 임상 비중이 더 높은 포지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연구에 참여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직접 환자를 진료하며 여러 전문의와 협업하고 레지던트와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도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교육으로 연결하는 일이 제가 원하는 방향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되 임상 비중이 높은 포지션에 지원했습니다.

김: Attending Radiologist로서의 주된 역할은 클리닉에서 image reading을 하고, 레지던트들이 작성한 리포트를 검토하고 수정해 주는 것입니다. 또 journal club이나 book club에 참여해 도움을 주고, 레지던트, 인턴, 학생들을 교육하는 역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Full-time 교수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연구 성과가 필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이외의 여러 다른 학교에서도 full-time 교수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가 Attending Radiologist라는 포지션을 선택한 이유는 앞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장기프로젝트에 좀 더 자율성을 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아직 소동물에서는 걸음마 단계에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full-time professor라는 타이틀보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유동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최근 미국 radiologist들은 전통적인 full-time faculty track뿐만 아니라 각자의 관심 분야와 career goal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포지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요.

또한 여러 대학 교수진과 진행할 협업도 계획되어 있는데, Attending Radiologist로서 보다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임상과 교육에 충실히 임하면서도,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수의학 이외의 분야에 있는 연구자들과도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이 포지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제가 한국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선종양학을 시작한 순간부터는 이 분야에 집중하고 영상의학적인 부분은 영상 전공자들의 전문성에 많이 의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에게 물어본 적도 많고요. 방사선종양학은 CT나 MRI와 같은 영상을 바탕으로 치료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영상의학과 굉장히 밀접한 분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영상의학보다는 종양학의 한 분야에 훨씬 가깝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을 하면서 느끼기에는 업무의 상당 부분, 어쩌면 80% 이상이 보호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정도로 상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이 치료를 왜 하는지,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치료 후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자도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방사선 치료를 진행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보호자뿐 아니라 환자를 의뢰해 주시는 수의사 선생님들과도 상담을 많이 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아직 보호자들에게도, 일반 수의사 선생님들에게도 익숙한 치료는 아니기 때문에 어떤 환자가 방사선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치료를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뢰해 주시는 수의사 선생님들께서도 방사선 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적절한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를 하나의 옵션으로 제시하고 보호자에게 저희를 소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문의 과정을 마친 CSU Flint Animal Cancer Center에서는 방사선종양학(Radiation Oncology), 종양내과(Medical Oncology), 종양외과(Surgical Oncology)가 하나의 종양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함께 라운딩을 하면서 각 환자에게 어떤 치료 옵션들이 있는지, 또 그중 무엇이 그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 함께 논의합니다. 예를 들어 수술을 먼저 하면 방사선 치료를 어떤 프로토콜로 할지, 혹은 여러 치료를 어떻게 조합할지 등을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함께 고민하는 거죠.

모든 학교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 따라 방사선종양학, 종양내과, 종양외과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김: 현재 미국 radiology의 큰 흐름 중 하나는 단순히 모든 영역을 두루 보는 all-round radiologist보다는, human radiology처럼 modality나 body part, 혹은 특정 질환군에 따라 좀 더 세분화된 전문성을 갖춘 radiologist를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radiology 안에서 저만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다영 선생님과의 교류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종양 증례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를 많이 하게 되었고, 저 역시 종양과 관련된 radiology를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보다 심도 있게 imaging을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서로 다른 학교에서 근무했다 보니 각자의 기관에서 경험한 흥미로운 case들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같은 증례를 두고 오다영 선생님은 종양학의 관점에서, 저는 radiology의 관점에서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의 관점에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제가 앞으로 어떤 전문성을 발전시켜 나갈지 구체화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 방사선종양학은 단순히 종양에 방사선을 조사해서 종양세포를 죽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방사선 치료 자체가 종양과 주변의 미세환경에서 여러 면역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치료와 병합하느냐에 따라 치료 효과나 부작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사람의 종양학에서도 아직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반려동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종양에 대한 연구가 사람의 암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의학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이런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 관심이 많은 분야는 방사선 치료 프로토콜입니다. 종양마다 방사선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고, 같은 종양에서도 치료 목적이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프로토콜이 사용됩니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방사선을 조사했을 때 가장 좋은 치료 효과를 얻으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도 답을 찾아야 할 질문들이 많습니다. 이런 임상적인 질문들을 연구로 연결해서 실제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던 시기와 달리, 지금은 한국에서도 수의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어 점차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방사선종양학 전문의로서 한국 수의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 한국에서 방사선치료가 하나의 종양 치료 방법으로 더욱 성장하고 자리 잡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저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김: 미국에서 면허를 취득하고 레지던시를 마쳐 전문의가 되는 것은 제게 최종 목표라기보다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조금 더 자유롭게, 그리고 제약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점에 왔다는 점이 무척 기쁩니다.

현재 미국의 수의과대학에서는 AI 시대에 발맞춘 교육과 준비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 역시 AI 기술의 임상 적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영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몇몇 수의대에서도 학생들에게 AI 교육 및 임상 적용이 시작되었고요.

실제 AI 회사들과의 미팅의 기회가 있었을 때, 아직은 부족한 점과 기업별 장단점이 있었지만, 결국은 수년 내로 극복될 수 있는 부분들로 보였습니다. 다만 사람의 영상의학에 비해 수의영상의학은 아직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 많고, 사람과 동물 사이의 차이도 큰 만큼, 수의학의 여러 clinical departments 혹은 human radiologists와의 협업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아직 충분히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연구 주제들을 찾아 꾸준히 연구하고 싶습니다. 또한 더 많은 협업과 학문적 연결을 만들어 가면서, 단순히 AI와 경쟁하는 영상의가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고민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영상의가 되고 싶습니다. 트렌디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으로서, 많은 네트워킹과 협업을 통해서 항상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교육 역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그동안 윤정희 교수님과 미주리대학교의 Dr. Lattimer처럼 항상 다음 세대의 교육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훌륭한 멘토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분들께 받은 가르침과 기회를 저 역시 다음 세대에 이어주고 싶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레지던트들을 대상으로 계획하고 있는 교육을 앞으로는 한국에서 영상의학을 꿈꾸는 대학원생들에게도 확장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교육받았던 기관들과도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가며 정기적인 미팅 등을 통해 제가 받은 가르침을 다시 나누고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 미국은 주마다 특성이 워낙 다르다 보니, 어느 주에 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살았던 콜로라도는 주변에 산과 멋진 자연경관이 워낙 많아서, 쉬는 날이면 사람들이 캠핑이나 카약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가는 등 야외 활동을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달리기를 좋아해서 콜로라도에 있는 동안 여러 마라톤에도 참가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멋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큰 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제가 살았던 지역에는 동양인이 많지 않아서,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레지던시 중에는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음식에 대한 갈증이나 불평을 느낄 여유도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콜로라도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침형 인간이었다는 점이에요. 병원에서도 보호자분들의 예약이 아침 7시부터 시작됐는데, 그 시간에 예약을 잡는 것에 대해 불평하시는 보호자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야행성 인간인 저에게는 처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활 방식도 미국 전체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주나 지역마다 많이 다릅니다.

김: 한국의 많은 대학원생들도 비슷하게 느끼시겠지만, 레지던트 생활은 정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미주리대학교는 레지던트 한 명당 case load가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on-call shift도 많았습니다. 여기에 journal club, book club, research, 수업과 시험, board exam 준비까지 병행해야 하다 보니 평소에는 여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 생활에 대한 인상은 사실 어느 주에 살게 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미주리에서 생활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레지던트, 인턴들과 함께 hiking, bicycling, tubing을 하거나 brewery에 가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많습니다. 미주리대학교가 비교적 시골 지역에 있다 보니 outdoor activity를 즐기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또 제가 살던 지역은 인종적으로는 백인 비율이 상당히 높은 곳이었고, 미국 중부 지역의 특성상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해서, 처음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비교적 편안한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 뒷마당에 사슴이 돌아다니고, 봄이 되면 집 앞 산책로에 반딧불이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줄곧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는 자연을 가까이에서 마음껏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먹는 것만큼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식의 사막’과 같은 곳이라고 느낄 정도로 음식에 대한 불만이 꽤 있었고, 특히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제가 처음 미주리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식당이 세 곳 정도 있었는데, 매년 하나씩 줄어들더니 결국 한 곳만 남았습니다. 덕분에 생존을 위해 웬만한 한국 요리는 직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 생활도 본인이 어떤 환경에 있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이나 포닥을 하시는 분들은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레지던트는 워낙 바쁘고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종의 전우애가 생겼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로움을 크게 느낄 틈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에서의 일상은 개인의 성향과 어느 주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제가 경험한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 후배님들을 보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정말 잘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크게 조언을 드릴 것은 없지만, 한 가지 말씀을 드려야 한다면 사람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의 길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한다’는 말이 조금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오히려 그 말이 정말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해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더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그 열정을 잃지 않은 채 계속 노력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미국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나의 노력과 능력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때로는 먼저 문을 두드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의 말이 하나 있는데요. “If you work really hard, and you are kind, amazing things will happen.” 저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PAVE에 임했고, 또 레지던시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열심히 하시는 만큼, 생각하시는 대로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선배님들과 동료들, 친구들에게 받았던 그 응원만큼,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가고 계신 후배님들을 저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김: 정말 많은 훌륭한 분들이 이미 해외에 진출해 계시기에, 제가 감히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만 34세에 처음 미국에 발을 디뎠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바로 다음 날 필요한 모든 등록과 절차를 시작해 버린 것입니다. 지난 4년간 미국 진출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입니다. 결심이 섰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저의 막연한 계획에 우려를 표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일단 저질러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지금 내가 가진 제한된 상상력이 여러분의 미래까지 제한하도록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현재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미래에는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주변 동료들에게 늘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Always be positive, and always win!” 긍정적인 마음으로 항상 매 순간에 감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꼭 승리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Always win!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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