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에 맞춰 들어온 수의대, 대동물 대학원 진학, 진드기 매개 신종병원체 연구, 전문연에서의 백신 개발, 인공지능 스타트업, 미국으로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미국 수의과대학의 교수가 됐습니다. 그저 이것저것 했던 것 같은 연구자로서의 수련 과정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테네시대학교 수의과대학 생물의학·진단과학 교수로 임용된 채정병 교수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공통질문입니다. 수의사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솔직히 저는 점수 맞춰서 대학에 왔어요. 수의대, 약대를 포함해 여러 대학에 붙긴 했는데, 수의대 수시 합격자들이 모인 OT에서 선배님들, 동기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수의대를 선택했습니다.
요즘 대동물, 그것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요
반려동물 임상은 원래 할 생각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보면 절반 이상이 정말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인데, 그들과 경쟁할 자신도 없었고요. 그래서 연구 쪽을 생각하면서 학부 시절 여러 실험실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본과 2학년 당시 대동물 실습이 하고 싶어서 채준석 교수님께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당시 천안 성환에 있는 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에 갔는데, 가축이면서 개체 치료와 군 치료가 섞여 있는 소에 흥미를 느끼게 됐죠.
학생의 눈으로 본 대동물 임상은 ‘그럭저럭 돌아가는데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구에도 관심이 있었으니, 새로운 돌파구를 학교에서 찾아보고 싶었죠.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어땠나요
참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산지 축산 연구의 일환으로 방목하는 소의 질병관리 과제를 받으면서 진드기도 연구하고, 필드 경험도 병행할 수 있었어요. 염소도 접할 수 있었고요. 송아지설사병 연구에도 참여했는데, 제 박사학위 논문의 상당수가 거기서 진행됐습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과 관련된 진드기 연구를 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시작과 함께 발견되었던 SFTS 바이러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분류되는지, 어떻게 진단되는지 여러 기술과 아이디어를 배웠죠.
그렇게 석박통합과정 4년을 보낸 후 2018년 전문연구요원으로 떠났습니다. 고향인 대전의 중앙백신연구소로요.

업계는 또 달랐을 것 같습니다
전문연구요원 시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백신 개발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고, 주로 농장만 다녔던 저에게는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죠. 중앙백신연구소에서는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을 활용해 실험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소는 물론 돼지, 닭, 염소, 기니피그, 마우스까지 온갖 동물에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험적으로도 많이 배웠고요.
감사하게도 해외 학회에도 계속 보내주셨어요. 2019년 국제수의면역학회에서 아이오와주립대에 올 수 있게 해준 조디 맥길(Jodi Mcgill) 교수와의 인연이 시작됐죠.
그렇게 2021년 2월 전문연구요원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학위졸업을 노렸지만..계획에 차질이 생겼죠(웃음). 추가 실험이 필요해졌습니다.
그해 말 한국축산데이터라는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됐어요. 당시 돼지를 위주로 출발했던 해당 기업이 진단 랩과 인공지능(AI) 분석 연구를 소까지 확장하고 싶어했거든요.
거기서 만난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더하고, 국가연구과제도 더해서 박사학위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습니다.
2023년 8월 박사학위를 졸업하면서 한국축산데이터를 나왔습니다. 미국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알아보는 와중에 마침 맥길 교수님으로부터 박사후연구원 제안이 왔어요. 염소에 대한 연구였죠. 그렇게 2024년 4월부터 아이오와주립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떠난 미국에선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줄여서 ‘Mcgill Lab’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식 명칭은 아이오와주립대 수의과대학의 수의미생물학·예방의학과(veterinary microbiology & preventive medicine)의 면역학 교실입니다. 미국은 교수의 성을 따서 실험실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소의 호흡기 면역학을 주로 다뤄왔던 교실인데, 염소나 알파카에 대한 과제도 받으면서 반추류 전반으로 연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제 경험은 한 교실이 어떤 연구과제를 따면 그 교실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다 함께 연구하는 느낌이었는데요, 맥길랩은 연구원 각자가 스스로의 연구 주제가 따로 있는 형태였습니다.
제가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하면서 맡은 주제는 염소에 대한 종합과제 성격이었습니다. 농장의 사육 체계부터 농장주 교육, 호흡기 질병 및 유방염에 대한 치료제 개발까지 포함하고 있었어요. 염소에 쓸 약이 부족한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결국 못하게 됐습니다(웃음). 해당 과제의 책임연구자가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행정절차가 늦어졌는데, 이제 비로소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니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됐거든요.
그래서 번외로 블루텅을 포함한 염소·양에 대한 플랫폼 백신 개발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그 외 알파카의 나노바디(nanobody) 연구, 젖소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백신개발 연구, 양의 RSV(Respiratory syncytial virus) 감염 면역기전 연구 등을 수행했습니다.

업무 외적으로 미국 생활도 궁금합니다. 연구 트랙에 있으면서 유학이나 박사후연구원을 생각하는 수의사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은데
음..아주 외롭습니다(웃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만, 한국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문화나 대화 패턴, 생활 양식이 많이 달라요. 물론 언어도 문제였으니 더 쉽지 않았던 것 같고요.
또 미국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든 걸 자기 스스로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정말 새로운 태스크의 연속입니다. 한국에선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당연하지 않아서 하나씩 다 검토해 보고 넘어가야 되다 보니, 제가 아는 게 정말 아는 게 맞는지 의심될 때도 많고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박사후연구원 급여가 혼자 살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집값이 높지 않은 시골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 외 생활도 재밌는 점이 많았어요. 사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죠. 우리나라도 재밌는 게 많지만 미국에 왔더니 모든 게 다 새로웠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할로윈도 즐겨보고, 사람들 코스프레하는 것도 구경해보고, 여러 축제도 많이 가보면서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해외 박사후연구원을 가더라도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에서 수의과대학 교수가 됐다니 놀랍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미국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살면서 미국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아이오와에 간 지 한 달여 만에 학교 내에서 교수 자리가 났습니다. 현재 지도교수로부터 지원을 권유받았어요. 서류에서 바로 떨어졌지만(웃음)..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당장 될 수 없더라도, 지원을 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면서 권유를 받았는데 정말 그랬어요.
‘내가 교수가 되면 어떤 연구를 하고 싶다, 나는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저부터 납득해야 남도 설득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려면 제가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뭘 할 것인지 명확히 정리해야 했습니다.
사실 과학은 아이디어고,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이 중요한데, 저는 그저 막연한 꿈과 목표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걸 배우고 그걸 풀어내자는 단순한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제가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 전문연구요원, 기업, 박사후연구원을 거치며 여러 연구를 했는데..이를 어떤 비전으로 종합할지를 교수직에 지원하면서 가다듬었죠.
되돌아보면 진드기가 매개하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진단 연구, 중앙백신연구소에서는 백신 개발도 해봤죠. 사실 백신 연구에는 진단이 필수적으로 결합되고요. 한국축산데이터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동물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를 진단적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결국 제 연구의 집합체는 ‘진단’으로 수렴됐죠.
그게 테네시대학교가 구하던 Department of biomedical and diagnostics의 교수직과 부합했습니다. 그렇게, 덜컥 됐습니다(웃음).
미국 수의대가 교수를 뽑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일단 공고가 나서 서류 지원을 하면, 검토 후에 1차 면접 대상에게 메일로 연락이 옵니다. 저의 경우에는 2025년 6월쯤 지원해서 9월경 줌(zoom)으로 1차 면접을 봤고요, 방문면접(on-site interview) 대상자로 뽑혀 12월 테네시대학교가 있는 테네시주 녹스빌로 갔습니다.
줌 인터뷰는 30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자기 소개하고 어떤 연구를 해왔고, 왜 지원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수에 지원하면 최근 수 년간 발표한 논문들을 주로 보는데, 미국에서는 CV를 내면 전반적인 연구 성과를 본다고 합니다. 설령 최근의 성과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포텐셜을 더 본다고나 할까요?
방문면접은 학교 소개, 면접, 인성평가가 뒤섞인 느낌이었어요. 2박 3일간 진행됐는데, 공항에 마중 나온 교수분을 만나는 것부터 바로 시작입니다. 밥 먹는 것도 인터뷰입니다. 2박 3일간 일어나서 방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교수들을 만나 아침·점심·저녁도 같이 먹고, 세미나도 하고, 일대일로 교수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갖습니다. 저는 일대일로는 15명 정도 만난 것 같아요. 그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이 같은 방식은 제가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한국의 교수 면접과는 좀 다릅니다. 방문면접까지 오면 학교도 저를 어느 정도 뽑고 싶은 단계에 이르러 있고, 저도 이 학교에서의 연구와 생활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다보니 서로 정말 궁금한 걸 물어봅니다. 인터뷰를 하는 교수들만 묻는 게 아니라 저도 지역의 생활이라든지 학교 생활의 불만이라든지 등등을 물어봅니다.
또 요청만 하면 지원자가 궁금한 시설을 볼 수도 있고, 함께 일할 동료들을 만날 수도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동물실험시설을 방문해봤습니다.
이후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됐고요, 올해 2월쯤 다시 녹스빌을 방문했어요. 실험실을 꾸려야 하니 더 자세히 챙겨볼 게 많았고, 생활하게 될 도시도 둘러봤습니다.

미국의 수의대 교수는 자기가 원하는 비율로 업무를 배분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채용 협상 과정에서 학교와 협의하여 정합니다. 연구-진단-교육에 배분한 비중에 따라 후에 Tenure를 위한 평가 항목이 달라지죠. 연구에 비중을 둔 만큼 논문이나 연구비 수주 실적을 요구하는 식입니다. 통상 6년 안에 Tenure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예민한 질문일 수는 있지만, 처우는 어떤가요?
사실 이것도 협상이 가능한 줄 모르고 주는 대로 받기도 했는데요(웃음), 아마 한국에서보다는 많을 것 같습니다. 결혼할 분과 둘이 살기엔 충분할 것 같아요.
신임 교수에게는 연구비도 지원됩니다. 액수를 공개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도 나름 받습니다. 연구비와 연구원 인건비, 시설비로 나뉘고요. 외부에서 연구비를 수주하기 어려운 신임교수가 예비적인 성과(preliminary data)를 만들고, 그걸로 뭔가 과제를 만들어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미국 수의대 교수로서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실 계획인가요?
과거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진드기에서의 신종 병원체를 연구했어요. 그런 연구를 소에서도 해보고 싶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러 바이러스도 찾아냈죠. 얼마나 임팩트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향후에는 백신과 같은 대응책도 개발해야 할 겁니다.
진단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증상 관찰이나 항체 측정 같은 검사에서 나아가, 동물 사육 과정에서 나타나는 숨은 디테일을 찾을 수 있는 인공지능 접목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할 연구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신종 감염병 조사 및 이러한 병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바이러스학과 면역학, 그리고 정밀 진단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고도로 협력적인 다학제간 융합 연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예전에는 그냥 고생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때 생각했던 나름의 목표나 정답지로 상황이 흘러가지도 않았고요. 그럼에도 그 모든 경험이 어떻게든 제가 쓸 수 있는 ‘저’가 되었습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Connecting the dots’처럼요.
살다보면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고,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 많은 경험들이 모두 도움이 되고 ‘자신’이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저도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저와 함께 연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갈 박사과정 대학원생분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해외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면서 소, 염소, 양 등의 반추류나 진드기 매개질병 연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jchae2@ut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