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 박사를 생각하며 태국에서 인생 2막을 열다’ 정현규 태국 콘캔대학교 교수
ASF 대응 노하우 모으며 태국서 돼지수의사 양성..아내와 함께 선교 활동에도 힘써
정현규 태국 콘캔대학교 교수는 베테랑 돼지수의사이자 알아주는 국제통입니다. 한국양돈수의사회(현 한국돼지수의사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2 세계양돈수의사대회(IPVS congress), 2019 아시아양돈수의사대회(APVS congress)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열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22년, 31년간 근무한 도드람양돈농협의 제1호 정년퇴직자가 된 정 교수는 동남아로 떠났습니다. 이미 상재화된 동남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했죠.
태국 콘캔대학교에 둥지를 튼 지금은 태국에서 돼지수의사를 양성하며, 선교활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한국을 찾아 독립운동과 전후 재건을 도운 스코필드 박사의 발자취를 좇고 있습니다.
동기인 한정희 강원대 교수의 퇴임 기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정현규 교수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어떻게 돼지수의사로 첫 발을 내딛게 되셨나요?
집에서 소나 돼지를 기르기도 했고, 식량동물(food animal)을 다루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졸업고사를 앞두고 있던 83년 11월 고 박응복 교수님께서 “제일종축에서 수의사를 구한다”면서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시길래 얼른 손을 들었죠. 바로 제 손을 이끌고 면접을 보게 해주셨어요. 그렇게 졸업하기도 전인 12월부터 출근했습니다. 국가시험 볼 때 사흘만 휴가를 받았죠(웃음).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돼지농장이 제일종축이었어요. 제가 서울대 수의대 79학번인데, 64학번이신 우영제 선배님이 농장장이셨고, 그곳 상무가 다비육종의 윤희진 회장이셨죠. 그렇게 8년을 농장에 있었습니다.
국제적인 활동에도 원래 관심이 많으셨나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제 학창시절에 [김찬삼 세계여행기]라는 책이 있었어요. 1950년대부터 세계여행을 다닌 이야기를 담고 있었죠. 그 책을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돈을 벌게 되면 1/3은 생활에, 1/3은 저축에, 1/3은 여행에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제일종축에서 근무하던 중 SPF 돼지 생산을 추진하는 일을 제가 맡게 되어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됐어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도 전이었죠. 일본도 한국과 교류가 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일본의 앞선 양돈수준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간 김에 일본의 돼지수의사를 좀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마땅한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잘 하지도 못했던 영어로 일본 현지의 양돈전문 잡지사에 대뜸 팩스를 보냈습니다. “나는 한국의 농장에 근무하는 수의사인데, 일본에서 돼지를 잘 키우고 유명한 수의사를 소개해주십시오” 하고요.
그랬더니 정말 오라고 하더라고요. 현지 수의사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의사소통할 수준으로는 일본어를 할 수 있지만, 당시는 말도 잘 통하지 못할 때였어요. 그래도 갔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저도 가고, 그쪽에서도 오고..그렇게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도드람양돈농협에 합류한 후로는 좀더 여력이 생겼습니다. 조합 농장에게 도움이 될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태국의 CP그룹 같은 양돈 대기업과도 연이 닿았죠.
미네소타대학의 주한수 교수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교수님 제자들이 여러 나라에 있다 보니 소개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국제활동을 이어가셨군요
아시아양돈수의사회(APVS)를 창립하면서 한국에서 첫 대회를 열 때 해외 업무를 맡았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 수의사들과 인연이 있으니 각국을 다니면서 APVS를 조직하자고, 사람을 모아왔죠. 그러면서 더 친해졌습니다.
2012년 제주 IPVS 대회를 준비할 때도 재정분과에서 후원과 참석자들을 유치하면서 각 나라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도드람양돈농협도 점차 발전하면서 해외에 견학갈 일이 많았는데, 그것도 활동폭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됐죠.
이런 국제활동은 정말 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제 커리어는 물론 도드람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조합원들의 해외 연수 기회를 만들기도 하고, 좋은 정보를 확보할 수도 있었죠.
국가 방역에도 기여했습니다. 현재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전신인 ‘돼지열병박멸대책위원회’에 1년여 파견을 나갔던 일이 있는데, 당시 네덜란드의 돼지열병(CSF) 발생 사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비공식적으로 아는 분을 통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2010년 구제역 사태 당시에도 함께 발병했던 일본의 사례와 대응책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했었죠.

태국의 교수는 어떻게 되신 건가요?
2022년 도드람을 퇴임한 후 상임 고문을 맡아 동남아를 많이 다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문제가 지속될 테니 상재화된 현지의 대응 경험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베트남 축산을 지원하는 ODA 사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ASF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현지 수의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현지의 ASF 발생농장도 많이 가봤죠. 아예 베트남 호치민에 머무르면서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들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동남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니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수의사들이 ‘여기도 와라’며 제안도 많이 주셨죠(웃음). 일본, 태국, 중국, 대만 등 각국의 전·현직 돼지수의사회장들도 수십 년간 교류했던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태국 콘캔대학교에서도 방문 요청이 왔죠. 주한수 교수님의 제자로 미네소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콘캔대 교수로 있었는데, 그 친구가 불러서 가보니 학장과 밥을 먹자는 거에요. “얘기 많이 들었다”면서 교수 제안을 하더라고요. ASF를 포함해 양돈 현장의 경험이 많으니 전수해달라고요.
마침 콘캔은 한국 교민이 거의 없는 곳이고, 그 곳에서 한국인 선교사를 구한다는 소식도 당일 접했습니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주님께서 예비해주셨다’고 표현하는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 활동이 태국행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군요
제 아내가 목회자거든요. 50대가 되었을무렵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을 갔죠. 선교 활동에도 관심이 있어 대학원에서 선교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은퇴 이후에는 보다 진지하게 고려하게 됐어요. 정년 즈음에 장로회 총회에서 선교자가 되기 위한 정식 교육을 받아두었습니다. 동남아 각국을 다니면서 선교지를 물색하기도 했죠.
제가 수의대를 다닐 때 가르쳐주셨던 고 박응복, 고 이장락 교수님 같은 분들은 생전의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일했던 분들이에요. 스코필드 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의학으로 기여하며 선교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한 켠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선교를 위해 일제강점기 한국을 찾았다가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고 만세 시위 현장의 사진을 해외 언론에 보도하는 등 한국 독립에 기여했다.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추방당했다가 광복 후 1958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수의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70년 영면 후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됐다-편집자주)
그렇게 2023년 10월에 태국행을 결정하고, 그 이듬해초 콘캔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주거지도 알아봐주고 바로 정착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데 태국은 불교 국가 아닌가요?
맞아요. 국교가 불교입니다. 크리스천이 1% 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외국인 크리스천이자 선교사이면서, 국립대인 콘캔대 교수이니 공무원 같은 신분이기도 하죠.
불교 국가이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어요. 불교 행사에 가야 하더라도 의식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게 양해해주거나 하는 식이죠. 교수로서 참여해야 하는 주말행사도 종종 있는데 저는 선교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제 나이가 이미 태국에서도 정년을 지났어요. 풀타임이지만 계약직이죠. 급여 대신 강의시간 이외에는 제 연구나 국제 활동에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협의했습니다.
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태국 수의과대학의 돼지 임상 교육도 궁금합니다.
콘캔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마지막 학년인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격주로 강의를 6시간, 실습을 6시간 하는 식입니다.
태국은 6월 중순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데요, 6학년생들은 6학년을 시작하자마자 6월말에 수의사 국가시험을 치르더라고요. 수의대생이면서 수의사인 신분으로 마지막 학년을 보내면서 심화 교육을 받습니다.
수의과대학별로 교육에 재량권이 있는 점도 특징적입니다. 대도시인 방콕의 수의대는 소동물을 주로 가르치고, 축산업이 큰 콘캔에서는 농장동물을 주로 가르치는 식이죠.
콘캔의 6학년에는 모든 학생이 소 사육농장, 돼지 사육농장에 매주 나갑니다. 각 축종별 농장에서 8회 이상 실습해야 합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실습농장도 잘 되어 있어서요, 5학년 2학기에는 채혈이나 임신 진단 같은 기본 술기에 대한 실습교육이 격주로 진행됩니다.
특히 6학년 2학기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 대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데요, 저도 돼지 전문 과정을 맡고 있습니다. 몇 주는 농장에서 보내고, 몇 주는 심화된 이론 교육을 실시하는 방식입니다.
외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양돈 농장이나 CP 같은 대기업도 계속 방문하면서 노하우를 얻고 있어요. 지금도 매달 베트남을, 2개월 마다 일본을 가면서 ASF나 CSF 관련 정보도 파악하고 현지 수의사들과 교류하고 있죠.
그렇게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선교 활동을 주로 합니다. 콘캔대학교 인근에 학생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운영하고 있고요, 콘캔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골에도 갑니다. 모든 교인이 현지인이에요.

고령의 나이에 해외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콘캔이 워낙 한국인이 없는 곳입니다. 아내와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면 한국말을 쓸 일이 아예 없어요. 이러다 한국말이 서툴러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죠(웃음). 한식당도 없고 아예 한국 음식을 만들 재료부터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
사실 모든 선교사 분들이 그렇겠지만 교인들도 도와드려야 하고, 교회에서 키는 에어컨 전기값도 고민이긴 하죠. 그래도 연금으로 제 생활은 할 수 있으니 행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잘 정착한 것 같아요. 현지 수의사들을 통해 여러 분들을 소개 받을 수 있었어요. 그저 외지인 선교사가 아니라 친구로, 친구의 친구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 같네요.
‘글로벌 역량을 길러야 한다’, ‘국제 수준의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 많이 듣지만, 임상수의사가 실제로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간 차원의 교류는 중요합니다. 수의사로서도 그래요. 아프리카돼지열병도 그렇듯 질병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가 공문으로 요청하면 얻기 어려운 정보도, 아는 수의사를 통해 알아보면 현장감 있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것도 사심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오래된 인연에 기반해야 합니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태국도 마찬가지고요. 갑자기 찾아와서 수출하고 싶다, 우리 물건을 사달라고 하면..쉽지 않습니다. 관계가 참 중요한데, 하루 아침에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수의사로서 전공 분야의 역량을 쌓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지역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는 접점이 있지만 동남아로는 네트워크가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산업적으로도, 질병적으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수의사로서 해외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좋아서 하다 보니 엉겁결에 된 거지만(웃음), 큰 기업이나 수의계에서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뒷받침을 해줄 필요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얼마나 태국에 머무르실 예정인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교수로서는 콘캔대학교와 내년 연말까지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알 수 없죠(웃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교 활동은 계속 하고 싶어요. (건강 문제로)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상황이라면 돌아와야 하겠지만요.
지금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수의사이자 교수로, 아내는 선교사로서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며 지냅니다. 제가 열심히 본분을 다하는 것 자체가 선교이기도 하고요.
최근에도 한국에 여러번 들어와서 현지 ASF 대응 관련 정보를 전해드리기도 했는데, 이런 역할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수의사를 양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