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 포획은 성공했지만…마취제 없어 코끼리·코뿔소·얼룩말 진료 못 받아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 김규태 회장, 에토르핀 수급·동물원 동물병원 제도 개선 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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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수의사들에게 길을 열어달라”

지난달 대전 오월드를 탈출했던 늑구는 무사히 생환했다. 수의사가 마취총을 맞춰 포획했는데, 큰 대형견 수준의 체구였던 늑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큰 동물이었다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 김규태 회장은 5월 13일(수)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열린 대한수의사회 산하단체장 간담회에서 동물원의 대형 동물 마취에 필수적인 에토르핀(etorphine) 확보 협조를 건의했다.

동물원·수족관 동물을 합법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필요성도 강조했다.

동물원·수족관 수의사의 약품 수급, 진료 기반 확보를 건의한 김규태 회장

동물원 탈출로 소동을 일으킨 동물은 늑구가 처음이 아니다. 2023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는 3시간여 만에 무사히 포획됐다. 하지만 다른 맹수들의 탈출은 죽음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2023년 고령 농장에서 탈출한 사자 ‘사순이’, 2018년 오월드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는 시민 안전을 이유로 사살됐다.

김규태 회장은 이날 “동물원 수의사들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탈출한 동물을 살려서 돌려보내려 해도, 동물원 안에서 진료하려고 해도 마취가 필요한데 적절한 약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제가 에토르핀이다. 사람과 반려동물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마취제에 비해 훨씬 효능이 높아 영양류, 얼룩말, 코뿔소, 코끼리, 기린 등 대형 초식동물을 마취하려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다.

김규태 회장은 “(에토르핀은) 60~70년 정도 사용된 오래된 약이지만 아직도 대체할 약물이 없다”고 말했다.

2023년 무사 귀환한 얼룩말 ‘세로’의 포획 사례도 이면에는 약재 부족이 있었다. 당시 블로우건을 7번이나 맞춘 끝에 포획에 성공했다. 그만큼 높아진 마취제 투여량의 위험성을 감수한 셈이다. 김 회장은 “에토르핀이 있었다면 극소량만 투입했어도 바로 마취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폭넓게 활용되는 근이완제인 메데토미딘의 경우 동물원 동물에는 고용량 제형이 더 적합한데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지목했다. 블로우건이나 마취총으로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약액의 부피가 제한적이다 보니 고효능 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물원 사육 장소 내에 있는 동물에도 여러 번 쏘는 게 부담인데, 탈출 사고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김규태 회장은 “당국에서는 대한수의사회 등 관련 단체의 건의가 있으면 검토해볼 수 있다고 한다”면서 수의사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국내 동물원에서 에토르핀을 활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10년 전후 서울대공원에서 에토르핀을 확보해 사용한 바 있다. 당시에는 얼룩말 등 관련 동물의 검진·치료를 활발히 진행하기도 했지만, 이후 재공급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소진된 이후로는 대형 초식동물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상태다.

김규태 회장은 “해외에서도 꼭 필요한 약물인만큼 별도의 교육도 받고 엄격한 관리 하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수의사회 우연철 회장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식약처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보겠다”고 답했다.

동물원·수족관의 동물병원 관련 제도 개선도 건의했다.

서울대공원이나 청주동물원 등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동물원은 동물병원도 자체적으로 개설할 수 있지만 에버랜드나 오월드, 아쿠아플라넷 등 사설 동물원·수족관은 영리법인 개설제한에 막혀 자체 동물병원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월드는 대전시가 동물병원을 개설했고, 에버랜드는 별도의 진료법인을 만들어 삼성 에버랜드 직원이었던 수의사들이 사표를 쓰고 해당 진료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규태 회장은 동물원과 분리된 동물병원은 안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수족관은 그조차도 어려워 (따로) 계약된 동물병원을 통해 약품을 구하는 등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동물원·수족관은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여야 잘 진료할 수 있는 분야”라며 안정적인 진료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우연철 회장은 대기업 등이 소속 직원에 대한 진료에 국한한 ‘부속 의료기관’을 둘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사례를 거론하면서도 “조심스럽다”며 보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사내 진료소’ 개념의 부속 의료기관 형태로 동물원이 자기 소유의 동물원 동물만 한정적으로 진료하는 형태의 동물병원을 둘 수 있도록 예외를 만든다면 사설 동물원·수족관에도 동물병원이 마련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갖가지 변칙 동물병원을 허가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며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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