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투더퓨처:이민 수의사②] 개원으로 뿌리 내린 이기은 원장


5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1부](보러가기)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Dr. Lee의 좌충우돌 미국 수의사 도전기』를 집필한 이기은 수의사는 그 후로도 미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봉직수의사 생활을 마치고 작년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풀러턴에서 자신의 동물병원을 열었습니다.

이기은 원장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PAVE 과정을 마친 뒤에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GP로 첫 취업을 했어요. 미국인 원장님이 운영하던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2년 정도 단위로 이직을 했습니다. 중간에는 relief doctor로 대진 진료를 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GP로서 경험을 쌓다가, 작년 4월에 오렌지 카운티의 풀러턴에서 개원을 하게 됐습니다.

개원을 하고 나서야 ‘아, 내가 진짜 미국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Associate 수의사로 일할 때는 진료만 잘하면 됐거든요. 보호자와 직원들을 중심으로 병원 안에서의 생활이 거의 전부였죠.

그런데 개원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허가를 받기 위해 공무원들을 만나야 했어요. 의료기기 영업사원, 변호사, 세무사와도 직접 이야기를 해야 했고요.

진료만 하던 수의사가 아니라, 미국 사회 안에서 계약을 맺고, 행정과 세금을 처리하는 사람으로까지 역할이 확장되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부터 언젠가는 개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일하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철학으로 병원을 운영해 보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수의사 한 명이 진료하는 작은 병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고용 관계를 넘어 병원의 방향성과 성장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Associate 수의사들이 진료만 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병원을 함께 키워간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개원을 할 때에 기존 병원을 인수하는 방법도 고민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매물로 나온 병원들 대부분이 20~30년 이상 된 곳들이었고 시설이나 장비가 많이 낙후돼 있었습니다. 제 철학과 맞는 병원을 찾기 어려웠죠.

결국 허가부터 공사, 집기까지 모두 새로 준비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제가 원하는 구조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기준은 ‘내가 살고 싶은 곳이냐’였어요. 수익만 생각하면 동물병원이 적은 사막 지역이 더 유리할 수도 있죠. 신규 보호자를 모으기도 쉽고요.

하지만 병원을 키우려면 결국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Associate 수의사를 구하기 쉽고, 장기적으로 팀을 만들 수 있는 지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개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었어요. 어디에 정리된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대부분 선배들 경험을 귀동냥으로 듣고 하나씩 따라가면서 배웠습니다.

부동산 중개인, 변호사, 마케팅 업체, 은행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는데, 미국 사회가 아직 낯설었던 때라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큰 대출을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이 오피스가 동물병원 규제에 맞는지도 직접 확인해야 했고요. 그 모든 과정이 리스크였고, 동시에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민 수의사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운영 단계에서는 인사 관리입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노동법이 굉장히 엄격한 주라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단순히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요. 진료 외적인 영역에서도 계속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큰 방향에서는 상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아마 한국에서 개원의의 삶과도 비슷할거에요. 다만 일이 정말 많아졌죠. 개원 전에는 주 4일 근무하면서 휴가도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지금은 주 6일 근무에 사소한 일도 다 제 연락처로 옵니다. 정수기가 고장 나도 제가 연락을 받아요.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다 제 병원이고, 제 책임이니까요. 개원을 자식을 키우는 것에 비유하잖아요. 계속 신경 쓰고, 하나하나 챙기면서 같이 자라는 느낌이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아직 개원한 지 1년도 안 돼서 지금은 솔직히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과정에 있어요. 초기 투자 비용도 컸고요. 다만 병원이 자리를 잡고 클라이언트가 늘어나면 점차 안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은 두 배 정도 늘었고, 경제적인 보상은 나중에 1.5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병원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라는 점에서 만족감은 훨씬 큽니다.

해외 생활 자체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진료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생활은 정말 다릅니다. 가족도 없고, 연고도 없는 상태에서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많거든요. 이전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수의사이기 전에 ‘이민’의 단계에서 내가 맞는 사람일지 고민해봐야합니다.

그리고 영어는 정말 중요해요. 아시아 수의사라서 차별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지만, 영어로 소통이 안 되면 보호자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미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임상 수의사라면 특히 수의사로서의 능력만큼이나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AVE 이후에는 OPT로 1년간 일할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병원에 취업해서 영주권이나 H-1B를 준비하게 됩니다.

다만 요즘은 OPT 1년 안에 영주권을 받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어렵습니다. H1B도 현재 정책 변화로 인해 받기가 굉장히 까다로워졌습니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민 변호사와의 상담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때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정말 많았거든요. 이게 맞는 선택인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계속 불안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계획은 중요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까지 다 끌어안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고, 기회가 오면 도전하고, 나머지는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결국은 길이 만들어지더라고요.

병원을 더 성장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여러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만 혼자 잘되는 구조보다는, 함께 일하는 수의사들이 병원의 비전과 방향성을 공유하고 오래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한국 학생들에게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 역시 학생 때 미국에서 실습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직접 와서 경험해보는 게 이 길이 나에게 맞는지 판단하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진료 기술뿐 아니라, 미국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는 삶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30년차 미국수의사인 윤기종 원장을 [3부](보러가기)에서 만납니다<편집자주>

이한희 기자 hansoncall911@gmail.com

데일리벳 관리자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