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2025년 기술사업화 비즈니스모델(BM)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에스동물메디컬센터·에스동물암센터 허찬 원장님이 창업한 회사가 장관상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허찬 원장님이 맞나?’ 싶었는데, 아이디어 명칭에 ‘수의학’이 있는 것을 보고, ‘허찬 원장님이 맞구나’ 생각했습니다.
평상시에도 ‘공학도 같다’, ‘인공지능(AI)을 잘 아는 것 같다’, ‘천재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창업한 회사로 장관상까지 받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허찬 원장님을 만나 ‘AI에 왜 이렇게까지 진심인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대표님(오늘 인터뷰에서는 대표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방사선 치료 관련 인터뷰 이후 벌써 3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에스동물암센터 허찬입니다. 지난 3년간 정말 바쁘게, 하지만 즐겁게 지냈습니다. 병원 내 방사선 치료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개인적으로는 수의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Q. KAHA 병원경영혁신위원장 활동, 농식품부 데이터 과제 논의 등 최근 데이터와 AI 분야에서 굉장히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네, 사실 제가 원래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습니다. AI는 GPT-3가 나오기 전 초창기 모델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GPT-3를 처음 접하고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코딩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당시엔 AI 코딩 툴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매일 4시간씩 주 5일, 두 달 동안 ‘Print(Hello World)’부터 시작했습니다.
코딩과 API 활용법을 익히고 나니 만들고 싶은 게 많아지더군요. 처음에는 GPTs를 활용해 수의학 논문을 번역하고 요약해 주는 툴을 만들어 ‘허찬천재’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을 붙여 동료들에게 공유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이후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최이돈 회장님의 제안으로 이사진에 합류하게 되었고, 수의학과 산업의 혁신을 위해 데이터와 AI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어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농식품부와도 데이터 구축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사분이 뜻을 모아주고 계십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에이아이포펫’ 같은 수의학 솔루션부터 제미나이(Gemini), 챗GPT 같은 범용 LLM까지 다양하게 활용하며 매월 구독료만 50만 원 넘게 쓰고 있습니다.
Q. 대학원도 다니고 계시는데, 어떤 공부를 하나요?
코딩 학원을 수료하고 나니 공학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유니스트(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MOT)에 입학했습니다. 공학을 베이스로 한 MBA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코딩, 데이터 분석, 회귀분석, 벡터 등 공학적 지식과 경영을 함께 배웁니다. 주 3회 수업에 과제도 많지만 재미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필리프 아기옹의 ‘창조적 파괴의 힘’과 관련된 ‘Science of Science(과학의 과학)’ 과목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계량서지학을 활용해 논문의 흐름을 분석하는 분야인데, 지도 교수님과 함께 수의종양학 논문들을 분석하며 새로운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병원 경영과 임상 연구 모두에 큰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 동료 수의사분들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2025 기술사업화 비즈니스모델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아이디어였나요?
‘환자별 맞춤 치료를 지원하는 수의학 AI 모델’을 프로그래밍하여 시연했습니다. 각 대학 교수님들의 추천을 받은 14개 팀이 본선에 올랐는데, 유니스트 대표로 출전하여 감사하게도 최우수상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의학 AI의 필요성과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Q. 창업하신 ‘춘옥컴퍼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6차 대멸종을 막는 수의학 AI Agent’를 개발하는 기업, 춘옥컴퍼니입니다. ‘춘옥’은 부모님의 성함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을 건 만큼 윤리적이고 따뜻한 기술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론에 공감하는 공리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똑똑한 AI가 아니라, 동물의 행복 총량을 늘리는 ‘공리주의적 수의학 AI’를 지향합니다. 기술적으로는 Llama, Qwen 같은 오픈소스 모델을 수의학 데이터로 정교하게 미세조정(Fine-tuning)하여 사용합니다. 특히 서울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 천명선 교수님 팀과 협력하여 주기적인 윤리 검증을 거침으로써, AI의 성격을 윤리적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거칠 겁니다.
지난 9월 창업 후, 10월 첫 IR을 통해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투자를 유치했고, 이어 11월에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습니다. 덕분에 2년간 7억 원의 R&D 자금을 확보하여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팁스 선정 과정에서 수의사 선생님들의 구매의향서 130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단 24시간 만에 모인 동료들의 지지가 심사위원들에게 시장의 니즈를 확실히 증명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Q. 임상 수의사로서 느낀 불편함이 창업으로 이어진 건가요? 창업 계기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종양학은 무엇보다 EBM(근거 중심 의학)이 생명입니다. 정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 논문을 검색하고 책을 뒤지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범용 LLM은 그럴듯한 거짓말(할루시네이션)을 너무 잘해요. 내가 원하는 내용과 딱 맞는 논문을 찾아주면 십중팔구 존재하지 않는 가짜 논문이죠.
그래서 RAG(검색 증강 생성) 기술에 주목했습니다. 쉽게 말해 AI에게 ‘우리 도서관(검증된 자료)에 있는 책만 보고 대답해’라고 제한을 거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니 거짓말은 획기적으로 줄고 전문성은 높아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ChatS’라는 병원 전용 AI를 만들어 원내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울산에 7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는 뉴스를 보고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차피 AI 시대가 온다면, 외부 기술에 휘둘리지 말고 수의사가 주도하는 윤리적인 AI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AI 리터러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친동생을 설득해, 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Q. 병원 경영과 스타트업 운영은 결이 다를 것 같습니다. 병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동물병원을 11년간 운영하며 직원이 7명에서 120명으로 늘었습니다. 스타트업은 이제 3개월 차지만, 본질은 같다고 느낍니다. 저는 병원 경영에서 세 가지 원칙을 지킵니다.
첫째, 미션에 맞지 않는 의사결정은 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거래는 상호 이득이 있어야 한다.
셋째, 결정보다 실행이 더 중요하다.
이 원칙은 스타트업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다만 스타트업은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습니다. 특히 팁스(TIPS) 같은 프로그램은 기술력을 검증받는 좋은 관문입니다. 많은 투자사가 반려동물 시장이 작다고 우려했지만, 저희는 유니스트와 팁스 IR을 통해 저희의 가설을 검증받으며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수익화가 가능한 꼭 필요한 기술’임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대표님이 그리는 수의학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현직 원장이 스타트업을 병행하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오히려 1개월 만에 투자 유치와 팁스 선정, 장관상 수상까지 이뤄냈습니다. 그만큼 수의학 바이오산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년 하반기 정식 출시를 목표로, 수의학 파운데이션 모델을 완성한 뒤 내과, 외과, 영상의학 등 전문 분야별로 특화된 모델을 증류(Distillation)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미국의 의료 현장을 보면 “The future of EHR is without EHR(전자차트 없는 차트의 미래)”라는 말이 나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AI가 대화를 듣고 차트를 작성하며, 검사 결과 판독부터 처방 추천, 근거 논문까지 꼼꼼히 제시해 줍니다. 의사는 환자와 눈을 맞추고, AI가 제안한 처방을 최종 검토하여 승인만 하면 됩니다. 많은 연구에서 오진이 줄고 성과가 늘어났습니다.
저희가 꿈꾸는 미래도 같습니다. AI는 수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의사의 능력을 ‘증강(Augmentation)’ 시켜주는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진과 실수는 줄이고, 수의사는 진료 본연의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동료 및 후배 수의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융합의 시대입니다. 수의학이라는 탄탄한 도메인 지식 위에 공학적 사고가 더해지면 전무후무한 경쟁력을 갖춘 ‘블루오션’이 열립니다. 동시다발적인 혁신을 통해 수의학 산업의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유능한 후배님들이 많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저처럼 코딩부터 배워보셔도 좋고, 해외로 나가셔도 좋습니다. 수의학과 공학을 잇는 융합 인재가 되어, 미래 수의학의 혁신을 함께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