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돌봄의 정치’를 묻다..생추어리의 정의·법제화·지역사회 공존 모색

2025 생추어리를 생각하는 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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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웅담채취용 사육곰 산업의 법적 종식을 앞두고 지난 9월 동물보호단체들이 농장으로부터 매입·구조한 곰 10마리가 전남 구례군 사육곰 보호시설로 이송됐다.

정부 예산을 들여 만든 일종의 공공 생추어리인 셈인데, 이 외에도 이미 여러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종의 동물들을 보호하는 생추어리를 자체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토) 연세대학교 위당관에서 열린 ‘2025 생추어리를 생각하는 포럼’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보금자리 선언’을 계기로 결성된 ‘생추어리를 생각하는 모임(곰보금자리프로젝트, 동물해방물결, 새벽이생추어리)’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생추어리의 개념부터 운영 원칙, 제도적 기반, 돌봄 노동, 지역사회와의 공존·협력 등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이날 논의는 “생추어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으로 수렴됐다.

(사진 : 동물해방물결)

포럼의 문을 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대표는 생추어리를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에게 평생의 돌봄을 제공하는 피난처’로 정의했다.

비영리 운영, 비(非)번식, 비상업화, 제한적 관람 등 국제 생추어리연맹(GFAS) 기준을 바탕으로 생추어리의 핵심 조건을 짚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안내 없는 관람 금지’와 ‘연구 제한’ 원칙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설의 역할과 동물의 유래를 안내자가 설명하는 구조를 갖추고, 연구 또한 동물의 복지와 안락사 기준 등 윤리적 원칙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작년 발표된 ‘보금자리 선언’을 언급하며, 생추어리가 동물을 삶의 주체로 대하고 새로운 인간–동물 관계를 탐색하는 공간임을 설명했다. 그는 이를 “통제보다는 돌봄과 존중을 중심에 둔 실천”으로 규정했다.

새벽이생추어리 그린 활동가는 국내 첫 생추어리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마주한 실질적인 고민을 공유했다. 구조된 동물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부터 생추어리 환경으로의 적응, 이어지는 장기 돌봄 등 운영 과정의 복합성을 지목했다.

GFAS 기준을 참고해 마련한 내부 지침을 소개하면서 “동물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는 공간 조성이 운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번식 원칙이 생추어리의 수용 능력과 돌봄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는 실제 운영 과정의 다양한 쟁점들이 제도적 논의와 지속적인 평가로 이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물해방물결 김도희 대표는 생추어리가 국내 법체계에서 명확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현재 생추어리는 기존 지자체 보호센터나 민간 보호시설과 법적 범주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운영 기준과 책임 구조가 불명확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금자리 법률안과 동물보호법 개정안 초안을 소개하며, 생추어리의 목적과 원칙을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보금자리가 법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은, 돌봄이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사건”이라며 제도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사진 : 동물해방물결)

포럼은 동물을 돌보는 노동과 관계를 재해석하는 정치학적 논의로 이어졌다.

김민재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는 동물 돌봄 노동의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를 지적하며, 대상에 대한 정서적 존중을 본질로 하는 돌봄 노동의 공공 영역 제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는 돌봄을 역동적이고 위험성을 내재한 ‘관계’로 정의했다. 그는 돌봄의 외주화 대신 시민 모두가 삶에 돌봄을 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물 생추어리가 지역사회에 공존하며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는 실제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이승찬 동물해방물결 캠페인국장과 김경림 인제 신월리 달뜨는마을 영농조합법인 사무장은 ‘달뜨는 보금자리’ 사례를 소개하며 동물·청년·주민이 공존하며 지역 경제와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지역 밀착형 모델을 설명했다.

함정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중랑천팀장은 ‘Rewilding’을 목표로 서울 동북권 생태계 거점으로 조성된 중랑천 생추어리 사례를 발표했다. 시민, 예술가 등 다양한 집단이 주체가 되는 공존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전달했다.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는 법·제도적 기반, 돌봄 노동의 범위, 지역사회 협력 가능성 등이 활발히 논의됐다. 이를 통해 생추어리를 둘러싼 현장의 요구와 정책적 과제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 드러났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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