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삶은 크고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우리는 때론 멈추기도, 달리기도,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하며, 바른 방향을 찾아갑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은 하루동안 선배님(동료 수의대생)들의 모험에 동행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수의사들(개척해 나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 [어드벳(VET)쳐]에서 우리들의 특별했던 하루를 전합니다.
국내 수의 임상 분야에서 방사선 치료(Radiation Therapy, RT)가 도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내과적 항암 치료나 외과적 수술 외에는 종양 환자에게 뚜렷한 치료 선택지가 없었다.
약 6년 전부터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종양 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치료 옵션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국내 방사선 종양학 분야의 선구자들은 어떤 고민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방사선 종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경상국립대학교 수의과대학 황태성 교수와, 실제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에스동물암센터의 최문영 센터장을 만났다.
사람 의학에서는 비교적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방사선 치료가, 반려동물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자 현장을 찾았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부속동물병원에는 방사선 치료 장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치료는 양산에 위치한 에스동물암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에 경상국립대 영상의학과와 에스동물암센터 양쪽에서 하루씩 취재를 진행했다. 방사선 치료의 과정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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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에 앞서, 방사선 치료가 생소할 기자를 위해 경상국립대학교 수의영상의학과 황태성 교수님께서 방사선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상국립대학교 동물병원 병원장 황태성입니다. 현재 수의영상의학 및 수의방사선종양학을 맡아 반려동물 환자의 진단과 치료, 학생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
2017년 박사 졸업 후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는데요, 그 시작은 인병원의 방사선종양학과였습니다. 사람 병원에 상주하며 방사선치료의 이론과 임상적 적용을 배운 후 미국의 VCA West Coast Specialty Animal Hospital과 콜로라도주 Flint Animal Cancer Center에서 연수하며 방사선종양학의 국제적 흐름과 기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방사선치료센터가 없던 시절, 종양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반려동물에게도 방사선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으로 수의 분야에 도입하게 됐어요. 2017년 뇌종양 환자에게 처음 방사선치료를 적용한 이래 현재까지 8년간 다양한 환자에서 치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수의 방사선 치료는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요?
누군가는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 수의 임상에서는 여전히 종양 치료의 표준화가 부족했고, 치료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 병원과 미국 수의방사선치료 센터에서의 학습과 경험을 토대로, 수의 방사선 치료의 도입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죠.
이후 국내에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전국 각 수의과대학과 컨퍼런스에서 강의와 홍보 활동을 병행하며 인식 변화에 힘썼습니다. 반려동물도 사람처럼 종양 치료에서 방사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방사선 치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방사선치료의 가장 기본은 종양에는 최대한의 선량을, 정상조직에는 최소한의 선량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균형을 잡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치료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근치적 치료인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치료인지 먼저 정하고, 그 목적에 맞게 선택합니다.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치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방사선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방사선치료는 고에너지 전리방사선을 이용해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키고, 이를 통해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사멸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정상세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최대한 종양에는 높은 선량을, 정상조직에는 낮은 선량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치료 계획을 세웁니다.
치료는 보통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1) 상담: 종양의 종류와 위치, 병기 등을 고려해 치료 여부와 프로토콜을 결정합니다.
(2) CT 시뮬레이션: 치료 계획 수립을 위한 영상 촬영과 함께 보정틀을 제작합니다.
(3) 계획 수립(Planning): CT 영상 기반으로 며칠간의 정밀 치료 계획을 세웁니다.
(4) 치료 진행: 1회에서 20회까지 다양한 횟수와 선량으로 치료가 진행되며, 마취가 필요합니다.
(5) 경과 관찰: 급성 부작용 평가는 1개월 내, 영상 재평가는 보통 치료 후 3~6개월 내에 이루어집니다.
좋은 예후를 보인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좋은 예후를 보일 수 있는 환자들은 방사선에 감수성이 높은 종양(특히, round cell tumor)이거나 조기에 진단되어 치료를 받게 되는 환자들입니다. 좋은 예후를 보였던 많은 환자가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는 1세령의 종격동 T세포 림프종 환자입니다. 호흡곤란이 심했지만 방사선치료 직후 종괴가 크게 감소했고, 이후 항암치료까지 병행하여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기 발견된 비강 종양 환자입니다. 임상증상이 없었지만 CT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고, stage 1의 비강암종으로 진단되어 방사선치료를 진행한 결과 4년째 재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조기진단 환자들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보니 더욱 깊은 인상이 남네요.
방사선 치료와 관련해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연구가 있나요?
현재는 방사선 치료 전후로 종양의 반응이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나 유전자 변화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또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협력하여 기존의 외부 방사선치료보다 더 효과적이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조만간 발표될 예정인데요, 향후 기존 치료에 반응이 없던 종양이나 부작용이 큰 치료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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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방사선 치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한 후, 본격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양산에 위치한 에스동물암센터에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오전부터 바쁘게 방사선 치료(RT)를 진행할 환자의 planning을 하고 계신 최문영 센터장님을 만났다. 센터장님은 경상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의영상의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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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를 전문으로 하시는 센터장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보통 하루 평균 5마리 전후로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고, 일주일에 4마리의 신규환자를 받습니다. 환자마다 RT를 진행하는 시간이 다르게 정해져 있어서 매일의 일과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아요.
사실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시간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아요. 하지만 방사선 치료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방사선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앞으로 진행하게 될 치료를 미리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CT simulation 촬영을 하고, 촬영한 영상 이미지의 각 슬라이드마다 종양과 정상장기를 구분하여 컨투어링(contouring)하죠. 이를 기반으로 원하는 영역에 정확한 방사선을 조사하고, 주변 정상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합니다.
장기의 움직임, 영상에 보이는 종양 영역과 보이지 않지만 침습이 의심되는 영역, 인접한 조직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종양과 정상장기를 구분해 그리는 과정은 하나씩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한 마리를 계획하는 데 반나절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또한 방사선 치료 기기도 정기적으로 점검합니다. 온도, 습도, 기압 등 주위 환경 변화에 민감하거든요. 이러한 QA(Quality Assuarance)는 사람 병원과 동일하게 일일(daily), 월간(monthly), 연간(annual)으로 모두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치료의 정확성과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절차에요.
또한 환자마다 계획한 치료가 기계에서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patient QA도 치료 전에 선행되어야 하죠.
쉽게 얘기하면, QA란 계획한 선량을 환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차를 줄이기 위한 모든 과정입니다. 방사선은 한 번 조사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모든 QA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필수적으로 진행합니다. 필요한 경우 교정을 통해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안전하고 정확한 치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센터장님께서는 어떻게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종양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마련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반려동물 환자들 대부분은 사람과 달리 종양이 초기에 진단되어 내원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종양이 많이 진행되어 증상이 발현된 뒤에 내원하게 되면 수술적 접근이 어렵거나, 이미 수술로는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보호자와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었죠.
방사선 치료는 바로 그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수술해도 완전절제가 어려운 경우 수술 후 종양세포가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에 방사선을 조사해 재발 확률을 낮추거나, 수술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비침습적으로 종양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또한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에서 환자들이 남은 시간을 고통스럽지 않게, 그리고 보호자와 행복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어요. 결국 환자의 ‘삶의 질’을 지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종양 환자 복지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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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하루 동안 양산 에스동물암센터를 방문해 방사선 치료 과정을 취재했다. 이날 오전에는 방사선 치료를 막 시작하는 환자를, 오후에는 CT 시뮬레이션 촬영을 진행하는 환자를, 그리고 치료 중간 단계에 있는 환자를 각각 관찰할 수 있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사에서는 실제 취재 시간 순서가 아닌 방사선 치료의 진행 순서에 맞추어 내용을 구성했다.

환자의 몸에 맞춰서 제작하기 때문에 환자마다 다른 형태다.
Part1. CT Simulation 촬영
오후 3시 반, 말티즈 ‘몽이(가명)’의 simulation CT 촬영이 진행됐다. 비뇨기 종양으로 인해서 수신증 및 배뇨 곤란 증세를 보여 방사선 치료를 고려 중인 환자다. 방사선 치료에 앞서 simulation CT 촬영은 필수적이다.
방사선 치료는 종양에만 정확히 조사되어야 하므로 치료 자세가 매회 정확히 같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고정 기구를 활용하여 환자의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치료기간 내내 동일한 자세가 재현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방사선이 여러 방향에서 조사될 수 있는데, CT simulation에서 얻은 영상 데이터를 통해 선량을 집중시키는 각도, 횟수, 빔 모양 등을 설계할 수 있다. 종양에는 충분한 선량을 주되, 주변 정상조직은 가능한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 CT와 simulation CT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적인 CT를 찍는 것과 전반적인 과정은 동일해요. 하지만 일반 CT는 주로 진단 목적으로 촬영하는 반면, 시뮬레이션 CT는 방사선 치료를 위한 ‘치료 계획 수립용’ CT예요. 그래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우선, 환자의 자세를 정밀하게 고정해야 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수 밀리미터의 오차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때문에 치료 시에 환자의 자세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전용 고정 장치를 사용해 촬영하죠. 호흡이나 장기의 움직임 등을 고려해서 움직임 정도의 영향을 덜 받는 자세로 촬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CT 이미지 위에 ‘contour’를 한다는 점입니다. 방사선 치료는 종양뿐 아니라 주변 정상조직까지 고려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뇌, 척수, 안구, 시신경 같은 정상장기들을 하나하나 그림처럼 그려서 방사선이 어디까지 들어갈지를 정밀하게 계산합니다. 이 작업이 바로 simulation CT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해요.


simulation CT를 통해 얻은 이미지로 RT planning이 진행된다.
Part2. High-dose hypofractionated protocol 1회차
오전 10시에는 ‘단비(가명)’가 뇌하수체 종양 치료를 위해 SRT(Stereotactic Radiotherapy)의 첫 회차를 진행하러 병원에 내원했다.
지난주에 simulation CT 촬영을 마치고 오늘 첫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다.
SRT가 무엇인가요? 방사선 치료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방사선 치료는 ‘얼마의 선량을 얼마나 자주, 몇 회에 걸쳐 나눠서 조사하느냐’에 따라 나뉩니다. 종양의 종류, 침습된 정도, 주위 위험 장기의 방사선 민감도, 종양 치료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protocol을 활용합니다.
먼저, hyperfractionated protocol은 적은 방사선량을 매일 여러 번 나눠서 조사하는 방식입니다. 전체 처방 선량을 높일 수 있어 장기 생존이 기대되는 환자에게 근치적 목적으로 적용하거나, 방사선 조사 후 정상 조직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이고 방사선에 민감한 주위 장기를 보호해야 하는 경우에 선택합니다.
High-dose hypofractionated protocol은 주로 SRT, SBRT(Stereotactic Body Radiotherapy)라고도 하는데요, 고선량을 상대적으로 적은 횟수(3~5회)로 정밀하게 조사하는 방식입니다. 움직임이 없는 장기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경우, 방사선에 민감한 장기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에 마취 횟수를 줄이면서 앞의 protocol과 유사한 치료 효과를 기대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 하루 두 번, 이틀에 한 번 등 다양한 protocol이 있어요. 환자의 상태와 종양 특성, 마취 위험도, 보호자 방문 가능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환자에 따라 알맞은 프로토콜을 선택합니다. 오늘 치료하는 ‘단비’는 총 3회로 SRT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기 전에는 먼저 신체검사 및 혈액검사를 진행하고, 검사 결과 혹은 기저 질환에 따라서 환자에게 마취 전 필요한 처치를 한다. ‘단비’에게 있는 종양은 뇌에 위치하고 있어, 감압주사인 만니톨을 먼저 주사해 마취의 위험도를 낮췄다.
방사선 치료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총 마취 시간은 15-20분가량으로 짧았다.
마취한 이후에는 고정장치를 이용해서 simulation CT를 찍었을 때와 동일한 자세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Cone-Beam CT(CBCT)로 환자의 현재 자세를 확인하고, simulation CT와 비교해 정확하게 위치가 일치하는지 한 번 더 검토한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 방사선 치료를 진행한다.

Part3. hyperfractionated protocol 8회차
오후 1시 30분, 갑상샘암종(Thyroid carcinoma)으로 진단받은 ‘호두(가명)’가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호두(가명)는 한 번에 많은 방사선량을 조사하는 대신, 비교적 적은 선량을 여러 차례 나누어 조사하는 Hyperfractionated protocol을 진행 중인 환자다. 오늘은 총 16회 중 8회차 치료가 진행되는 날이다.
‘호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하는 기간 동안 가능한 같은 시각에 치료를 진행한다. ‘호두’는 매일 오후 1시 반에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방사선 치료 과정은 앞서 SRT protocol을 진행한 ‘단비’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방사선 치료를 매일 같은 시각에 진행하는 것이 좋은가요?
네, 그렇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가능한 일정한 시간에,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행하는 것이 권장돼요. 정상조직이 회복할 시간을 주되, 종양 조직이 재분열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약 20회에 걸쳐 매일 치료하는 경우 정상조직의 충분한 회복과, 종양세포 내 산소 재분포로 인해 방사선 치료 효과가 증가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회당 고선량을 치료하는 경우는 종양이 재증식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주변 조직이 짧은 기간에 과도하게 고선량에 노출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기존 연구와 임상 데이터에서도 대부분 일정한 간격으로 치료를 진행하여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해왔어요. 때문에 치료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실제 환자 치료에서도 유사한 조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달리 매번 전신마취가 요구된다는 점 외에도 반려동물 방사선 치료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방사선 치료의 기본적인 원리와 절차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반려동물은 치료 중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치료 과정에서 전신마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방사선을 조사할 때 통증이 동반되지는 않아서요, 움직임을 제어할 정도의 저농도의 마취만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환자가 증상을 직접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해요. 환자의 행동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가능하다면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경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는 보호자와의 소통입니다. 치료의 목적과 예상되는 결과를 충분히 설명하고, 보호자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해 현실적인 치료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반려동물 환자의 방사선 치료에서는 이러한 신뢰 형성과 소통이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방사선 치료를 하는 수의사가 되기로 택하기 전과 택한 후에 느낀 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공통질문)
종양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방사선 치료라는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릴 수 있다는 부분이 저 자신에게도 위로가 된다는 걸 느껴요.
물론 지금도 뚜렷한 방도가 없는 난처한 상황을 마주칠 때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셔야 한다’ 라는 말을 더 적게 할 수 있고, 실제로 완치는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남은 기간 좀 더 편하게, 행복한 기억을 쌓을 시간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힘들었던 과정들이 다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수의 방사선 치료 분야를 선택하시면서, 혹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거나 흔들렸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당시 국내에서는 수의 방사선 치료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조언을 구할 선배나 동료도 거의 없었죠. 그 점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어요. 대신 사람 의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해외 연수와 관련 문헌을 통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국내 종양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싶었거든요.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방사선 치료’라는 선택지를 하나 더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Part 4. 방사선 치료 후 경과 관찰
양산 에스동물암센터에서의 하루 체험을 하기 전, 경상국립대학교 동물의료원을 방문했었다. 당일 방사선 치료를 마친 지 3개월이 지난 환자 ‘오이(가명)’의 재진이 진행됐다.
‘오이’는 뇌종양 환자다. 종양은 윌리스 동맥이 지나가는 뇌바닥 부위에 위치해 있어 수술적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됐다. 그에 따라 방사선 치료를 택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는 일정한 주기로 종양의 전이 여부, 크기 변화, 그리고 방사선 치료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한 추적 검사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혈액검사(혈구, 혈청검사), 흉부 방사선 촬영, 초음파, MRI, CT 등 환자 상태에 맞는 검사가 진행된다.
‘오이’가 가진 종양은 특성상 빠르게 없어지지 않고, 서서히 크기가 줄거나 일정 크기에서 유지되는 경과를 보인다. 따라서 정기적인 예후 평가가 중요했다.
다행히 이번 MRI 촬영 결과에서는 이전보다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직접 재진 과정을 지켜보며, 방사선 치료는 단순히 치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체계적인 관리와 평가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종양을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 방사선 종양학의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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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마치며..
사람에게서는 항암치료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방사선 치료가, 반려동물에게는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치료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만큼 아직 많은 길이 개척되지 않은 분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분야이든, 사람들이 아직 걷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길 위에서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이제 우리 반려동물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 깊이 다가왔다.
수의학이 발전하면서 반려동물의 수명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고령 반려동물에게서 종양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종양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삶의 질을 크게 저해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예방 방법도 뚜렷하지 않기에, 치료 과정과 선택지가 환자와 보호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런 점에서, 종양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삶의 질과 하루하루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치료 전 긴장한 모습으로 센터를 찾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치료를 마치고 안도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릴 때, 그 보람과 책임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다.
이 경험을 통해, 수의학의 발전이 단순히 기술적 향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반려동물과 보호자에게 행복한 날들을 선물하는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결국 큰 희망이 된다는 사실은, 내가 수의학을 공부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 프로젝트 ‘어드벳쳐’ 다른 기사 보러 가기
박설빈 기자 deers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