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통증을 이해하는 순간, 동물복지가 시작된다”

짐베리 WSAVA 회장, FASAVA2025 콩그레스에서 '통증과 동물복지' 주제로 기조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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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소동물수의사회(WSAVA) 짐 베리(Jim Berry) 회장이 동물복지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짐베리 회장은 10월 31일(금) 2025년 제13차 아시아·태평양 소동물수의사대회(FASAVA Congress 2025) 기조강연(Keynote speech) 연자로 나서 ‘수의학에서 복지와 통증 관리의 교차점(The Intersection of Welfare and Pain Management in Veterinary Medicine)’을 주제로 수의사의 윤리적 역할과 통증 관리의 철학을 심도 있게 다뤘다.

36년 이상 임상수의사로 활동하면서 동물의 통증 관리를 위해 침술, 카이로프랙틱, 재활과 같은 물리 치료까지 적용하는 그는 “수의학의 본질은 복지이며, 통증 관리 없이는 진정한 복지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짐베리 회장은 “수의학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니라, 동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학문”이라며 “수의사가 되는 이유는 동물복지 실현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수의사의 윤리와 태도가 환자의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목소리 톤, 손의 움직임, 진료 태도까지 모두 동물의 스트레스와 복지를 좌우한다”고 덧붙였다.

짐베리 회장은 또한, 동물복지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하며 1960년대 루스 해리슨의 저서 ‘Animal Machines’ 이후 등장한 ‘동물의 5대 자유(Five Freedoms)’와 거기에서 발전된 ‘5대 영역(Five Domains)’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5대 영역은 영양, 환경, 건강, 행동, 정신 상태로 구성되며, 그중 정신(정서적 안녕)은 수의사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핵심 영역”이라고 말했다.

여러 동물 종에 대한 감정과 인지 능력에 관한 연구도 소개됐다.

짐베리 회장에 따르면, 닭도 감정과 기억, 개성을 지니고 있고, 꿀벌도 얼굴을 인식하고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는 “이들이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복지 수준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며 “매년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수분을 위해 5억~10억 마리의 벌이 스트레스로 죽는데, 만약 같은 수의 개가 죽는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며 산업적 관행에 대한 수의학적 재고를 촉구했다.

그는 통증을 ‘단순한 신경 반응이 아닌 감정·기억·환경이 복합된 질환’으로 정의했다. 급성 통증은 생존에 필요한 ‘적응 통증’이지만, 만성 통증은 생물학적 기능을 잃은 ‘부적응 통증’이라며 “통증·불안·공포가 서로 강화되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 수의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짐베리 회장은 또한 “두려움이 있으면 통증이 커지고, 통증이 있으면 두려움이 커진다”며, ‘Fear-Free’와 ‘Pain-Free’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실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너무 밝은 조명과 미끄러운 바닥, 거친 보정은 동물에게 불안을 유발하고 통증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고양이에게는 은신할 상자, 개에게는 미끄럽지 않은 바닥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사람의 통증 치료 사례를 인용하면서 “통증은 신체적 자극이 아니라 감정의 경험이므로 항불안제가 진통제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며 “통증과 감정은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밝혔다.

짐베리 회장은 강연 마지막에 “통증은 체온·맥박·호흡과 함께 반드시 평가되어야 할 생명징후(vital sign)”라며 “통증은 질병이자 복지의 척도다. 이를 다루는 것은 수의사의 윤리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양이와 개의 만성 통증 사례를 통해 “약물 처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경을 조정하고, 보호자에게 행동 변화를 교육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2025년 제13차 아시아·태평양 소동물수의사대회(FASAVA Congress 2025)는 One Vision, One Voice: Advancing Asia Pacific Veterinary Medicine을 주제로 11월 2일(일)까지 이어진다. 80여 개 강의와 300여 개 구두·포스터 발표가 진행되며, 125개 업체의 홍보 부스(205개 부스 규모)가 마련됐다.

33개국에서 4천여 명의 수의사, 수의대생, 동물보건사가 참석했다.

이혜수 기자 studyid0811@gmail.com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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