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 수의대 ‘수바시’, 진로와 진심이 만난 시간
수의사의 인생을 바꾸는 시간 25분, 9인의 연자가 전한 수의사의 길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이 9월 14일(일) 동물병원 강당에서 ‘제1회 수의사의 인생을 바꾸는 시간 25분(이하 수바시)’을 개최했다.
‘당신의 인생의 정답은 무엇입니까?’라는 주제 아래, 9명의 수의사가 25분씩 릴레이 강연을 펼쳤다. 100여명의 재학생이 현장을 찾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번 행사는 충남대 수의대 제44대 해온 학생회가 주최했다. 코로나 이후 단절됐던 선후배 간의 유대감을 회복하고자 기획됐다. 연자 대부분이 충남대 수의대 출신으로 구성되어 학부생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었다.
강연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수의사들이 무대에 올라 수의학의 다양한 가능성과 그 안에서 마주한 고민들을 진솔하게 전했다. 기초 연구부터 임상, 특수동물, 영상진단, 지식재산권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트랙1 수의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기초·외과·내과의 시선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정주영 학장(조직학 교수)은 축사와 함께 첫 강연을 열었다. 기초수의학 분야의 학자로서 살아온 그는 수의학의 고유한 가치로 ‘예방수의학‘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기초수의학은 무주공산”이라며 임상이 적성에 맞지 않는 학생들에게 기초 전공의 선택지를 적극 권했다.
Clair Park 교수는 버지니아 공과대학 수의과대학(버지니아-메릴랜드 수의과대학)의 정형외과 교수이자, 미국수의외과전문의다. 그는 외과를 단순한 ‘칼잡이’가 아닌, 기술·지식·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적 분야라고 설명했다.
“좋은 외과의는 33%는 손, 33%는 머리, 33%는 마음에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기초 술기에 대한 반복 연습, 수술 적응증과 합병증에 대한 이해, 환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와 담대한 마음가짐 모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 말미에는 ‘너처럼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surgeon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전공의 수련 당시의 칭찬을 떠올리며, 환자를 향한 진심이 외과의사의 핵심임을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정현우 교수는 같은 대학의 심장내과 교수이자 미국수의내과전문의(심장학)다. 그는 좋은 임상가가 갖춰야 할 세 가지 핵심 덕목으로 윤리의식(Ethics), 공감 능력(Empathy), 전문성(Competency)을 꼽았다.
특히 “약을 사용할 때는 완치, 수명 연장, 삶의 질 개선 중 어떤 목적에 해당하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무분별한 신약 사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어 “환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삼고, 지식이 곧 실력의 전부인 내과에서는 끊임없는 학습이 필수”라고 전했다. 수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Do no harm’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며, 전문성은 지속적인 공부와 윤리적 고민 위에서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트랙2 진료의 현장 속으로 – 대동물부터 특수동물까지
대동물 임상의 손정민 수의사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수의사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밝혔다. 대동물 진료 현장의 고됨 속에서도 값진 배움과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흔치 않은 기회를 두려워하지 말고 재미있는 일에 과감히 도전해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특수동물 임상의 이수환 수의사는 특수동물 진료의 현실적인 고충과 그 안의 보람을 동시에 전했다. 검사와 약물 사용의 한계, 보호자의 신뢰 부족 등 진료 여건은 녹록치 않지만, 다양한 생명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볍게 느껴지기 쉬운 동물이지만, 진료하다 보면 모두 같은 생명의 무게를 지닌 존재임을 절실히 느낀다“고 전했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스스로의 적성과 진로 방향을 깊이 고민해볼 것도 당부했다.
소동물 진료를 기반으로 농장동물, 야생동물, 특수동물까지 두루 섭렵한 이기영 수의사는, 충남대학교 총동문회 회장이자 오랜 임상 경력을 지닌 수의사다. 수의사로서 나눔과 배움의 삶을 실천해온 그는 “죽음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자”는 말로 진료에 담긴 태도와 철학을 전했다. 정직함과 진심이야말로 수의사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가치임을 강조했다.

트랙3 미래를 여는 수의사 – 인공지능(AI), 백신, 그리고 융합의 길
수의영상의학을 전공한 오이세 수의사는 스카이동물메디컬그룹 대표원장이자 코벳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AI가 진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대지만, 그만큼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단과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 AI를 활용하는 흐름 속에서도 “책과 논문을 읽는 기본을 놓쳐선 안 된다”며 학문적 기초의 중요성을 다시 짚었다.
또한 그는 스스로의 성향을 깊이 탐색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종 바이러스 연구를 선도하는 최영기 한국바이러스 기초연구소 소장은 “한 마리 동물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백신 개발은 수억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박쥐 오가노이드 세포 모델을 활용한 동물실험의 대체 사례를 소개하며, 후배 수의사들에게 기초연구 분야의 매력을 강조했다.
수의학을 바탕으로 지식재산권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서민우 변리사는 “수의학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강력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공”이라고 밝혔다. 그는 “평생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수의학의 역량을 다양한 영역에 융합한다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며 진로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강연 후에는 연자와 수의학도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의학도의 밤’이 이어졌다.
각 테이블에 강연자가 한 명씩 자리해, 학생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가며 보다 깊은 소통의 시간을 보냈다.
제44대 해온 학생회장은 “청수콘서트에 다녀올 때마다 큰 동기부여를 받았다”며, “그 감동을 충남대에서도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통해 선후배가 연결되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 수 있어 정말 뜻깊었다”며 “학우들의 따뜻한 반응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