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기정 미국수의영양학전문의 과정 수료자가 말하는 ‘영양학의 중요성’

한국 수의사 출신 미국수의영양학전문의 과정 수료자 2명 중 한 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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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의영양학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수의영양학회가 수의영양전문의·인증의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 ‘사료 등의 기준 및 규격’ 고시가 개정되면서 반려동물 사료제품에 대한 별도의 표시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갈 길은 멉니다. 지난해 원인불명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가 발생했을 때 ‘특정 사료’가 원인으로 추정됐으나 결국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해당 사료가 원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산 펫푸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하락했습니다.

과장허위광고 문제도 심각합니다. 반려동물 영양제, 보조제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제품이 자극적인 SNS 마케팅을 통해 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수의영양학 분야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영양학 교과목·전임교수가 없는 수의과대학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데일리벳이 수의영양학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최기정 수의사를 만났습니다. 최기정 수의사는 미국에서 영양학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2명의 한국 수의사 중 한 명입니다. 건국대 수의대를 졸업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NCSU)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습니다.

중학생 때 키웠던 해피라는 말티즈가 있었어요. 착하고 저를 잘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오래 살지 못하고 신경질환으로 죽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수의사가 되어서 동물을 보살펴 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학부생 시절에는 영양학에 관심이 없었어요. 학부 커리큘럼에 없었기에, 영양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수의사가 된 후 진료를 하면서 영양이 질병 예방과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 밴필드 동물병원에서 근무할 때 보호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제 강아지에게 좋은 사료는 뭔가요?”였는데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었어요. 아마 임상수의사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이런 영양 관련된 질문은 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몇 번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까 보호자한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또한 신질환 등의 만성질환을 관리할 때, 영양관리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양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저 독학으로 영양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영양학 원서들을 읽으며 반려동물 영양학 관련 자격증을 땄어요. 하지만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한테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고, 국내에서 배울 수 없는 분야기에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 과정을 거쳐 몇 년 전에 캐나다의 수의대학교에서 영양학 석사 과정을 밟기로 했는데,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학업을 시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독학을 이어 나가다가 미국 수의영양학 전문의 과정에 지원하였고, 연이 닿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이하 NCSU)에서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캐나다는 못 가게 되었지만 석사 과정 지원했던 부분을 지도 교수님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기존에는 미국수의영양학회(ACVN)가 독립적으로 존재 했었는데, 몇 년 전에 미국수의내과학회(ACVIM)와 합쳐지면서 현재 영양학회는 내과학회 소속 협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미국수의영양학전문의가 되면 DACVN이 아니라 DACVIM(Nutrition)(미국수의내과전문의(영양))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됩니다.

DACVIM(Nutrition)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미국 수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십을 거치고, 소동물 임상 영양학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2~3년 정도 소요되며 임상, 강의, 연구 활동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임상 관련해서 조금 더 설명해 드리자면, 여러 만성 및 응급 질환들의 영양학적 관리의 여러 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케이스에 따라 보호자 또는 일선 수의사와 상담하게 됩니다. 이러한 케이스에는 비만 관리, 사료 및 영양제 추천, 가정식 식단 설계, 응급실 환축을 위한 유동식 설계 등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마친 후에 보드 시험을 보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는 약 100명의 영양학 전문의가 있습니다. 저는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고 아직 보드 시험은 보지 않은 상태로 차차 준비할 예정입니다.

레지던트 과정의 정확한 명칭은 Veterinary ‘Clinical’ Nutriton으로 직역하면 수의‘임상’영양학입니다. 영양학을 임상과 연관 없는 학문으로 여기시는 분들이 있는데, 명칭에도 들어가듯, 임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학문입니다. 특히 내과와 깊은 연관이 있으니까 내과 소속이 된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워라벨 측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듯합니다. 대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수의테크니션 제도가 잘 확립되어 있어서 수의사 입장에서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미국보다 한국은 장비나 시설이 더 좋은 곳도 많고, 최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문의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어, GP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다양한 수의학 분야에 관심이 있고 올라운더가 되고 싶다면 한국 수의사도 좋지만, 흔히 말하는 어려운 케이스에 스트레스받는 타입이라면 미국 수의사가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언어, 문화적 차이, 네트워크 문제 등 실질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미국 수의사의 문을 두드렸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에도 글을 썼었지만, 기존에 선진국에서 일어난 펫푸드 리콜 사태도 원인을 밝히지 못 한 경우가 많습니다. 먹은 사료와 이슈의 상관관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요. 즉,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존에도 국산 펫푸드의 신뢰도를 재고하게 하는 사건들이 있었기에, 보호자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사료나 영양제 등 동물 식품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서, 그 일환으로 작년에 반려동물 사료 영양표준이 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전문가와 학계, 산업체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투명하게 조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지 국내 보호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도가 확립되었을 때 전반적인 국내 펫푸드 시장도 건전한 성장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제품이 시장에 많이 유통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호자들은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제조사 신뢰도, 제품의 성분, 임상 연구 결과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수의사 상담을 통해 동물의 건강 상태에 맞는 사료와 영양제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영양학 전공자로서, 보호자 교육과 올바른 정보 제공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 시절부터 영양학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국내 수의대에서는 영양학 교육이 부족한 편이지만, 점차 관련 과목이 신설되고, 임상영양학 교수가 임용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앞으로는 영양학이 내과, 응급 등 임상 과목과 연계되어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이 임상에서 영양학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영양학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기본이 되는 생화학을 잘 공부해 두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지던트 과정을 하면서 예과 때 생화학을 충분히 공부해 두지 않은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웃음).

그다음으로는 영양학 관련 원서, 논문, 최신 연구 동향을 꾸준히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국내외 수의영양학 강의,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1년에 1번 열리는 미국수의내과포럼(ACVIM Forum)에 참석하셔서 영양학 강의 들으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임상에서 영양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임상에서 영양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반려동물 건강 수명 증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국내 수의영양학 발전을 위해 교육에 힘쓰고, 수의사와 보호자 모두가 영양학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수의사가 영양학에 관심을 갖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목표의 일환으로 처방식 DB를 만들었으며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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