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벳(vet)쳐:마취과 수의사라는 모험] 일산동물의료원 김달해 수의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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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삶은 크고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우리는 때론 멈추기도, 달리기도,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하며, 바른 방향을 찾아갑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은 하루동안 선배님(동료 수의대생)들의 모험에 동행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수의사들(개척해 나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 [어드벳(VET)쳐]에서 우리들의 특별했던 하루를 전합니다.

“안전한 마취제도, 안전한 마취시술도 없다. 오직 안전한 마취의만 있을 뿐이다. (There are no safe anesthetic agents, there are no safe anesthetic procedures. There are only safe anesthetists.)”

미국의 소아 마취 분야를 개척한 로버트 무어스 스미스(Robert Moors Smith)박사가 남긴 말입니다.

수의학에서도 수술이 고도화되고 대형 병원이 많아짐에 따라 마취를 전문으로 하는 수의사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안전한 마취 관리가 수술 성공과 환자 생존율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산동물의료원은 2023년 마취통증의학과 진료센터를 신설하고 김달해 과장을 선임했습니다. 마취를 전담하는 수의사는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김달해 수의사님(사진)과 동행한 하루를 시간 순서로 전합니다.

병원에 도착해 김달해 선생님을 만나 오늘의 수술 일정과 자리에 있는 마취 모니터용 화면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수술이 진행될 환자들의 정보와 병력을 통해 마취 시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 확인하고 수술에서 어떤 약물과 기구를 사용할지 수술팀과 수시로 소통합니다.

마취 모니터를 위한 화면은 수술 여러 개가 동시에 진행될 때 모든 환자의 바이탈을 모아서 확인할 수 있도록 여러 칸으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이를 이동 중에도 확인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과도 연동되어 있습니다.

Case1. 피부 종양 제거 수술

이날 첫 번째 수술로 진행된 피부 종양 제거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도와 마취를 실시했습니다.

이후 마취 모니터를 통해 마취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마취 모니터에 외에도 수액 속도나 CRI 약물처럼 화면에서 알 수 없는 정보들은 따로 확인하여 종합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Case2. 부신 절제 수술(복강경)

다음 수술이 진행되는 별관으로 이동해 마취 및 수술 과정을 참관했습니다. 전투약제제와 마취 유도제 약물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복강경 수술의 경우, 복강 내로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복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자발호흡이 억제되고 충분한 환기가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기계 환기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로큐로늄(Rocuronium)과 같은 근이완제를 사용해 자발호흡을 완전히 차단하고 기계호흡에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합니다.

이처럼 마취과 수의사는 환자의 생리적 변화까지 고려해 가장 적절한 마취 전략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약물뿐 아니라 수술이 시작하기 전,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필터가 교체되었는지, 수술 시 환자에 연결할 기구의 선이 짧지는 않은 지 등 수술실 마취 기구에 대한 디테일한 점검도 실시합니다.

환자의 혈압을 정확하게 체크하기 위한 제로잉(Zeroing; 압력 측정 장비의 기준을 대기압과 같게 맞추는 것), 레벨링(Leveling; 압력 센서를 인체 기준점(심장 등)과 같은 높이로 맞추는 것) 등 세부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것도 마취과 수의사의 역할입니다.

   

Case3. 뇌종양 생검

다발성 뇌종양이 발견된 환자의 생검은 3D 영상 기반의 브레인 네비게이션(Brain Navigation) 가이드를 활용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병변의 정확한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수술 기구의 접근 경로를 시각화하여 정밀하고 안전한 생검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취과 수의사는 뇌압 상승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맥 마취와 흡입 마취를 병용한 환자 맞춤형 마취 프로토콜을 적용하였습니다.

Case4. 고양이 식도관 장착

정상적인 환자라면 바로 삽관 후 경피적 내시경하 위루술(PEG, percutaneous endoscopic gastrostomy) 튜브 또는 식도관 삽입 처치를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이 환자는 턱관절(TMJ, temporomandibular joint) 부위에 종양이 있어 구강 개구가 제한되어 삽관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간단한 진정을 통해 구강 상태를 먼저 평가한 뒤, 삽관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흡입 마취 하에 처치를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정 또는 마취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환자의 해부학적·전신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마취과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 이뤄집니다.

해당 환자는 경미한 진정을 거쳐 마취를 유도하였고, 처치 후에는 이동식 X-ray를 통해 튜브 위치와 처치 결과를 확인하였습니다.

Case5. 폐엽 절제 수술(흉강경)

수술 일정상 마지막 수술은 흉강경을 이용한 폐엽 절제술이었습니다. 흉강경 수술은 좁은 흉강 내 워킹 스페이스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취적으로도 정교한 조절이 요구됩니다. 특히 폐 허탈을 유도하고 환기를 정밀하게 관리하는 과정은 마취과 수의사의 숙련된 판단과 기술이 핵심입니다.

수술 중 마취과 수의사는 술자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환자의 바이탈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약물 조정과 호흡 관리 전략을 실시간으로 결정합니다.

또한 수시로 술자와 소통함으로써, 수술자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중환자실 회진

수술을 마친 환자들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확인하며 간단한 회진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12시경 뇌 생검을 실시했던 환자는 마치 수술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상태를 회복하고 보호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Case6. 피주 종괴 환자 생검

당일 새로 내원한 피부 종괴 환자의 생검을 진행하기 위한 마취 유도 과정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고 프로젝트 취재를 마무리했습니다.

*   *   *   *

바쁜 수술 일정을 마치고 잠시 김달해 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취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근무하고 계시는 병원의 규모가 큰 만큼 마취과 수의사로서 할 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취는 특히나 공부에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공부하시나요?

다양한 마취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약물에 대한 공부량도 많을 것 같은데요.

환자에 따른 마취 접근법이 다를 것 같은데 중요하게 생각해서 놓치지 않는 포인트가 있다면?

수술 마취 중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도 있을 텐데, 수술 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대응하시는지.

앞으로 마취 전문 수의사의 필요성도 점점 커질까요?

마취과 수의사를 택하기 전과 택한 후에 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공통질문)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나 수의사로서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시다면

*   *   *   *

체험을 마치며..

본과 3학년이 되고 임상에 대해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고민도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짐과 동시에 학교에서는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의 일부분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도 커져만 갔다.

학교에서 아예 배우지 않을 것보다는 약리학에서 배운 많은 약물과 외과의 내용으로서 공부한 마취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취과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배우기엔 짧은 하루의 동행에서, 마취라는 것은 단순히 약물을 투여하는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찰나에도 바뀔 수 있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매 순간 책임지는 깊은 배려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의료 장비와 약물 앞에서 환자마다 다른 상태를 고려해 세심하게 판단하고 많은 수의사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대응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수술과 처치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마취과 수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내가 ‘수의사’로서 가져야할 전문성과 책임에 대한 고민도 이전보다 훨씬 진지해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수의사가 될 수 있을지 끝없는 공부와 고민이 이어지겠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내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를 안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 프로젝트 ‘어드벳쳐’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어승현 기자 ecc08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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