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장기적인 대책 없으면 비수의사 방역 수장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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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농림축산검역본부장에 김정희 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이 임명됐다. 그동안 김정희 본부장이 보여준 능력에 대한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국가 동물방역·검역을 수행하는 최고 기관’ 수장에 수의사가 임명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뒤 초대(정은경), 2대(백경란)에 이어 현 3대 지영미 청장까지 연이어 의사 출신이 임명됐다.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을 시행하는 질병관리청은 전문가인 의사가 이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구제역이 4년 4개월 만에 재발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계속 발생하는 데다가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중대한 시점에 오히려 비수의사 출신이 검역본부장에 임명됐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마찬가지다. 국가 동물방역 정책을 수립하는 방역정책국 국장 역시 수의사가 아니다.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은 지난 2017년 신설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수의방역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된 국 조직이 중앙정부에 만들어졌다. 방역정책국 신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김옥경 대한수의사회 회장을 비롯한 각 분야 수의사들이 알게 모르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타 부처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이 아닌 ‘심의관’으로 결정될 만큼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수의사들이 국회와 관계부처를 설득해가며 방역정책국 신설을 확정 지었다. 수의계의 엄청난 성과이자 쾌거였다.

첫 방역정책국장에는 수의사가 임명됐다. 방역총괄과장으로 활약했던 오순민 수의사가 초대 방역정책국장이 되면서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3급 국장급 CVO(Chief Veterinary Officer, 국가 최고 수의사 공무원-수석수의관)를 갖게됐다. 다음 국장은 김대균 수의사가 맡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지난 2021년 방역정책국장에 비수의사가 임명되면서, 다시 우리나라 CVO는 4급 과장급으로 격하됐다.

2년 간격으로 방역정책국장과 검역본부장에 비수의사가 임명되자 “다음에는 무슨 자리를 또 뺏길 거냐”는 쓴소리가 나온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장, 동물위생시험소장도 점점 비수의사가 차지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 원헬스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동물 관련 조직과 기관은 점차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관도 생긴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대표적이다. 야생동물 분야에 오랫동안 기여한 수의대 교수와 기술고시에 합격한 수의사 출신 환경부 사무관이 야생동물질병관리원 설립에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원장 자리는 비수의사에게 돌아갔다.

동물 분야 최고 전문가인 수의사가 동물질병, 동물방역, 동물검역 관련 기관의 수장에 임명되는 ‘상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수의계 내부에서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5~10년 뒤, 준비된 수의사들이 중요한 위치에서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전체 수의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수의사들의 공직 기피 현상을 줄일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함께 현직 수의사 공무원 중 능력 있는 수의사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각시켜야 한다. 수의사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드러날 수록 국민들이 ‘그래, 동물 관련 기관장은 수의사가 하는 게 맞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노력도 없이 ‘검역본부장은 수의사가 해야지, 방역정책국장은 수의사를 임명해야지’라고만 떠들면 설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고시에 합격한 수의사 출신 공무원들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 보인다. 수의사 출신 고위공무원이 부족하면, 기관장에 임명하고 싶어도 임명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수의사 공무원들이 힘들게 각개전투를 하다가 쓰러지게 두지 말고,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수의계가 다 함께 노력 한다. 방역정책국을 신설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다시는 수의사 방역 수장을 못 볼지도 모른다. 수의계 전체가 위기감을 느껴야 할 때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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