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수의사회·가금업계 모여 성토한 고병원성 AI 방역 문제점은

등록 : 2021.02.23 05:42:34   수정 : 2021.02.23 20:25:38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올 겨울 전국적으로 확산된 H5N8형 고병원성 AI가 19일 누적 발생건수 100건을 기록했다. 같은 날 대한수의사회(회장 허주형)와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원장 김재홍)은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고병원성 AI 방역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수의사회와 생산자단체, 지자체 방역당국이 참여해 AI 방역현장의 여러 문제점을 성토했다.

예방적 살처분 범위와 AI 백신뿐만 아니라 질병 위험성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방역조치 문제, 방역 취약요인으로 변질된 식용란선별포장업 문제가 거론됐다.

농장 방역현장에서 임상수의사가 배제되고, 가축방역심의회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일방통행식 방역정책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논점1. 고병원성 AI 백신접종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병원성 AI 백신 도입 문제는 찬반이 엇갈렸다. 가금수의사회와 경기도, 산란계 측은 찬성입장을, 오리·토종닭 측은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백신은 살처분 정책의 효과적인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예방적 살처분 범위) 반경 1km냐 3km냐의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경기도 여주와 이천의 AI 발생양상을 예로 들었다.

AI 바이러스가 지역적으로 오염된 상황에서 예살을 반복할 뿐 추가 발생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 겨울 여주, 이천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와 예살범위 분포
(자료 :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


안두영 양계협회 채란분과위원장은 “농장 주변에 야생조류가 새까맣게 날아오면 농장주는 가슴을 졸이며 못 살 지경이다. 쪽문이니 울타리니 따질 의미가 없다”며 “위험지역의 농장이라도 백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장도 “종계나 산란계 등 사육기간이 긴 가금축종에서는 백신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방역당국은 국내외에서 다발하는 혈청형의 백신 항원뱅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상재화나 유효성 문제, 사람감염 위험 증가 가능성 등을 이유로 실제 사용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종웅 회장은 “당국이 보유한 항원뱅크 백신이 항원형 일치할 경우 100% 방어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논문으로 보고됐다”며 “(방역당국이) 왜 효과적인 백신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AI 백신 도입이 바이러스 변이를 가속화해 사람 감염 위험성을 높일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윤종웅 회장은 “백신으로 인한 바이러스 변이로 사람이 위험해진다는 주장은 이미 국제기구에서도 반대하고 있다.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오히려 백신으로 인해 사람 감염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재홍 연구원장은 “중국이 백신을 시작한 2005년을 기점으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변이가 활발해졌다. 야외 바이러스가 백신을 피하는 변이가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만섭 오리협회장도 AI 백신 도입에 반대했다. 백신을 사용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심해지고 사람으로의 감염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종닭협회 김현태 차장은 “AI 백신을 접종하면 상재화로 인해 주변 국가로부터의 가금산물 수입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병원성 AI 상재국인 중국이나 동남아로부터 가금시장 개방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재홍 연구원장은 “백신이 AI 피해를 줄이는 탁월한 장점이 있지만, 그 대가를 중장기적으로 치러야 한다”면서 “AI 상재국이 될 위험이 늘어나고, 주변 국가에서 가금산물 시장개방 압력에 대응할 과학적 명분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김만섭 오리협회장, 안두영 양계협회 채란분과위원장,
김현태 토종닭협회 차장, 권익섭 식용란선별포장업협회 이사

논점2. 예방적 살처분

발생농장 반경 3km로 적용됐던 예방적 살처분은 고병원성 AI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는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 겨울에만 고병원성 AI로 살처분된 가금 3천만여수 중 2200만여수가 예방적 살처분으로 인한 피해다.

김재홍 연구원장은 “반경 3km 예살은 공기전파가 가능한 구제역에서 적용된 것이 처음”이라며 “이를 고병원성 AI에 준용하는 과학적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각국이 3km를 기준으로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두영 위원장은 “각 지자체가 농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데 지금은 무조건 살처분하고 있다”며 “지자체 심의를 통해 농장별 살처분 여부를 결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장은 “경기도는 올 겨울과 16-17 겨울 각각 산란계만 1천만수 이상 살처분했다”며 “연간 사육두수만큼을 살처분하는 방역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다. 살처분의 범위와 방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시스템적으로 예살 대상이 바로 나오다 보니 (특정 농장을) 제외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종훈 과장에 따르면 16일까지 경기도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 34건 중 과거 발생농가에서의 재발이 14건에 달했다. 모두 산란계 농장으로, 10만수 이상 농장이 11개소다.

김 과장은 “대형농장은 방역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방역수칙을 완벽히 지키는 농장은 한 곳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종훈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장

논점3. 오히려 더 위험하게 만드는 방역조치들

방역당국의 조치가 오히려 질병 전파 위험성을 높이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권익섭 식용란선별포장업협회 이사는 스탠드스틸의 부작용을 지목했다. 매일 계란을 생산하는 산란계 농장 입장에서는 스탠드스틸로 1~2일간 반출이 금지되면, 스탠드스틸이 풀리자마자 계란을 한꺼번에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익섭 이사는 “매일 계란운반차량 1대만 출입하면 될 일을 스탠드스틸로 인해 3~4대가 한꺼번에 들어오게 된다”며 “산란계에서는 오히려 질병 전파 위험을 높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생축을 실은 가축운반차량이 거점소독시설을 출입하는 문제도 여전하다. 바이러스를 체내에 보유한 가축에게 소독약을 뿌려봤자 아무 효과도 없다. 오히려 생축차량의 분뇨로 인해 거점소독시설이 오염될 위험만 높아진다.

김현태 차장은 “거점소독시설의 교차오염 위험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업계 종사자들도 불안해하고 있다”며 “거점소독시설을 지역별로 여러 곳을 설치해 위험을 줄이는 방안도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종영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장은 “생축차량이 거점소독시설로 가선 안된다는 점은 수백 번 얘기하는데도 방역당국이 무시하고 있다. 과학이 실종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논점4. 산란계 방역 취약점, 식용란선별포장업?

권익섭 이사는 산란계 농장 내부에 위치한 식용란선별포장시설을 고병원성 AI 방역의 사각지대로 지목했다.

식용란선별포장업은 가정에 공급되는 계란이 위생적으로 선별·세척·검란·살균·포장돼 유통되도록 지난해 도입됐다. 산란계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은 반드시 식용란선별포장업을 거쳐야 시장으로 팔릴 수 있다.

문제는 상당수의 산란계 농장이 식용란선별포장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 내부에 선별·포장기기를 들여놓고 다수의 유통상과 거래하는 구조다.

권익섭 이사는 “당초 취지와 달리 농장에게 선별포장업 의무가 전가됐다”며 “농장 내에서 계란을 선별·포장하고 다수의 유통차량이 출입하는 행위가 농장 방역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식용란유통업자는 차량소독시설 등 방역 인프라를 갖추기 어렵다. 이들이 여러 산란계농장의 식용란선별포장시설을 드나드는 환경은 방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식품 위생 측면에만 무게를 두는 식약처가 담당하다 보니 질병 방역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주장이다.

계란을 담는 팔레트나 난좌 등 물류기기가 AI 바이러스를 기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만큼 방역당국도 1회용 난좌 사용이나 물류기기 소독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애초에 농장 내부로 물류기기가 드나드는 환경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안두영 위원장은 “왠만한 전업 산란계 농장은 거의 선별포장업을 병행하고 있다. 많게는 유통상 20명과 거래하다 보니 운반차량이 농장에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농장에 들어와서 계란을 가져갈 환경을 강제해 놓고, 이제와 방역 때문에 차량을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권 이사는 “식용란선별포장업장이 농장 외부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장은 외부 포장업장에 계란을 전달해주기만 하고, 포장업장에 적절한 방역시설을 갖추고 여러 유통업자와 거래하는 구조로 변화해야 농장의 바이러스 유입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훈 과장은 “규모가 큰 산란계 농장은 알 운반차량 다수가 자주 출입한다. 이동양상이 복잡해 질병 위험도 크다”며 “계란 보관·유통장소를 농장 밖으로 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재홍 연구원장도 “식용란선별포장업이 AI 방역의 사각지대에 있을 위험이 높다”며 관련 대책을 주문했다.

최종영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장(왼쪽)과 허재승 가금수의사회 사무국장(오른쪽)

논점5. 수의사는 실종됐다

고병원성 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가 이어지며 정부와 농가 사이의 방역에 수의사가 실종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방역당국과 의료기관의 코로나19 대응 협업이 주목받으면서 문제의식은 더 커졌다.

최종영 위원장은 방역시설 확충에 무게를 둔 정부의 시각이 질병관리등급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방역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는데, 공무원 조직 만으로 일선 농가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농장이 방역수칙을 지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교육해야 한다”며 “그래서 임상수의사가 중요하다. 공무원이 다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재승 가금수의사회 사무국장은 “질병이 발생하면 가금수의사는 현장에서 배제되고 그 피해를 보상받지도 못한다”며 “방역당국은 공수의를 동원해서 그 순간만 넘기려 하는 행태가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의사가 질병 방역의 한 축이라면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관행적 방역정책에 한계가 보인다”며 “임상수의사는 배제된 채 정부와 농가가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주형 회장은 “국가-수의사-농장으로 이어지는 방역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농장전담수의사 제도를 통해 방역에도 민간 수의사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점6. 소통 부재

농식품부 가축방역심의회는 동물방역정책을 논의하는 최고기구 역할을 맡고 있다. 스탠드스틸 등 영향이 큰 방역정책의 시행 여부를 심의·의결하기도 하지만 방역당국과 생산자단체, 업계, 수의사회 대표자가 모여 현장 문제를 공유하는 계기도 된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가축방역심의회가 일방통행식으로 변질됐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를 핑계로 AI 발생 이후에도 대면회의는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못했고, 스탠드스틸 등의 조치에 찬반만 묻는 투표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찬반을 심의위원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묻다 보니 서로의 의견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반대표를 던진 위원에게 개별적으로 설득작업에 나서는 정황도 포착됐다.

김만섭 오리협회장은 “대면회의가 안된다면 영상회의라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재홍 연구원장도 “가축방역심의회에서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토론해야 하는데 공문만 내려 보내는 식”이라며 “이날 거론된 문제를 종합해 정부에 건의하고 추가 논의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