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유목민에 대한 오해―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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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6. 유목민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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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키우며 사는 유목민이 잔인하다거나, 육류를 많이 먹으면 폭력적이 된다는 말이 있다. 고기를 즐겨 먹으면서도, 살아 있는 짐승을 죽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다. 조선시대에는 동물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부르며 아주 천대했다. 동물을 죽이는 일을 잔인하다고 보고, 동물을 죽이는 자들 역시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동물을 죽여 고기를 먹는 유목민들을 잔인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일반적으로 육식을 즐기면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프랭크 카차노프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흥분한 남자에게 고기를 보여주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목민이 폭력적이라는 말은 일종의 바버리즘(barbarism: 야만주의)과 화이관(華夷觀)에서 유래했다. 유목민을 악당으로 규정한 것은 농경민들의 언어폭력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그리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유목민을 만리장성이나 로마의 리메스(Limes; 장성, 국경) 바깥에 사는 흉악한 자들이며 나쁜 침략자로 규정했다.

그들은 유목민을 순한 양이나 잡아먹는 사나운 늑대와 같은 존재라고 비하했다. 물론 그들이 장성을 넘어 농경민의 제국을 유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한 것은 농경제국이었다. 늑대는 농장의 펜스를 넘어와 양을 죽이지만, 농장주인도 사나운 개를 키워 늑대를 물어뜯게 하고 결국은 잔인하게 죽인다. 유목민과 농경민의 관계도 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유목민들이 장성을 넘어오는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유목민을 괴롭히는 것에 ‘조드(dzad)’와 ‘강(gan)’이 있다. ‘조드’는 매서운 추위를 말하며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적인 가뭄을 말한다.

유목민이 사는 곳은 초원이 발달한 내륙이다. 기후 변화가 심한 곳이다. 1999년 몽골에는 여름부터 시작된 가뭄 즉 ‘강’으로 인해 가축의 절반이 죽어 초원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다. 한여름엔 30℃를 넘는 초원지대도 겨울에는 엄동설한의 기후대로 변한다.

2009년 몽골을 초토화시킨 것은 영하 50℃를 넘나들었던 살인적인 한파였다. 무려 5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동사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재앙이 닥치면, 굶주린 유목민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웃한 농경민을 습격해 식량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요즘의 몽골은 체계 잡힌 국가여서 나라에서 여러모로 피해보상을 해 주겠지만 예전 유목민 사회에서는 그런 보상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야생동물이 산에서 살다가 가뭄, 폭설 등의 이유로 먹잇감이 부족해지면 민가에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유목민이 농경민을 습격하는 것은 절박한 생존의 이유 때문이지, 고기를 먹어서 잔인한 습성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농경민들도 굶주리면 사람을 잡아먹는 등 오히려 더욱 잔인한 행동을 일삼았다. 명나라 말 절강성 가흥부 출신의 왕포(王逋)가 쓴 『인암쇄언(蚓菴瑣言)』이란 책에 1640년과 1641년 극심한 대기근을 겪은 후 자신의 고향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카니발리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숭정 15년(1642)에서 16년, 연이어 크게 가물었다. 나무껍질과 풀뿌리는 벗겨지고 파헤쳐져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서쪽성 안에서 인육(人肉)을 발라내어 끼니를 채웠다. 시장의 장사치는 몰래 인육을 만두로 만들어 팔았다. 어떤 이는 인육을 절여서 노새나 말고기라고 속였다. 여러 사람이 성 밖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묶어서 죽이고 그것을 먹는 경우가 있었다. 또 어떤 아낙은 매일 저자거리에서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기른다는 핑계로 유괴하여 죽여서 삶아 먹었다. 이때 산동 일대에서는 민간에서 공공연히 가게를 열어 사람을 도살하여 인육을 팔았다. 한 근에 8푼으로 쌀고기(米肉)라고 하는데도 조금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나라 사람 고산정(顧山貞)의 『객전술(客滇述)』에 수록된 구절을 보자. 

‘남명 영명왕 영력 원년(1647) 사천 지방에 대기근이 들어,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도 있었다. 대개 갑신년(1644) 이래 3년간의 큰 전쟁으로 농민들이 모두 도망가 농사짓는 사람이 없었고, 저장된 곡식도 폐기되어 바닥이 났다. 기근의 참상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 성도 지방에서는 식인 행위가 더욱 심했는데, 강자는 무리 수백을 모아 사람을 약탈하여 잡아먹기를 마치 양이나 돼지를 도살하는 것과 같았다. …… 남자 고기는 한 근에 7전이었으며, 여자 고기는 한 근에 8전이었다. 무덤 속의 오래된 뼈도 모두 발굴하여 가루를 내서 먹었다.’ 

사람이 잔인해지고, 포악해지는 것은 육류를 먹어서가 아니고 생활여건 탓이다. 요즈음은 동물의 복지에 관심이 높아져 많이 사라졌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조차 소나 양, 닭 등을 잡을 때 벌이는 행동은 진실로 야만스러웠다.

동물이 살아 있음에도 분쇄기에 집어넣거나, 마구 칼로 잘라 피범벅을 만들고도 단순히 효율적으로 오늘 몇 마리를 도살했는지 생산성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소, 양, 닭 등을 생명체가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으로만 여기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전혀 아랑곳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카니발리즘은 농경 사회에서 벌어졌지, 유목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적이 없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동물과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동물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기 때문에 생명경외에 보다 더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동물을 모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시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에 따라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 사람과 자주 만나지 않는 외톨이일수록 범죄를 저지를 때는 아주 잔인하게 사람을 살해하기도 한다.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명체와 더 많은 교류가 필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동물은 인간의 정서 순화에도 큰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다. 최근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개와 고양이를 키움으로써, 정서를 안정시키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 키우기가 우울증 극복에 아주 좋다는 여러 사례가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양과 같이 온순한 동물을 키우는 유목민들이 잔인하다는 것은 그들과 자주 전쟁을 한 농경민이 조작한 편견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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