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인류 역사를 바꾼 여러 동물―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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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5. 인류 역사를 바꾼 여러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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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은 너무나 많다. 낙타는 인류가 사막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낙타가 없었다면, 사막은 인류의 소통을 방해하는 거대한 장벽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아프리카 북부에 살던 무슬림들은 낙타를 타고 아프리카 북단 동서 길이 6400km, 폭 300km의 사헬지대(사하라 남쪽 초원지대)를 횡단해 가나, 말리왕국과 대규모 교역을 했다. 가나와 말리는 엄청난 황금을 이용해 북아프리카와 유럽, 중동의 다양한 문물을 수입했는데, 특히 이때 이슬람교가 전해졌다. 만약 낙타가 없었다면, 이슬람교가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전파되기는 아주 불가능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실크로드를 중간에서 가로막는 타클라마칸 사막도 낙타가 없었다면 다니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고창, 누란 등 실크로드 주변의 많은 나라가 번창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낙타를 대신해 말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말은 특성상 짧은 거리의 사막은 다녀도, 큰 사막을 다닐 수는 없다. 물이 부족한 사막을 오랜 기간 여행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낙타는 발바닥이 넓어서 모래땅을 걷기에 알맞고, 귀 주위의 털도 길어 모래먼지도 막을 수 있다. 또 지방이 저장된 등의 혹 덕분에 며칠간 굶어도 활동할 수 있고, 3일 이상 물 없이도 견딜 수가 있다. 또한 힘도 강해서 많은 물건을 싣고 그 위에 또 사람까지 태우고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낙타를 일러 ‘사막의 배’라 부른다. 또한 낙타의 젖은 음료로, 고기는 식용으로, 털은 직물로 이용되어,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만약 낙타가 없었다면, 사막이라는 장벽에 막혀 인류 교류의 역사가 더디게 발전했을 것이다. 

순록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사는 순록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그들 삶의 모든 것이었다. 순록이 없었다면 시베리아는 인류가 살지 못하는 땅으로 좀 더 오래 남아 있었을 것이었다. 라마와 알파카는 안데스 산맥에서 살았던 잉카를 비롯한 여러 인디오들에게 짐들을 옮겨주고, 젖과 고기를 제공하는 오랜 삶의 동반자였다. 야크는 티베트인들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주는 가족 같은 가축이었다. 인도코끼리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말을 대신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인류는 여러 동물에 의지해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인류 문명사에 영향을 끼친 동물이 모두 가축뿐인 것은 아니다. 가축은 아니지만, 동물 때문에 인류 역사가 바뀐 예는 너무나 많다. 인간을 일컬어 털이 없는 원숭이라고도 하듯, 인간은 털이 없기 때문에 추위에 매우 약하다. 그래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그런데 최초의 옷은 동물의 뼈로 만든 바늘과, 동물의 힘줄로 만든 실을 이용해 동물의 털가죽을 연결해 만든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매머드를 쫓아 시베리아로 진출할 수 있었고,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갈 수도 있었다. 만약 동물이 없었다면 인류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죽은 동물의 피부를 벗겨낸 것으로,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을 한 것을 피혁이라 하고, 털이 포함된 채로 무두질한 것을 모피라고 한다. 동물의 가죽은 벗겨낸 상태로 그대로 방치해두면 안 된다. 동물 가죽은 대체로 수분 64%, 단백질 33%, 기타 지질과 탄수화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미생물이나 자기분해효소 등에 의해 부패한다. 이를 막기 위해 가죽을 건조시키는데, 그냥 건조를 하면 탄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가죽에 지방을 바르고 문지르거나, 불을 이용해 가죽을 연기에 그을리는 방법을 사용해서 가죽을 부드럽게 만든다. 잿물에 가죽을 담그면 털이 빠지고, 염색을 하면 가죽이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과거 유목민은 동물의 뇌척수액을 이용해 가죽을 연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화학약품인 유제(鞣劑)로 가죽을 처리한다.

동물의 가죽을 유제로 처리하여, 더 이상 변질되거나 부패되지 않은 상태를 피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피혁을 이용해 다양한 가죽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피혁은 주로 소, 말, 돼지, 양, 산양 등 포유동물의 가죽이 이용된다. 그러다 고급화의 물결로 여우, 담비, 수달, 친칠라토끼 등과 타조, 악어, 도마뱀, 뱀 등 조류와 파충류 가죽도 이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동물 가죽을 이용해 가죽옷, 가방, 혁대, 장갑, 지갑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든다.

모피는 털 때문에, 털이 없는 피혁에 비해 추위를 막는 효과가 우수하여 방한제품으로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멋을 위해서 모피목도리와 같이 액세서리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모피제품은 털이 풍성한 짐승으로부터 얻는다. 호랑이, 표범, 담비, 족제비, 곰, 여우, 해달(바다족제비), 물개, 밍크 등이 주요 대상이다. 모피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탐을 내는 외투 재료였고, 오랜 세월 북방과 남방의 교역 상품이었다.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는 모피를 중국과 일본에 수출해, 경제력을 키웠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던 마적 떼에서 탈피해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들도 그들이 국가로 성장할 때 모피류 수출이 인삼 못지않게 전쟁 자금원으로 큰 역할을 했다. 유럽에서도 16세기 말 이후 세계적인 소빙기(小氷期) 시기가 닥치자, 모피 수요가 크게 늘게 된다. 이때 모피의 주요 수출 국가였던 러시아는 모피를 찾아 동으로, 동으로 모피 탐험을 하여 마침내 시베리아를 개척하게 된다. 오늘날 러시아가 세계 제일의 거대 영토를 갖게 된 것은 모피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랑이와 같이 가축이 될 수 없는 맹수류도 인류의 역사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 맹수와 길고 긴 투쟁을 거쳐야 했다. 호랑이, 표범, 곰, 사자, 늑대와 같은 맹수류와의 투쟁이었다.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류는 활과 투창기를 개발했다. 특히 활의 출현은 동물과의 투쟁에서 인류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맹수류는 인류의 생명을 끝없이 위협했다. 그래서 인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집단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마을에는 해자나 성벽을 쌓는 방어 시스템을 갖추었다. 맹수류는 인류의 생존 의지를 끝없이 자극했다. 맹수가 없었다면 인류는 게을러졌을 것이고, 도시문명을 창조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맹수와 같은 위협적인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주목하지 않는 동물도 현대 문명의 많은 부분에 기여하고 있다. 원숭이, 돼지, 쥐, 모르모트 등 많은 동물들은 인간을 대신해 각종 의학실험 동물로 이용되어 의학과 약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소의 우황이나, 멧돼지·곰의 쓸개는 귀중한 약재로 사용되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다. 거미의 거미줄이 인류로 하여금 그물을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것처럼 어류, 조류, 곤충류, 갑각류 등 다양한 동물들이 현대 문명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제공해주거나, 과학 발전의 아이디어를 주었다.

우리는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동물을 보호하고 또 멸종된 동물을 복원해 생태계의 건강한 먹이사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 포식자의 지나친 번식으로 하위동물들이나 생태계에 큰 위험이 닥치는 것을 막거나, 상위 포식자가 없어짐으로써 하위의 동물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것을 예방한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여 먼 미래에도 인류가 다양한 생명체와 함께 계속해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류의 과거사는 수많은 동물들과 협력과 갈등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인류의 미래사 역시 인류는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 발전시켜 가야 한다. 동물들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동물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꾸준하게 모색해야만 한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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