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① ― 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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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장. 동물권을 보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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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는 제2차 세계 대전과 강제수용소와 같은 공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하고 선포했다. 유엔은 인간 존중과 존엄이 세계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한 토대라고 선언한 것이다. 1978년 10월 15일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세계동물 권리선언이 선포되었다. 인권이 소중한 만큼, 동물권도 소중함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사건이었다. 이후 1989년 국제동물 권리 연맹에 의해 개정된 본문은 1990년 유네스코 지도자 총회에 제출되고 대중에게도 공개되었다. 세계동물 권리선언은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조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2조 모든 동물은 존중 받아야 한다.

3조 모든 동물은 인가의 관심과 돌봄 그리고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동물 권리선언은 생명으로서 모든 종이 동등한 기본적 권리를 가지면 인간은 동물의 한 종으로서 다른 동물을 멸종시키거나 비윤리적으로 착취하는 등 다른 동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7년 10월 15일 세계동물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우리 국회에서는 국회의원과 동물보호시민단체 회원들이 행사를 통해 헌법에 동물의 권리를 명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동물권에 대해 적극적이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반려동물 증가와 동물에 대한 관심 증대로 동물권 보호에 대한 관심은 높아가고 있다.

『동물권리선언』의 저자인 미국 콜로라도 대학 생물학 교수인 마크 베코프는 우리가 동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인간에게 보내는 동물들의 절절한 메시지를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시급히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공멸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인간은 모든 동물들과 지구를 공유하며 더불어 사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너무도 쉽게 동물들의 삶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당장 멈출 수도 있는 대단히 특별한 존재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어떤 행동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크 베코프는 공장식 가축농장, 과학이란 미명하게 자행하는 갖가지 동물 실험,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은 동물원 등 우리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단지 오래된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물의 삶을 짓밟아 온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반성을 않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과 크든 작든 교감을 나눠본 사람들이라면 동물들에 온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동물은 온정을 느낄 수 있으며, 또 온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모든 동물은 배려를 통해 교감하며, 단절은 생명경시로 이어지는 만큼 우리가 동물과의 교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동물은 생각하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잊고 있다.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성에 대해 전지전능한 가치를 부여한 합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동물들에게는 인간과 같은 사유 능력이 없고 심지어는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다고 믿었다. 그는 동물은 인간처럼 의식을 갖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와 같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그가 살던 시기, 서구 계몽주의 과학은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하고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기독교적 관점을 강조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동물은 정신적, 영적으로 텅 비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불교에서는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不殺生)이 인간이 지켜야 할 다섯 게율에 들어있다. 동물을 자비로 대하라는 것이 불교의 교리였고, 그래서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시대에는 육식을 자제했었다. 불교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불교 도입 이전에 전통신앙인 샤머니즘은 모든 생명체에 영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신라 시대 사람들이 지켰던 세속오계에도 살생유택(殺生有擇)의 덕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의 학문을 들여오면서 어느덧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동물과 교감이 커지면 동물에 대한 온정도 늘어난다. 하지만 동물과 격리되면 동물에 대한 온정도 식어버린다. 현대인들은 과거 촌락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오던 생활에서 벗어나서 살아간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살아있는 동물을 거의 만나지 않고 살아가며, 살아있는 동물이 아닌 마트에서 고기로 포장된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동물과 격리되고 동물을 그저 먹을거리로만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동물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관심조차 사라지고 동물이 감정과 생각이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게 된다.

하나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동물을 고기로 섭취한다고 하더라도 동물에 대한 최소한 배려는 실시해야한다. 동물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덜 고통스럽게 죽을 권리만이라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상대로 벌이는 잔인한 놀이를 하는 것도 중지해야 한다. 인간은 생존이 아닌 오락을 위해 다른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냥놀이를 한다. 인간은 단순히 보고 즐기자고 동물을 우리에 가두고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서커스나 동물 쇼는 동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정신질환과 육체적 고통을 안겨준다. 반려동물을 키우다가도 싫증을 느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유기해 버리는 경우도 너무 흔하다. 시끄럽다고 동물이 결코 원하지 않는 성대수술을 하는 등, 아무리 귀하게 반려동물을 키운다 하더라도 동물을 종속물처럼 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지구상에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하루아침에 동물들의 삶을 바꿀 수가 있다. 어제까지 몇 평 남짓한 공간에 큰 몸을 겨우 웅크리고 살던 호랑이를 수만 평 대지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며, 동물에게 행하던 온갖 가혹 행위도 한 순간에 멈추게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동물도 우리와 똑같은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의 생명체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인간이 함부로 그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게 저지른 온갖 잔인한 짓을 만회하려면 동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치료해주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지금 전 세계 국가들은 동물권을 적극 인정해주고 있는 추세다.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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