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방, 외면하지 않으면 득이 된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김정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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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약리학 수업시간에 특강으로 한방을 하시는 수의사분께서 오셨다. 아무래도 필수과목이다 보니, 한방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관심이 없는 학생 모두가 앉아있었다.

오후 수업의 나른함을 직격타로 맞고 있는 학생들. 옆에서 그 졸음을 참지 못하던 동기 한 명이 수업 중 한방의 개념에서 순환은 심장이 아닌 폐에서 시작된다는 말에,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거 소설수업이야?”

*   *   *   *

비단 의대생뿐 아니라, 지금 학부를 다니고 있는 수의대생들, 그리고 젊은 수의사들의 한방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정적이다.

양의학에 익숙한 우리는 연역적 사고방식이 익숙하다. 어떠한 원리에 입각하여, 질병의 증상에 따른 진단명이 나오고, 그에 따라 약물과 치료방식이 정해져야 한다.

반면 한방은 귀납적 사고를 요구한다. 양의학에서는 신경 쓰지 않는 혀의 색과 맥을 느끼고 이를 모두 증상으로 받아들인다. 치료의 방향성만이 있을 뿐, 정해진 답이라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단이 비슷하더라도, 한방치료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매스컴에서부터 한의학의 부정적인 면을 강요 받은 우리 세대는 이러한 한의학의 특성에 반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학생들에게 한의학을 이야기하고 가르쳐주고 싶다면 한방의 방대한 지식을 강요하기에 앞서, 미국수의학회지에 실린 논문들을 근거로 과학적 증거들을 보여주거나, 양의학의 차원에서 어떠한 물질이 나와서, 어떠한 이론으로 작용을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나는 그런 점에서 플로리다대학의 시에 교수(Xie)가 진행하는 Chi institute program에 매력을 느꼈다. 한의학을 양의학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강의가 시작된다. 심지어 배우고는 싶지만 반감을 해소하지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의학의 과학적인 접근을 다루는 코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의사와 한의사가 양립하는 것과 달리 수의사는 둘 모두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 무언가 하나만 믿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의사와 한의사의 복잡한 싸움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양의학의 진단검사상 장점은 장점대로 취해 진단을 내리고, 양의학으로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한의학에서의 진단과 치료법도 적용할 수 있다.

시에 교수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양의학은 명확한 진단에 유리하다. 특히 감염과 골절과 같은 상황, 수술을 요하는 상황은 한의학적 접근보다는 양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만 고수하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한의학을 ‘믿음’의 관점에서만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대신 내게 필요한 한의학의 장점만을 취하여, 이 환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 지 고민해보면 어떨까.

170919 chi2

본인이 듣고 있는 Chi institute 프로그램은 원래 미국에서만 진행이 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중국과 국내에서도 코스를 마칠 수 있어, 비행기 값을 절약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유치하기 위해 애쓴 신사경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Chi institute 프로그램은 크게 5개의 파트로 나뉜다. 파트 1과 3은 온라인 강의이며 2, 4, 5는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오프라인 강좌다.

온라인 강의는 20~30시간 정도 분량이다. 파트당 2개월이 넘는 시간이 주어지므로 여유시간에 맞춰 수강하기 좋고, 영어강의이긴 하지만 자막이 제공돼 이해하기에 문제는 없다.

파트 2, 4, 5는 각각 매년 5월, 9월 12월초경 열린다. 파트2는 중국에서 4일간 진행되며, 미국에서 들어야 했던 파트 4와 5도 한국(해마루)에서 들을 수 있다. 후반부 파트를 듣기 위해 주변국에서 한국에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chi institute 교육에 참가했다.  (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지난 5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chi institute 교육에 참가했다.
(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한 파트를 마치면 온라인 퀴즈를 풀어 일정 점수 이상을 기록해야 다음 파트로 넘어갈 수 있다. 파트 5에서는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는데, 실기시험에서는 구두로 제시한 침자리를 제대로 짚을 수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케이스 레포트, Chi institute 인증 수의사의 동물병원에서 수련 경험을 쌓으면 자격을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 수강에 드는 강의료는 약 700만원 가량이 소요된다. 학부생의 경우는 500만원 정도로도 가능하다.

내년 프로그램 신청은 http://www.tcvm.com/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다. 선착순이며, 접수는 내년 1월 15일 마감된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재학생 김정민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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