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그 10년 후①] 홍영호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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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 2005년 3월 2일 출판)라는 책이 있습니다.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받는 책입니다.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대부분 이 책을 읽었을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책 저자로 참여한 22명 수의사분들을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홍영호 수의사님입니다. 홍영호 수의사님은 수말수 책 집필 당시 종계군의 질병 및 위생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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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

수말수를 집필할 때 근무했던 회사에서 3년 전 현재 회사로 옮겼다. 원래는 충남 홍성에 있는 원종계회사에서 근무했었다.

요즘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수의사로 시작해서 2009년 생산 이사가 되었다. 과장에서 바로 이사로 되었다. 차장이랑 부장을 건너 뛴 셈인데 남들의 10년 과정을 아낄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머리가 좋은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100일 때 120의 노력을 하면서 꾸준히 일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수의사라고 하면 수의라는 전문분야 쪽에 업무가 한정된다. 반려동물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함께 살며 행동이나 습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먹는지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질병에 대해서 배우긴 했어도 막상 농장에 가면 그 공간에서는 질병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있어도 부분적으로 있어 그 질병이 전체가 되지 않는 특수한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닭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이해하려면 사양관리, 환기 등 최적의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신경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환기 시설에 문제가 생겼다 하면 담당이 아니라도 밤 12시에 농장에 들어가서 살펴보고 시간도 체크해보는 등 직접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하고자 했다. 농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이 나의 경험이 되고 경력이 되고 문제 해결 능력도 좋아졌다. 그렇게 남들보다 일찍 이사가 된 것 같다.

Q. 육종회사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육종회사에서 하는 일은 육계, 즉 우리가 먹는 닭을 키우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계의 모계, 또 그 모계의 모계(GP, grandparent chicken)를 키우는데 이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은 들어가지 않고 양질의 닭의 새끼들을 계속 선발하는 개념이다. 질병에 강하거나 춥고 더운 날씨에 저항성이 강한 육계를 계속 선발하게 된다. 

개나 소의 경우에는 1년에 낳는 새끼가 3마리에서 5마리에 불과하고 가격이 비싸지만 육계는 마리당 300-500원 정도이고 새끼를 1년에 100마리 정도 만들 수 있다. 요즘은 병아리의 몸집을 갑자기 확 부풀리듯이 크게 해서 파는 곳이 많다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뼈가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등 골격이 약하면,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따라서, 빠른 성장과 동시에 강건한 병아리를 선발하는 것이 육종의 핵심이다.

Q. 수말수 책이 벌써 10년이나 됐다.

벌써 10년? 10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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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필 후 1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직장을 옮기게 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사라는 보장된 직책을 버리고 왜 옮기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보장된 것에 안주하기엔 내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예전 선인들이 말한 세 가지가 첫째로 부모나 형제에 기대 살지 마라, 둘째 말도 잘하는데 글도 잘 쓰면 사람들이 혹하게 되는데 그게 이 사람의 재능인데 그 재능을 헛된 곳에 쓰지 말고 초심을 지켜라, 셋째로는 소년등과라고 너무 어린 나이에 급제에 오르면 그 자리 자체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시각을 넓히고 싶어서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회사로 가게 되었다.

새 직장에서의 단점은 비행기를 자주 탄다는 것과 예상치 못한 일을 해결해나가야 하므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에 가면 커스터머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일이 끝나면 피로감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농장에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저녁때 돌아오면 정리를 해야 한다. ppt를 만드는데 때로는 1시에서 2시에 끝나기도 한다. 슬라이드를 30~50장을 만들고 논의를 하고 끝나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가는데 때로는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장점은 ‘생각이 다양해지고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회사를 보면 철저한 상하체계가 있기 마련인데 지금의 회사는 외국계 회사이다 보니 매우 수평적인 관계다. 회의를 할 때에도 사장도 빠짐없이 리허설을 하고 의견 제시에도 유연하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고생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배워나간다는 점이 좋고 또 10년 뒤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산업동물 임상 분야가 3D 업종이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3D라는 용어는 폭 넓게 쓰였던 용어였다. 산업동물 임상 분야가 3d 업종이라고 표현한 것의 핵심은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업종 자체가 농장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이 3d업종이라고 많이 불렀다.

Q. 닭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만으로 가금 전문 수의사의 길을 택한 것인가?

우선 수의대는, 서울대와 건대를 두고 고민하다 서울대가 4년 동안 수원에 있는 줄 알고 건대를 써서 오게 되었다 (웃음).

학교를 다니며 양계를 택하게 된 계기는 말하자면 길다. 학부생 시절에 학생회장을 했는데 회비가 늘 모자랐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달력도 팔고 장사도 하는 등 학생회비 마련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동물병원에 갔는데 그 때 좁은 공간에서는 일을 못 하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산업동물로 시야를 넓혔고 공교롭게 처음 간 곳이 양계였다. 농장 베이스로 가게 된 이유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장에 가서 6개월간 실습을 했는데 그걸 계기로 발판삼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Q. 책 집필 이후 찾아온 후배들이 있었나?

책을 출판한 후에 충남대학교와 충북대학교의 수의학개론 시간에 가금 수의사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책을 읽은 수의대 학부생에게 가금 수의사에 대한 문의 이메일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을 쭉 적어서 보내면 질문대로 답변을 쭉 써주고 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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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근무하는 AVIAGEN은 어떤 회사인가?

A: 우리가 먹는 병아리가 500원이면 그 병아리의 어미닭은 5000원이고 또 그 어미닭은 30000원쯤 하게 된다. 그 30000원짜리 병아리를 파는 회사다. 그래서 그 어미닭을 건강하게 키우는 지 아시아를 돌며 서비스를 점검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와 기술적인 면에선 비슷하다. 전의 회사는 회사에 있는 닭만 주로 담당하지만 지금은 아시아 지역의 40여 커스터머 중 절반을 다니며 문제가 있으면 문제해결을 많이 해준다. 일종의 컨설턴트 개념이다. 주로 농장을 방문한다. 작년에 168일 정도 출장을 갔는데 100일 정도는 농장에 있고 나머지는 미팅이나 컨퍼런스를 했다.

나라별로 농장 차이도 있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양계 산업 쪽이 살짝 처져 있다. 인도에 가면 살짝 갑갑한 느낌이 든다. 작은 사이즈에 조금만 기우는데 15×100㎡공간에 3만 수 정도 키우는 게 일반적인데, 인도에서는 나무 기둥 몇개에 초가지붕을 엮어서 3-4천 수를 키운다. 방역 개념도 없고 환경도 매우 척박하며 사람들도 굉장히 가난하다.

Q. 가금(양계)수의사의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계 산업 쪽은 성장할 여력이 많다. 지금까지 FAO에서의 데이터를 보면 양계는 빠르게 늘고 양돈은 천천히 늘어난다. 소는 하향 추세이다. 기본적으로 소고기 값이 비싸고, 닭고기는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슬림이 많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지 먹지 않고, 닭고기를 주로 먹는다. 전 세계적으로 닭고기 소비가 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가장 성장이 좋다.

Q. 가금 수의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편인가?

예전보다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가금 수의사 업계의 1세대라고 하면 지금 50대 되는 분들이다. 2세대는 애매하지만 40대 중후반쯤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나서 나는 3세대쯤에 속할 텐데 3세대면 이제 영어가 가능한 수의사도 늘어나서,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수의사도 많다. 앞으로도 활동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여성 수의사도 많은가?

가금 쪽에는 수의사 자체가 많지 않다. 200명 남짓 밖에 안 된다. 주로 농장에서 현장 수의사 아님 백신 약품 또는 사료 회사 등으로 진출한다. 백신 회사 쪽에서도 백신 연구개발이냐 현장 마케팅이냐로 나뉜다. 여성 가금 전문수의사는 전체적으로 열 명 안팎으로 소수이지만, 수말수를 썼던 10년 전과 비교해서는 2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

Q. 젊은 수의사나 학생들은 가금 수의사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어떤 업계든 생각과 목표가 제일 중요하다. 나는 빨리 졸업하고 돈을 벌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몇 년 일하다 보니 방향이 보이더라. 가금 쪽 후배가 찾아와서 자문을 구할 때가 있다. “형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하면 업계에 들어가서 3년 후에 이야기 하자고 한다. 3년 뒤에 또 찾아오면 5년 후에 이야기 하자고 한다. 5년 뒤에 왔을 때는 이미 자신의 길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방향만 잡아줄 뿐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이런 길이 있다고는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이걸 이해하려면 업계에 있어야 한다. 직접 느껴보고 흐름을 읽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방향을 세우면 어느 방향을 가든지 좀 더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본인이 어떤 방향을 가든지, 가서 뭔가 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뒤돌아보니 후배가 늘어있고 나 혼자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의미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다.

Q. 국내에서 고병원성 AI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수의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AI 문제는 산업 구조적으로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 오리 산업과 미국의 칠면조 산업이 유사한 면이 있는데, AI의 주요 발생 축종이라는 것과 다일령 농장이 대부분이며 차단 방역이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all in/all out할 수 있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이끌어내야 한다. 일부에서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는 식으로 차단방역에 대해서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기에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국가에서는 취약한 산업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이를 현장에서 가금 수의사들이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Q. 현재 본인의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도움이 된 자산 이나 인물은?

대체적으로 사람들을 잘 만난 거 같다. 한 분 꼽자면 전 회사에서의 회장님. 그 분은 조금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셨지만 그 분으로 인하여 경력적으로 노하우나 기술이나 경험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에 그분을 존경한다. 

이쪽 회사로 오게 끌어준 영국사람 브루스라는 분으로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회사의 미국인 보스도 처음에 나에게 이 회사로 오도록 제안했던 분이다. 사람들을 잘 만난 편인데 물론 그 계기는 나름대로 나의 능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새로운 일을 하며 생전 알지 못한 포토샵을 이용해서 광고도 만들어보고 언어적인 면에서 부딪히기도 했는데 그래도 의지로 이겨 내 인복이 따라온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맡은 일을 해나갈 예정이다.

Q.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

50대쯤 되었을 때에는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접근법을 가지고 중견회사의 대표나 경영진으로 활동하고 싶다. 

Q. 끝으로 이 인터뷰를 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너무 어렵게 보지 말고 일단은 목표를 가지는 게 좋은 것 같다. 내 기준으로 젊다는 것은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떠나서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젊음이다.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하다 보면 목표에 언젠가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가흔 기자 gahen96@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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