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찬 변호사의 법률칼럼⑩] 악성 게시글에 `너 고소!`를 외치려면

의료분쟁 명예훼손죄 판례와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죄의 성립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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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명예, 명예! 오, 나는 명예를 잃어버렸다. 나의 불멸의 부분을 잃어버렸으니 나는 짐승과 다름없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 제2막 제3장의 대사 중 일부다.

예로부터 명예는 인간이 가지고자 하는 본연의 것이며 인격권으로서 생명처럼 중시되어 왔다. 수의사들은 이처럼 중요한 명예를 잘 지키면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을까.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인터넷의 악성 댓글(악플), 게시글로 고생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악성 게시글로 인해 수의사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모욕감을 느끼고, 동물병원의 매출이 반 토막 나기도 한다.

수의사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동물병원 영업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악성 게시글에 대하여, 수의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명예훼손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그에 대한 대처방법은 형사적 대응과 민사적 대응으로 구분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먼저 형사적 대응을 다뤄보고자 한다. 악성 게시글 작성자에 대한 명예훼손죄의 성립요건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수의사 입장에서는 동물병원에 대한 악성 게시글이나 악성 댓글이 달리면, ‘명예훼손죄’를 떠올리면 글쓴이를 고소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소를 받은 수사기관이 피고소인(게시글 및 댓글을 작성한 글쓴이)을 ‘기소’(형사재판을 제기하는 것)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명예훼손’이 추구하는 가치의 대척점에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란 헌법 제18조, 제21조, 제22조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헌법적 가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사상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외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타인의 명예나 자존감을 침해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경계, 즉 표현의 자유의 한계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한다)에서는 인터넷에서의 명예훼손죄의 요건, 즉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명예를 훼손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처벌 한다.

즉,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든 ‘거짓’으로 명예를 훼손하든 모두 처벌대상이 될 수 있지만, ‘거짓’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더욱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 실제 판례를 보면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점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로 쌍꺼풀 수술을 받은 후 부작용에 대해 인터넷 게시글을 작성한 사람(피고인)을 수술을 시행한 병원 의사(피해자)가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사례다.

피고인은 네이버 블로그 게시판, 다음 카페 게시판 등에 3회에 걸쳐 “쌍꺼풀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눈이 감기지 않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쌍꺼풀 라인 부위를 담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① 성형수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를 볼 수 있게 한 점,

② 피해자의 이름이나 병원 이름을 이니셜만 기재한다든지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명 그대로 기재한 점,

③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에 대한 보상을 아예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를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수술로 입은 손해를 보상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자신이 바라는 수준의 보상금을 조속한 지급해달라고만 요구하며 이 사건 범행을 한 점,

④ 해당 게시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자의 과실로 인해 피고인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였다고 생각하게끔 한 점,

⑤ 피고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진행된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의 의료 과실 및 설명의무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소한 점 등”

을 지적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반면, 유사한 형태의 게시글에 대하여 전혀 다른 결론이 난 판결도 있다.

피고인은 네이버와 다음 카페 게시판에 3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한방동물병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의 △△동물병원입니다. 방송에서 본 선생님은 양학이 못하는 분야를 개척하는 훌륭한 분처럼 보였습니다. 어디까지나 보인 겁니다. 결석이 있는데도 놓쳐서, 치료시기만 놓쳤네요. 진료비 반환 요구했으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안된답니다. 돈을 위해 오진가능성을 99%를 부정하는 사람,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 과오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것은 심사숙고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고 글을 게시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① 피해자의 입장도 충분히 소개하고 있고 피해자가 방송에 출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믿지 말라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내용인 점,

② 피해자가 진료기록부를 조작하고 이에 대한 위증까지 한 점,

③ 반려동물의 소유자는 오진 이후의 태도 등 사후조치에 대하여 오진 여부만큼이나 큰 관심을 가지고 서로간 정보 제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

④ 피해자와의 분쟁 내용과 관련하여 카페에서 자문을 구하고 있었고, 일부 회원들의 요청으로 이 사건 글을 게시하게 된 점,

⑤ 이 사건 글은 동물병원의 정보를 구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에 한정되며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⑥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실명처리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볼 때 피고인은 무죄다”고 판시했다.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에 대한 재판에서 180도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조금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판결보다 두 번째 판결에서의 게시글이 더욱 악의적인 것 같은데, 오히려 두 번째 판결이 ‘무죄’니 말이다.

하지만 각 판결에서 제시한 유∙무죄의 근거를 면밀하게 비교∙분석해 보면 명예훼손죄의 성립요건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 할 수 있다.

법원은 해당 게시글이 내용이나 작성취지가 단순히 비방할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정보제공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여부를 판단한다.

또한 해당 게시글에 작성하게 된 계기나 피해자(위 사례에서 병원과 동물병원)의 입장이 소개되었는지 여부, 게시글을 작성하기 전 피해자에게 사실관계 확인 및 입장표명을 요청했는지 여부를 검토한다.

아울러 해당 게시글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 피해자의 비(非)실명 처리 여부, 문제가 된 의료과실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도 판단 기준 중 하나다.

법원은 이러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해당 게시글이 명예훼손죄를 구성하는지 판단한다.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자존감을 침해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가 행사될 수는 없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동물병원에 대한 악성 게시글이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에서 퍼져나갈 때마다 수의사들의 가슴은 멍든다.

“너 고소!”를 외치기 전에 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고려하여 해당 게시글에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지 살펴 확신이 드는지 검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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