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읽어주는 남자 오제영⑦] 늦어진 핑계와 기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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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미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는 무섭고 긴장되는 이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12월에 AI가 터졌고 전국적으로 퍼졌다.

내가 있는 텍사스 주는 아직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2개 주(state) 건너서 발병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시설도 마냥 편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에 따라 미국 농무부(USDA)에 보여줄 새로운 AI 대응프로토콜을 짜느라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 덕분에 오랜만에 칼럼으로 찾아 뵙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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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AI 발생 현황

오늘의 잡지식 1) USDA 홈페이지에 가면 AI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다. 가금류와 야생동물을 분류하여 얼마만큼 분포되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AI는 동물원에게 과연 위협적일까? 그렇기도 하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각각의 동물원 동물마다 AI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다. 또한 이환율과 치사율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동물원 시설이 어떠한 형태인지에 따라서도 AI 대책이 완전히 달라진다. 야외에 있는 조류 시설인지, 또는 본인이 머물고 있는 아쿠아리움처럼 2개 공간을 제외하고는 다 실내공간인지에 따라 말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원헬스(One-Health) 패러다임이 더욱 강조되면서 공중보건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됐고, 그 일환으로 AI 방역에 참여했다는 점은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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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트란 코뿔소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최근에 수마트란 코뿔소가 말레이시아 야생에서 멸종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아직 동물원과 같은 기관(captivity)에 개체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희망은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인간의 욕심에 의한 무자비한 포획과 살육을 줄이는 것, 서식지 파괴를 줄이는 것, 돌아갈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 그리고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한 번식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

이를 바탕으로 언젠가는 자연에서 수마트란 코뿔소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잡지식 2) 흰코뿔소(White rhino)와 검은코뿔소(Black rhino)는 모두 색깔이 회색 계통이며 뚜렷하게 다른 점이 없다. White rhino는 윗 입술이 굉장히 넓고 몸집 또한 훨씬 넓고 크다. 이를 토대로 wide하다고 했는데 악센트 차이로 발음이 wide에서 white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흰색이 있으면 검은색도 있어야지’라며 약간 더 어두운 색을 띈 품종을 Black rhino로 명명했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면 자주 찾고 좋아하는 동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기린도 그러한 동물 중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기린에 대해 조금 살펴보겠다.

기린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 맞다. 목이 길고 다리도 길고 덩치가 큰 동물이다. 그 외에도 순진한 눈, 특유의 무늬, 긴 혀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적인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 몇 가지 더 신기한 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뿐만 아니라 수의사로서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오늘의 잡지식 3) 챠우챠우라는 개는 혀가 푸른 색인 것이 특징이다. 기린도 비슷하게 퍼렇고 어두운 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먹이 활동 시에 햇볕 때문에 화상을 입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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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혀

기린은 왜 혀가 길고 목이 길까? 먹이 활동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이론을 나는 지지한다.

초식동물 친구들을 대충 나누면 나뭇잎을 뜯어 먹는(browsing) 친구와 염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grazing)하는 친구로 나뉜다. 초식도 초식 나름대로 나뉘는 것이다.

나뭇잎은 보통 높은 곳에 있고,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browsing 동물들과 먹이 경쟁을 하다 보니 기린의 목이 더 길어졌을 수 있다.

다른 이론도 있다. 수컷 기린들은 목으로 싸운다. 긴 목을 휘둘러서 그 원심력으로 서로 때리는 것인데 목이 길수록 원심력도, 목 자체의 무게도 증가하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다.

단, 이 이론으로는 암컷들의 목이 길어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인은 전자의 이론이 더 논리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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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레눅, 일어났다!

오늘의 잡지식 4) 게레눅(Gerenuk)이란 동물이 있다. 대다수의 초식동물이 그렇듯이 흥분해서 뛰다가 목이나 다리를 부러지기 쉽상이라 조심해서 접근하거나 마취해야 하는 친구다. 뭘 하든 부러뜨리려 하니 말이다. 이 친구도 높이 있는 것을 먹으려고 목이 길다. 일어서기까지 한다.

혀도 browsing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기린의 혀는 굉장히 길 뿐더러 능수능란하게 사용된다. 높은 나뭇가지를 손으로 쥐듯 감싸고 후르륵 잎사귀를 뜯어내게 해준다.

지난 번 칼럼에서 잠시 발굽동물과 뿔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기린 또한 발굽동물로서 오카피와 함께 giraffidae에 속한다.

이들은 뿔 대신에 ossicone(골축)이 있는데 머리에 귀엽게 튀어나온 두 개의 뿔이 ossicone이다. 기린은 암수 모두 이를 지니고 있는데 남자는 커가면서 머리에 우둘투둘 돌기들이 생긴고 ossicone 위에까지도 연장된다. 그러니 관찰력이 있는 분이 동물원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 해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병에 걸려 종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관찰력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린들이 걷는 모습을 한 번 유심히 지켜보면 특이한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낙타에서도 보이는 특이한 걸음인데, 왼쪽 또는 오른쪽의 앞/뒷발을 함께 움직인다. 즉, 왼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함께 움직이고 그 다음에 오른쪽 발들이 이동한다.

그래서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다리 길이와 걷는 모습 때문에 묘한 걸음걸이로 보인다. 낙타도 같은 걸음걸이라서 예전에는 (무게 중심이 좌우로 쏠리면서 등에 있는 혹이 좌우로 흔들리는) “사막의 돛단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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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시는 기린

기린은 서서 잘까? 아니다. 이들도 앉아서 잔다. 목을 뒤로 돌려 엉덩이 위에 올려놓고 잘 수 있다. 잠자는 시간은 짧은 편이다.

일어나는 모습도 특이한데, 긴 목과 긴다리 때문에 앞다리를 땅에 접고 댄 상태에서 뒷다리부터 피고 앞다리를 목을 휘둘면서 일어난다. 물을 마실 때는 다리를 쭉 뻗고 목을 내려 마신다.

목이 긴 만큼 목뼈의 개수도 많을까? 이 것 역시 아니다. 포유류(mammal)의 목 뼈 개수는 나무늘보와 매너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7개로 이루어져 있다. 즉 기린도 우리 사람과 같이 7개가 있다. 다만 굉장히 길 뿐이다. ‘같은 포유류인데 어쩌면 이렇게 신기하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오늘의 잡지식 5) 두발가락 나무늘보와 매너티는 목뼈가 6개,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목뼈가 8개다.

 

하지만 기린의 이러한 특징들 모두 수의사에게는 단점인 경우가 많다. 여러 의료 케이스가 있겠지만 일단 ‘마취’ 측면에서만 살펴 보자.

첫째, 일단 목이 너무 길기 때문에 마취를 하면 높은 곳에서부터 머리가 떨어지면서 뇌진탕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부드럽게 마취상태로 넘어갈 수 있는 마취제 용량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마취 없이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이들은 야생동물이며 초식동물 특성상 겁이 많다. 방어적으로 발로 차는데 자동차 차문을 가볍게 부술 정도의 힘이다. 설령 기린이 굉장히 착하고 얌전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무마취 의료행위의 모험을 감행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은 약한 진정 상태 또는 사육사에 의한 훈련된 진료행위를 한다. 즉, 위에서 기린과 본인이 같이 찍은 사진은 엄연히 말하면 잘못한 것이다. 물론 사람을 좋아하도록 버릇이 잘못 든 기린이라 한 것이지만 만일 야생으로의 복귀까지 생각한다면 야생동물은 야생동물답게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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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된 기린에게 대주는 목 판자

두 번째, 목이 길기 때문에 목에 혈액량이 많고 심장이 피를 펌핑하는 힘이 굉장하다. 때문에 마취되어 땅바닥에 눕게 되면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증가한 혈압에 의해 뇌혈관에 손상을 줄 수가 있다.

물론 방어체계가 있기는 하다. 기린은 물을 마실 때도 목을 심장 높이보다 내려서 마신다. 이 때 정맥에 있는 판막이 피가 역류해 뇌로 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목 정맥에 피가 저류되기 때문에 마취 후에는 긴 판자를 사선으로 고정하고 목을 심장 높이보다 높게 해준다. 성인 여러 명이 목이랑 머리를 들어 올려도 진이 빠지니, 얼마나 큰 동물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잡지식 6) 청진이 어려운 동물이 있다. 기린의 경우에는 꼬리 맥을 잡으면 편하다.

마지막으로는 마취 후 회복이다. 아까 자다가 일어나는 모습을 설명하였는데 마취 후 회복에도 마찬가지 자세로 일어난다. 다만 아직 몽롱하기 때문에 넘어질 위험이 있다. 넘어지면서 골절이나 뇌진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회복시킨다.

그 방법인즉슨 성인 여러 명이 회복 때 기린을 위에서 누르는 것이다. 기린은 일어나려고 하지만 몽롱한 상태라서 사람들을 뿌리치고 일어날 힘이 없다. 기린이 최소한 세 번 일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을 기다린 후에 누르는 것을 그만두면 어느 정도 마취에서 회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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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기린

이런 여러 사항들 때문에 기린의 마취는 철저한 계획을 요구한다. 긴장도 많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검진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더 나은 치료를 하는 것이 수의사의 역할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과 기술을 야생에 적용시켜 나가는 것이 내 궁극적인 목표다.

사냥당한 사자 세실의 이야기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지구는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체가 함께 사용하며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단 수의사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관심의 모이고 또 모여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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