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아시아 동물병원 표준의 현재를 보다 – VRVC 2026·TAHSA 라운드테이블

허찬 한국동물병원협회 혁신경영위원장 / 에스동물메디컬그룹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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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에서 열린 VRVC 2026과 TAHSA 라운드테이블에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혁신경영위원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다녀왔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의 수의사들과 함께 동물병원 진료 표준과 근거 기반 의학을 논의하고, 현지의 대형 동물병원과 수의과대학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VRVC(VPAT Regional Veterinary Congress)는 태국임상수의사회(VPAT, Veterinary Practitioner Association of Thailand)가 주최하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지역 수의학 학술대회입니다. 매년 열리며, 태국과 해외의 수의사 및 동물보건 전문가들에게 최신 수의학 지견을 제공하고 경험 교류와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026년 제18차 태국임상수의사회 콩그레스(VRVC)는 6월 7~10일(일~수)까지 방콕 임팩트(IMPACT)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국내외 연자의 학술 강연, 연구·포스터 발표, 최신 수의 기술을 망라한 전시, 그리고 분야별 워크숍과 세미나가 함께 진행되는, 명실상부한 이 지역의 대표 학술 플랫폼이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분야와 기관의 포스터들이 인상적이었으며,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TVT나 곰팡이 감염질환의 포스터가 많은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TAHSA(Thailand Animal Hospital Standards and Accreditation)는 태국의 동물병원 표준 인증제도입니다. 병원 운영과 인력, 시설, 진료 프로세스 등 여러 영역을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로, 14개 표준 영역과 300개가 넘는 세부 항목에 걸쳐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집니다. 단순한 시설 점검을 넘어 진료의 질 전반을 끌어올리기 위한 틀로, 매년 VRVC 기간 중 인증식이 열립니다.

실제로 톤글로(Thonglor)와 같은 현지 대형 병원들이 이 인증을 받으며 표준화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첫날은 TAHSA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습니다. 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러시아,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등 여러 아시아 국가의 수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핵심 의제는 TAHSA와 같은 인증·표준 체계를 어떻게 아시아 차원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였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일률적인 ‘표준(standard)’을 강제하기보다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evidence-based guideline)’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모였습니다. 나라마다 진료 여건과 의료 인프라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WSAVA 또는 FASAVA가 주도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절차를 합의하고 이를 과학적 근거 위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표준화의 당위성과 각국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이는 비단 동남아시아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한국 수의계가 진료 표준과 인증제도를 논의할 때도 똑같이 마주하게 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튿날은 카셋삿대학(KU) 수의대, 출라롱콘대학(CU) 수의대, Vet4 Animal Hospital, 그리고 톤글로 동물병원(Thonglor Pet Hospital) 네 곳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KU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은 진료 시작 전인 아침 8시 30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대기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루 500~600 케이스가 내원한다고 합니다. 분과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진료 동선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는데, 특히 새로 조성한 평생교육센터(continual education center)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의사 재교육과 임상 역량 강화에 대한 투자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CU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 역시 하루 500~600 케이스가 내원하는 대형 병원이었습니다. 한국과 비교해 내원하는 품종이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대형견의 비중이 높고 고양이도 많아, 진료의 스펙트럼 자체가 우리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톤글로 동물병원은 이번 방문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이었습니다. 태국 내 21개 지점과 베트남 호치민시 1개 시설을 운영하는 대형 체인으로, 직접 투자와 합작을 통해 국내외 확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로 31년째 운영 중인 태국 반려동물 의료의 대표 주자입니다.

본원은 단순한 병원이라기보다 하나의 ‘빌리지(village)’에 가까웠습니다. 카페와 식당이 있고, 보호자가 머물 수 있는 30개 객실 규모의 호텔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체 개발한 영양제 제품군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종양학(oncology) 세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비만세포종(MCT, mast cell tumor), 혈관육종(hemangiosarcoma) 등 임상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종양들을 주제로 한 강의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태국 수의사들의 뜨거운 열정이었습니다. 태국은 인구의 약 70%가 불교 신자로, 생명에 대한 존중과 동물에 대한 애정이 사회 전반에 깊이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태국 수의사들은 안락사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한국 수의사와 대비되었습니다. 수의과대학 졸업생의 약 90%가 소동물 임상을 선택하고, 전문의 제도 또한 이미 자리 잡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진료 여건과 사회적 배경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더 나은 동물 진료를 향한 고민과 노력은 국경을 넘어 닮아 있었습니다. 아시아 수의계가 함께 표준과 근거를 만들어 가는 흐름 속에서, 한국 수의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깊이 돌아보게 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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