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의 무사 생환, 그 뒤에는 수의사들이 있었다

KAZA 진료종보전분과 수의사들 전국서 모여 마취총·현장 응급진료차량 운용..대전시수의사회도 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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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했던 늑대 ‘늑구’는 9일 만인 4월 17일(금) 새벽 포획돼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시민들의 안전도, 늑구의 생명에도 지장 없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수의사들의 노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늑구의 안전한 포획을 위해 전국의 동물원 수의사들이 모였다. 동물원 동물에 마취총을 사용해본 경험이 가장 많은 수의사들이 모여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포획 직후의 협진도 이어졌다. 늑구의 위에서 발견된 낚싯바늘은 대전광역시수의사회 김종만 회장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에서 제거됐다.

포획된 늑구

늑구가 오월드를 탈출한 이튿날인 4월 9일(목)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진료종보전분과에 속한 수의사들이 오월드에 집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된 청주동물원과 광주 우치동물원을 비롯해 서울대공원 동물원, 에버랜드동물원, 전주동물원, 국립생태원 등 전국의 동물원 수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늑구를 ‘살려서’ 데려오기 위해 마취 포획 및 의료 지원에 나선 것이다.

늑구가 언제 발견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수의사들은 돌아가며 대전에 머물렀다. 각자가 보유한 마취총을 활용해 다양한 거리에서의 연습도 진행했다.

탈출 엿새 만인 14일(화) 새벽 2시경 늑구가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드론으로 포착됐다. 2개 동물원의 수의사와 소방 당국이 마취총 4정을 활용해 포획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실패로 돌아갔다.

전국에서 동물원 수의사들이 모여 마취총을 활용한 포획을 준비했다.

이틀 후인 16일(목) 오후 5시 40분경 늑구가 다시 추적됐다. KAZA 진료종보전분과도 수의사들의 집결을 요청했다.

청주동물원, 국립생태원, 에버랜드동물원, 우치동물원의 수의사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 대전으로 향했다. 이들 4개 동물원 수의사들은 각자 보유한 마취총 4정을 들고 포획 작전에 참여했다.

자정 무렵 드론으로 늑구의 위치가 특정됐다. 당시 늑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국립생태원 진세림 수의사가 마취총을 격발해 명중시켰다. 나머지 수의사들은 늑구의 예상 퇴로에서 마취총을 준비하면서 도주에 대비했다.

개방된 공간에서 벌어진 포획 작전인만큼 명중 후에는 시간 싸움이었다. 마취총으로 주입된 성분이 효과를 보이기까지의 시간 동안 놀란 늑구가 도망치는 것을 추적했다. 오월드까지 마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다행히 인근 수로에 도망친 늑구를 찾아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청주동물원이 마련한 야생동물 응급진료차량(wildlife ambulance)이 빛을 발했다. 응급진료차량에서 오월드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포획된 늑구의 건강 상태를 곧장 체크했다. 산소를 공급하며 마취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포획 직후 응급진료차량에서 늑구를 안정화하는 대전 오월드 동물병원 수의사들

오월드 동물병원으로 늑구를 옮긴 수의사들은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엑스레이 촬영으로 늑구의 위에서 낚싯바늘을 확인했다.

낚시 바늘이 위를 뚫고 나오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이번에는 대전광역시수의사회가 협진에 나섰다.

대전광역시수의사회 김종만 회장은 “늑구가 다친 상태로 포획될 가능성을 고려해 대전시로부터 사전에 협조 요청이 있었다”며 “24시간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대전시수의사회 회원들과 대응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포획 당일 새벽 낚싯바늘이 확인되자 늑구는 김종만 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대전 숲동물의료센터로 이송됐다. 아침 일찍 이어진 내시경 시술을 통해 무사히, 비침습적으로 제거했다.

숲동물의료센터는 천공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CT 촬영까지 병행했다. 김종만 회장은 “위 속이 풀로 가득 차 있어 내시경으로 바늘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면서도 “무사히 수술을 마쳐 다행”이라고 전했다.

오월드 동물병원으로 이송돼 정밀 검사를 이어갔다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로도 함께 활동하고 있는 KAZA 진료종보전분과는 진료·교육에서 힘을 모으는 일에 익숙하다. 물범 진료나 사자의 중성화수술, 조류 정형외과 수술을 연습하기 위한 Dry-lab까지 다양한 진료·교육 행사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다.

김정호 팀장은 “(늑구 포획을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였다. 동물원 수의사들이 의리가 있다”면서 “큰 일이 생기면 힘을 합해야 한다. 어느 동물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사고 수습을 위해 수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전문가가 근육이완제 등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마취 포획 과정에서도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만큼 자격을 갖춘 동물원 동물병원 수의사가 알맞은 마약류 의약품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포획에 활용된 응급진료차량은 민관이 함께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차량은 청주시, 트레일러는 국가유산청 예산으로 구입했다. 그 안을 채우는 의료기기는 고향사랑기부제로 모인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확보했다.

청주시, 국가유산청, 시민들의 고향사랑기부까지 모아 마련된 야생동물 응급진료차량

김정호 팀장은 “예전에는 동물원에서 동물이 탈출하면 엽사를 동원해 사살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시민 분들이 늑구의 생환을 염원해주셨다. 안전한 포획을 위한 수의사 참여도 이뤄졌다”면서 “그만큼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추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늑대는 그래도 대형견 정도의 크기지만, 훨씬 큰 동물을 포획·제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수의사들로서도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코뿔소나 코끼리 등 초대형 동물을 마취하려면 강력한 마취제인 ‘에토르핀(etorphine)’이 필요한데 국내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 팀장은 “동물을 안전하게 생포하려면 의료용마약류취급자인 수의사가 적절한 마취제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무호흡 등 응급 대응도 가능해야 한다”면서 관련 인프라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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