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근 ASF 유행의 시사점과 교훈 – 이명헌 대수 방역식품안전위원장

야생멧돼지 뒤만 쫓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정책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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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 유행은 기존의 발생특성이나 확산 속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례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가히 충격적이고 당황스럽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재앙의 서막이 시작되었다는 거침없는 독설을 내놓고 있고 이를 과도한 우려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본 고에서는 보다 과학적인 근거에서 기초해서 현재의 상황들을 면밀히 살펴 향후 ASF 방역관리를 위한 교훈으로 되새기고자 한다.

지난 주말 58차 포천 발생농가 방역대 예찰과정 중 추가 발생이 확인되었고 연이어 경기도 화성시 소재 양돈장에서도 양성축이 검출(2월8일)되었다. 강릉(1월16일), 안성(1월23일), 포천(1월24일, 2월6일), 영광(1월26일), 고창(2월1일), 보령(2월3일), 창녕(2월4일)에 이어 올해에만 벌써 아홉 번째로 이번 유행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선 그간 비발생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었던 전남, 전북, 경남에서 사육돼지 발생이 확인됨에 따라 제주도를 제외한 사실상 전국적인 발생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지점은 뼈아프다.

또한 유전형 분석 결과도 주목할 만한데 현재까지 분석이 완료된 8건 중 6건(강릉, 안성, 영광, 고창, 보령, 창녕)이 과거 유행형(유전형 Ⅱ, IGR-2형)과는 상이한 IGR-1형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IGR-1형의 발생빈도는 0.07%(4,098건 중 3건)에 불과하며 네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유행형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포천을 제외하면 올해 발생한 지역에서는 모두 멧돼지 발생이 전무하여 그간 불문율처럼 통용되었던 야생멧돼지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인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약 2개월 전인 당진 양돈장 발생사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정밀검사 결과 확진은 지난해 11월 25일이지만 해당 농장에서는 10월 초부터 폐사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 이후 역학조사를 통하여 10월 9일 민간기관에 병성감정을 의뢰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방역당국 정밀검사 결과 해당시료에서 ASF 바이러스가 확인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잠복기간을 산정할 경우 바이러스의 유입시점은 9월 중순 이전이고 여기에 신고 지연을 감안하다면 적어도 3개월 이상 ASF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절망스러운 지점은 충남지역이 사육돼지는 물론 멧돼지에서도 양성보고가 없어 ASF에 대한 경각심이나 방역의식이 타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흡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더욱이 충남이 전국에서 돼지사육두수가 가장 많고, 국내 최대 양돈밀집단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양돈, 사료, 도축 등 관련 산업 여건을 고려할 때 축산관계시설 및 차량, 양돈종사인력과 같은 수많은 역학요인들이 이번 유행의 전파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당진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이 IGR-1이며 포천 이외 발생사례에서 모두 동일 유전형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언한 바와 같이 이번 유행은 관습적이고 익숙하게 목도했던 기존의 ASF 발생양상이나 역학상황을 완전히 벗어나 매우 생경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ASF 생태계에 부합하는 대응방안이 시급한 시점이다.

첫째 사육돼지 ASF는 야생멧돼지 중심의 바이러스 순환구조에 연계되어 있다는 고정된 상황인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여러 가지 발생시나리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비록 인위적 전파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멧돼지의 발생은 이미 한반도 최남단 부산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멧돼지 뒤만 쫓는 방역정책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둘째 ASF 바이러스 변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방역당국의 공식적인 역학조사를 통하여 보다 정확한 유입경로가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전문가들은 해외유입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선명한 임상증상과 높은 폐사율의 전통적인 ASF와는 달리 치사율이 낮고 저병원성 만성형을 특징으로 하는 변이주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주변상재국에 빈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걱정스럽다. 심지어 식욕부진, 침울 등 경미한 증상 후 회복하는 약독주도 출현하고 있어 국내 유입 시 고병원성 ASF의 임상증상에 매몰되어 있는 양돈현장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해외 ASF 발생상황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유행주의 변이 추이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대안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현장 중심의 효과적인 실천전략으로 방역 효율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축산현장에서 나타나는 이상신호를 놓치지 않고 감지할 수 있는 정교하고 촘촘한 감시체계가 필수적이다. 현행 능동예찰은 전문가의 임상 관찰이 선행될 수 있도록 보완하고 항체검사도 병행하여 숨겨진 감염이력 색출과 변이주 탐색에도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양돈장의 고질적 상재질병인 흉막폐렴, PRRS, 글래서씨병과의 감별진단, 도축장 검사 강화도 늦출 수 없는 해결과제다. 아울러 전국 어디에서든 발생이 가능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방역관리 권역화정책도 심도 있는 재검토가 요구된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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