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안 받습니다” 선언한 동물병원..경영난 속, AI가 ‘소통의 판’ 바꾼다

단순 상담은 AI가 ‘필터링’, 진료 기록은 ‘SAP 자동화’, AI 통해 의료 본질 집중하는 동물병원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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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해지는 개원가 경쟁 속에서 동물병원이 ‘생존’을 넘어 ‘성장’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최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는 동물병원이 처한 딜레마를 명확히 보여준다. 원장은 병원 운영과 매출을 걱정하는 반면, 진료 수의사는 과중한 업무와 감정 노동으로 인한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간극을 메울 열쇠로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소통 시스템의 효율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동물병원협회(KAHA)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 원장의 가장 큰 경영상 어려움은 단연 ‘매출 증대를 위한 전략 및 실행 방안(28.3%)’이었다. 반면, 진료 수의사(봉직의)들은 ‘야간·휴일 근무로 인한 피로 및 번아웃(53.4%)’을 1위로 꼽았으며,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중(39.4%)’과 ‘보호자 응대 및 민원 대응의 부담(32.1%)’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보호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친절한 설명과 정서적 케어가 병원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었지만, 이를 감당해야 할 의료진의 피로도는 한계치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많은 수의사들이 ‘진료 및 병원 운영 전반에 활용 가능한 AI 프로그램의 개발(34%)’을 절실한 해결책으로 꼽기도 했다.

이러한 니즈에 맞춰 최근 수의계에는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I 기반의 1차 문진 시스템’이다. 수의사가 만든 CRM 솔루션 ‘늘펫’ 등이 선보인 이 방식은 보호자의 문의가 병원 데스크로 직행하기 전 AI가 먼저 내용을 분석하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호자가 메신저를 통해 반려동물의 상태를 알리면, AI가 텍스트를 분석해 중증도를 파악하고 내원 필요 여부를 가이드한다. S동물병원 관계자는 “동물병원에 걸려 오는 전화 중에 중요도가 떨어지는 전화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중요도가 낮은 질문을 선별하고 정확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단순 문의를 AI가 걸러줌으로써, 의료진은 실제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강원도의 M동물병원은 과감하게 AI 메신저 시스템을 도입하고 전화 업무를 최소화했다.

원장은 “전화벨 소리로부터 해방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전화 응대 시 겪던 감정 소모와 정신적 피로감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경영 성과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매출은 줄지 않았다”며 “오히려 AI 채팅 과정에서 보호자들이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해지면서, 수의사가 진료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스템이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 병원의 진료 환경과 수익 구조를 지키는 방어막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료 기록 방식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도입된 ‘AI 통화 분석’ 기술은 보호자와의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S(Subjective, 주관적 증상), A(Assessment, 평가), P(Plan, 계획) 형식의 차트로 자동 변환한다.

눈여겨볼 점은 일반적인 SOAP 차트에서 O(Objective, 객관적 검사) 항목을 제외한 서비스도 있다는 점이다. AI 기술이 수의사의 전문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행정 업무만을 효율적으로 보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의사는 AI가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직접 환자를 진료하고 검사한 O(Objective) 데이터만 채워 넣으면 된다.

맞춤형 콘텐츠 마케팅도 주목받고 있다. 결국 병원의 경쟁력은 ‘재방문’에서 나온다.

의료 마케팅 전문가는 “치료 결과보다 경험의 기억이 병원 재방문에 더 강력한 요인이 된다”고 조언한다. 최근 CRM 솔루션들은 상담 내용에서 특정 질환이 감지되면, 해당 증상에 맞는 ‘케어 정보’나 ‘질환 안내’ 콘텐츠를 수의사에게 추천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수의사가 클릭 한 번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보호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보호자는 ‘우리 아이가 세심하게 케어받고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전문가는 “동물병원의 마케팅은 이제 단순 홍보가 아니라, 보호자가 마주하는 모든 경험을 기술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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