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배님, 수의대 성적 관리 중요한가요?

수의계의 ‘다양성’, ‘전문성’ 위해 수의학 교육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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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에 지역 동물병원에서 실습할 때마다 수의사 선배님들께 꼭 한 번씩 듣는 질문이 있다.

“졸업하고 대학원 가실 생각 있으신가요?”

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들어주시기엔 그리 여유가 많아 보이시진 않지만, 그래도 선뜻 우리들의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시려는 선배님들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어딜 가나 젊은 선배님들이 ‘대학원 진학’을 화두로 꺼내는 걸 미루어보면, 비단 수의대생들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수의임상컨퍼런스 및 세미나에서는 미국 전문의를 초청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더불어 학계에서는 ‘한국수의내과전문의’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한국수의외과전문의’제도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수의계의 ‘전문성 함양’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4월 29일(토)은 2023년 세계수의사회(WVA)가 2000년에 지정한 세계 수의사의 날(World Veterinary Day)이다. 세계 수의사의 날은 매년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동물과 인간의 건강, 복지, 환경, 식품위생, 검역 등 각 분야에서 노력하는 수의사의 ‘전문성’을 돌아본다.

올해 주제는 “Promoting diversity, equity, and inclusiveness in the veterinary profession”이다. 세계수의사회는 “수의사의 행복을 위해선 각자의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며 수의사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수의사의 전문성을 돌아보는 세계수의사회가 던진 올해의 묵직한 한 마디는 우리나라 수의계에 뼈아프게 정곡을 찌른 듯하다.

수의사는 기초, 예방, 임상을 아울러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만큼 잠재력이 막대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외영(내과, 외과, 영상의학)’으로 진출하길 희망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국내 수의사의 분야가 소동물 임상으로 편중이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임상대학원 진학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이대로 우리나라 수의학 교육은 괜찮은 걸까?

*   *   *   *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에서는 지난해 ‘2022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총조사’를 통해 국내 수의대생의 대학 생활, 수의학 교육, 진로, 수의계 사회 인식 등에 대한 견해를 전반적으로 조사했다.

대한민국 수의대생 1,273명을 대상으로 100여 개 이상의 문항을 묻는 대규모 조사였으며, 이번 기고문에서는 수의대생의 고민 및 진로에 대해 관련된 결과를 일부 발췌하였다.

 

<요즘 수의대생들의 고민은>

‘졸업 후에 어떤 분야(기초, 예방, 임상)에 종사하고 싶나요?’라는 문항(첨부하지 않음)에 ‘미정(248명)’을 제외한 참여자 1,025명 중 88.0% (전체 응답자 중 70.9%)가 ‘임상계’을 선택했다.

‘졸업 후에 어떤 계열에 진출하고 싶나요?’라는 문항에 ‘미정(37명)’을 제외한 참여자 988명에게 ‘해당 계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문항을 물었다. 해당 문항의 응답자 35.2% (전체 응답자 중 27.3%)가 ‘관련 분야의 관심과 흥미’를 선택했다.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55.2%가 ‘그렇다’를 선택했다.

‘대학생활 중 스트레스 요인 3가지는 무엇인가요?’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51.0%가‘미래에 대한 불안감’, 41.1%가 ‘진로 설정의 어려움’을 선택했다.

이처럼 수의대생 대다수는 임상 분야로 진출하길 희망하며, 그 이유는 주로 해당 분야의 관심과 흥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절반 이상의 수의대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졸업 후 취업이 수월한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수의대생의 절반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요즘 수의대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학과 성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75.4%가 ‘그렇다’를 선택했다.

‘학과 성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라는 문항에 ‘그렇다’를 선택한 참여자 960명에게 ‘학과 성적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문항을 물었다. 해당 문항의 응답자 31.7%가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이처럼 수의대생들의 절반 이상이 학부 성적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이 중에 대학원 진학을 의식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학부 성적이 높을수록 대학원 진학이 유리하다는 근거는 없지만, 수의대생 대다수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의 교육체계에서 수의학 교육을 정성적이라기보다는 정량적인 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수 있다.

 

<요즘 수의대생들이 원하는 교육과정은>

‘기초수의학 과목의 일부를 예과 2년 과정에서 이수하는 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나요?’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36.6%가 ‘매우 그렇다’, 48.0%가 ‘그렇다’를 선택했다.

‘예과 2년 과정에서 복수전공을 허용하는 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나요?’ 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13.3%가 ‘매우 그렇다’, 33.4%가 ‘그렇다’를 선택했다.

‘수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문항에 응답한 참여자 1,273명 중 10.1%가 ‘매우 그렇지 않다’, 32.9%가 ‘그렇지 않다’를 선택했다.

수의대생 대다수는 기초수의학 과목을 예과 과정에서 이수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며, 약 절반의 수의대생들이 타 전공을 경험할 기회를 부여받길 원했다.

또한, 과반수가 지금의 수의학 교육과정은 인문학 교육이 부족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예과 2년 과정 중에 기초수의학을 이수하거나 복수전공을 허용하는 문항에 대체로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지금의 6년제(예2+본4) 교육과정 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편이라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   *   *   *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우선으로 하며, 인류의 건강과 환경보호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의사가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직업적 ‘다양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수의사의 책무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대중의 기대는 커져만 가고 있으나, 지금의 수의대생들은 관심과 흥미, 그리고 개인적인 가치관 실현을 위해 대부분 소동물 임상으로의 진출로 한마음이 된다.

설령 다른 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정보가 부족하거나 대우가 열악하다는 걸 깨닫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수의사를 양성하는 수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임상역량(Clinical competency)과 전문역량(Professional competency)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충족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면, 최근 국내 수의과대학들이 신임 교수의 임용을 통해 인적자원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급한 불을 먼저 끄는 긴급조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한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대학을 6년간 다니면서 기초, 예방, 임상을 아울러 수의학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흡수한다. 하지만 우리의 졸업역량(Day 1 competences)은 한없이 부족하고 직업전문성(Professionalism)에 대해 고민할 기회는 좀처럼 드물다.

물론 정부, 대학, 협회, 개인 모두가 노력해야겠지만, 시스템이 재정비되려면 대학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국수의교육학회는 지난해 2월 충남대학교 동물병원에서 개최한 워크숍을 통해 수의학 교육이 역량바탕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위해선 각 대학이 수의학 교육을 전담할 교수와 행정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교육의 수혜자인 미래 수의사로서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10개 수의과대학 모두가 ‘수의학 교육실’을 설치할 수 있는 기반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및 자료

1) 수의사의 윤리강령, 대한수의사회 홈페이지

https://www.kvma.or.kr/kvma_Veterinary_society?num=7

2) Day-1 Competencies for Veterinarians Specific to Health Informatics, Sec. Veterinary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2021,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 doi: 10.3389/fvets.2021.651238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vets.2021.651238/full

3) Roadmap for Veterinary Medical Education in the 21st Century: Responsive, Collaborative, Flexible

https://www.aavmc.org/assets/data-new/files/NAVMEC/navmec_roadmapreport_web_single.pdf

4) OIE 지침 수의학교육과 세계적인 변화, 2013, 대한수의사회지, v.49 no.10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1354840929608.pdf

5) 2022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총조사,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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