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정부 수의 조직의 종말을 고하다

지방 공무원 수의사 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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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광역지방정부 소속의 수의직 공무원으로 본청 동물방역부서의 수의행정 분야와 동물위생시험소의 검진·검사 등의 현장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수의직 공무원 모집에 미달사태가 잇따르고, 그나마 신규임용자 중에서도 3년 전후로 사직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필자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동료들마저도 연달아 퇴사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곧 사무관 진급을 앞둔 동료도 있었다.

지방 수의직 공무원의 대부분은 가축방역관, 검사관으로 위촉되어 동물방역과 축산물위생 분야에 종사하게 된다. 최근 반려동물산업이 증가하며 동물보호 분야까지 업무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동물보호 분야에 있어 수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산업동물과는 다른 관점에서 동물을 접하며 공부했고,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와 경험뿐만 아니라 관련 인적 인프라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직접피해액만 3조원에 달했던 세 차례의 구제역(FMD)이 발생한 이후, 거의 매년 발생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그리고 2019년 9월 17일 경기도 파주 양돈농가에서 시작한 뒤 감염된 야생멧돼지에 의해 전국을 위험권으로 만든 아프리카돼지열병(ASF)까지 악성 가축전염병의 발생은 끊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럼피스킨병, 에볼라 등 신종 가축전염병의 유입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의사들이 주로 근무하는 동물방역 조직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방역정책국이, 광역지방정부에는 課(과) 단위 조직이 신설되었고, 더불어 각 시·도 동물위생시험소의 인력과 조직 규모 또한 늘어났다. 그러나 최일선에서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기초지방정부의 경우 변화의 바람이 미치지 못했고 10년 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동물방역조직은 머리만 비대해진 기형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동물방역업무가 격무업무로 분류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질병 발생과 이에 따른 비상근무와 잦은 영상회의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전염병의 사전 예방과 확산 방지 그리고 신속한 초동방역을 이유로 현장에서 체감되는 과도한 방역조치가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인력난과 더불어 동물방역분야에만 수의직 공무원의 인사가 집중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축산물위생과 동물보호 분야에서 수의사의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수의직 공무원의 업무영역은 제한되고 좁은 식견만을 가진 체 조직 전반에 융화되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지방정부의 수의 조직은 소멸의 단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의사의 전문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 규모를 갖추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동물방역의 최일선 조직인 기초지방정부는 가축전염병의 특성을 알고 지역에 맞는 방역정책을 적용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수의사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다. 예비군지휘관(군무사무관)과 같이 5급 상당의 (가칭)지역동물방역자문관 제도의 도입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지방 방역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동물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 하지 않았던가.

광역지방정부의 수의사 대부분은 동물위생시험소에서 근무한다. 채혈과 시료채취와 같은 테크니션적인 일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병성감정, 역학조사, 방역지도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결핵, 브루셀라증과 같은 인수공통감염병,구제역과 돼지열병 백신항체 미달농가에 대한 사후관리를 위한 잦은 현장 투입에 따른 압박감은 상당하며, 소위 3D업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료채취 장소를 농장이 아닌 도축장으로 전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가축방역위생본부 소속 가축방역사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지휘 권한 일부를 지방정부로 이관하여 지역 실정에 맞게 방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조절해 나갈 수 있도록 개선되기를 바란다.

道(도) 단위 광역자치정부 중 경기도에 동물보호과가 이미 신설되었고 수의사 출신 국장(3급 상당)이 연달아 탄생했지만 다른 지역은 계속되는 인력난과 과도한 업무 탓에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방역 인력의 효율적 배치와 업무 다이어트는 물론, 동물방역, 축산물위생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동물보호 분야에 있어 수의직 공무원과 수의사들에게 비전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 소속의 한 수의직 공무원의 편협한 개인적 의견에 불과할 수 있지만, 지방 수의 조직은 종말을 길을 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바뀌어야 한다. 수의 조직의 대변환이 필요할 때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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