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담이라는 동물 진료비, 도대체 얼마나 부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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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 완화’는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문제에서 클리셰처럼 쓰이는 표현이 됐다. 소비자단체 조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에서도 계속 쓰이는 표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다. 국정과제에도 이를 위한 세제상 지원방안 마련, 맞춤형 펫보험 활성화가 포함됐다. 정황근 농식품부장관도 취임사에서 “과중한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이 커서 문제’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진료비 부담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물론 갑자기 아픈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수백만원을 지출했다면 ‘부담된다’고 느낄 법하다. 하지만 국내 반려동물 전체의 진료비 부담을 전반적으로 가늠하려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나와 있는 진료비 부담 관련 데이터는 기자가 아는 한, 소비자단체가 벌인 설문조사 정도다. 동물병원 이용경험이 있는 설문참여자에게 진료비가 부담으로 느껴지는지, 1회 진료비는 어느 정도 들었는지 묻는 방식이다.

해당 조사에서 ‘부담된다’는 응답은 8~90%대를 기록한다. 그래서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은 큰 것이 됐나 보다.

물론 이러한 조사결과의 의미를 폄하할 수만은 없다. 보호자들의 전반적인 인식도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법 개정의 근거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

(자료 :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보고서, 2020)

가령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대로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상 지원방안을 실제로 도입한다 치자.

그렇다면 해당 세재개편 전후로 진료비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부담된다는 응답률이 감소하면 부담도 준 것이고, 응답률이 높아지면 부담이 커진 것인가?

의료계는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하는 ‘주관적 가구의료비 부담 인식조사’처럼 의료소비자의 인식을 조사하기도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이 매년 진료비 실태조사를 벌여 정책 기초자료로 활용할 ‘숫자’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동물 진료비에도 정책의 기반이 될 ‘숫자’가 필요하다. ‘부담’이라는 표현은 개별 보호자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숫자가 없으면 동물 진료비 관련 정책 논의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면 좋은 것 아니냐’, ‘소비자 부담이 줄어들면 좋은 것 아니냐’는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갈 위험도 커진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의 정부는 반려동물 진료비 관련 정책을 다룰 준비가 안된 셈이다. 달리기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써보고 싶다면, 우선 기록을 측정할 시계부터 사야 한다.

기왕 윤석열 정부가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거론했으니, 데이터를 어떻게 마련해나갈지 청사진도 함께 제시하길 기대해 본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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