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건환경부와 동물청에 대한 제언|조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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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광 수의사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의료경영트랙

현재는 없는 보건환경부가 생긴다면?

최근 정치권에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이 큰 화제입니다. 여가부 폐지에 대한 찬반은 잠시 미뤄두고, 만약 실제로 그렇게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 어떻게 될까요?

일각에서는 기존 ‘보건복지부’에서 복지 파트가 ‘여성가족부’의 기존 역할 중 일부와 합쳐서 새로운 부처가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정치구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지속된 코로나19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 보건의료계에서는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던 ‘보건부 독립’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청 승격과 함께 2차관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제1차관이 사회·복지 분야를, 제2차관이 보건·의료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2개 부처로 나눠질 행정적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죠. 언제든지 보건과 복지가 갈라설 수 있는 상태입니다.

보건복지부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 보건부 신설은 새로운 이슈가 아닙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1년 만에 사회부와 보건부가 분리된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보건부 신설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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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동물의료계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지난 2020년 치러진 대한수의사회 회장 선거에서 허주형 후보(현 회장)는 “장기적으로는 수의사의 관리 부처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경제부처이다 보니, 동물질병에 대한 사회안전망보다 농가나 소유주 소득에 더 민감하다.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나 환경부로 수의사 주무부처를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본지 2020년 1월 2일자 [선택 2020] 대한수의사회장 후보자 인터뷰:기호5번 허주형 참고)

대한수의사회장 후보자의 공약이기도 하였지만 동물의료계 내부적으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과연 현대 사회의 수의사라는 직업의 주무부처로서 알맞은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물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게 됩니다. 물건이 아닌 동물에 대한 행정조직이 경제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존재하는 건 여러모로 일반 국민들에게 의아한 부분일 겁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가볍게 시작해보겠습니다.

전통적인 수의사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동물방역의 측면에서 볼 때 야생동물은 환경부에서, 가축은 농식품부에서 담당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매우 비합리적이며 국가 행정력의 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던 초기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핑퐁 게임을 벌였습니다. 업무의 범위를 서로 미루거나, 필요하지 않은 중복된 행정으로 인한 예산을 낭비했습니다. 주무 부처가 나눠져서 발생한 이런 문제는 조직의 개편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메르스나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에 대비할 수 있는 국가 조직이 없습니다. 현재 질병관리청에서 해당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때문에 대한수의사회는 이번 대선 공약으로 ‘사람-동물질병관리 통합기관 신설’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질병관리청이라는 기관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의 개편없이 인수공통감염병 대응만을 위한 기관이 신설될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지난해 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낙연 예비후보는 해당 정책 제안에 대해 통합 기관 신설이 아닌 ‘질병관리청의 확대’로 답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정치권의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몰딜이 아닌 빅딜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물복지·의료 측면에서 새 정부에서는 동물보호 관련 국 단위 조직(가칭 동물보호국)이 신설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동물보호국에서 의료·복지를 모두 관할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수의사들 다수가 포진하고, 수의사 국가시험을 관할하는 등 현실적으로 수의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축산물 검역과 가축 방역 이외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누구도 명쾌히 ‘그렇다’고 답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허주형 회장께서 후보시절 언급했던 것처럼 ‘경제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아래의 동물보호국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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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먼저 농림축산식품부는 해양수산부와 분리·통합을 거듭했습니다. 환경부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온전히 독립하여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등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보건복지부의 분리 문제와 마찬가지로 농식품부, 환경부 또한 언제든지 사회변화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부처 간 통폐합이나 타 부처로의 일부 이관 등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동물의료계 및 수의사들은 ‘보건환경부’라는 부처의 신설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기능 중 보건 분야가 독립을 한다는 전제로 아래의 조직도를 가진 환경부와 통합하여 일부 기능을 조정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가축방역·축산물 검역의 기존 부서를 가져오고, 동물의료 및 복지와 관련된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여 ‘보건환경부’를 만들고 그 아래에 ‘동물청’을 신설하는 형태입니다.

환경부 조직도

이러한 정책 제안 과정에서는 동물권을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 등과도 연대할 명분이 충분합니다.

포괄수가제인지 행위별 수가제인지도 모를 ‘표준수가제’ 따위로 일컫는 피상적인 동물의료복지정책 논의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이고 모든 국민을 위한 ‘더 좋은 대한민국’을 주장할 명분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미 ‘보건환경연구원’이라는 기관이 존재합니다. 이는 ‘보건’과 ‘환경’이 결국 개인과 군집이라는 측면에서 함께 바라보아야 실현가능한 가치라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일부 특별·광역시에서는 이미 보건환경연구원에 동물위생시험소가 포함되어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서울특별시의 조직도에서는 시민건강국 내에 동물보호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미 대한민국 곳곳의 행정조직에서 동물과 사람의 건강이 별개의 것이 아님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한 개념을 포괄할 수 있는 단어가 ‘환경’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장해야합니다.

서울특별시 시민건강국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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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짓자면, 수의사는 일반적인 의료인이 아님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의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보건복지부로 옮겨버리기에는 동물이 포함되는 ‘환경’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희석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 부정적인 측면도 깊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수공통감염병’은 수의사들이 주도권을 가져야 우리 사회가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능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질병관리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인수공통감염병 대책위원회 등을 통한 합동 대응을 지속하고 있으며 군 부대에서는 수의장교가 코로나19 역학조사에 투입됩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수의사도 보건연구사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방역’은 개인의 보건과 군집의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수의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동물의 방역과 사람의 방역이 과연 큰 틀에서 완전히 다른 것이냐는 물음도 세상에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질병관리청은 보건연구사 지원 자격 중 하나로 수의사를 제시하고 있다.

수의사와 동물의료계를 향해 굴러오는 바퀴의 속도는 세상의 평균적인 그것보다 훨씬 빠른 듯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동물의료계에서 과연 그러한 바퀴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였는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바퀴가 우리 위로 지나가고 나면 밟혀버리거나 밟히기 직전에 겨우 피하고 그저 생존하였다는 것에 만족을 넘어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 바퀴들이 어떠한 이유와 절차를 통해 우리에게 굴러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탐구의 시간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 수의사들은 수년, 수십년 뒤 우리에게 굴러올 수레를 직접 설계해야 합니다. 시작은 미비할지라도 차근차근 제작하여, 그 수레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부디 수레 앞의 사마귀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수의사들의 수레를 만들고 함께 그 위에 오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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