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교육학회와 함께 하는 추천도서②] 고기로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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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지은이 한승태, 2018년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지하철에서 한 고등학생이 휴대전화를 보다가 친구에게 말했다. “야, 독일은 이제 수평아리도 키운대! 이게 뭔 말이야? 치킨은 모두 암놈이야?”

옆에 있던 친구는 영 뜬금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뭐래…”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대화가 어떤 상황을 내포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수의사들은 이 내용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축산업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이 대화는 산란계 산업의 문제점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란계 육성 과정에는 암평아리만 키우기 위해 수평아리는 부화하자마자 도태시키며 이 같은 관행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은 2022년부터 수평아리 도태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양계 산업의 오래된 관습을 끊으려 하고 있다.

*   *   *   *

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머릿속에 스쳤던 책이 바로 ‘고기로 태어나서’이다.

이 책에 대한 첫 기억은 농장동물을 소비의 대상으로 묘사한 제목을 고기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아 놓은 표지의 처참함과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한 노동 에세이’라는 불편한 책 소개이다.

책을 집어 들기 전에 언뜻 우리가 알아야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고 싶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 것 같은 감정이 앞섰다.

이 책의 작가는 전문 축산인도 수의사도 동물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전국을 떠돌며 농업, 어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계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틈틈이 기록한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고 했다.

이 책의 배경은 양계장, 양돈장 그리고 개 농장이었다.

 

책의 첫 이야기는 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 농장에서 생긴 일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양계장에서의 경험은 수평아리 폐기, 부리 자르기, 케이지 사육, 인위적 도태와 같이 공장식 축산 현장의 실제 상황에 대해 가감없는 표현으로 전달되었다. 또한 농장 노동자의 노동 환경, 양계 산업을 둘러싼 어두운 현실을 대화와 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종돈장, 자돈 농장, 비육 농장이 배경이다. 위생에 대한 고려나 최소한의 마취 없이 진행되는 거세, 단미, 발치로 인한 소음은 삶의 밝은 면을 보라는 위안과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평생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스톨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모돈의 이상 행동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증체가 지연된 개체를 원초적인 방법으로 죽이고 분뇨통에 폐기하는 일상을 거치며 생명의 존엄에 무뎌지고 죽음의 밝은 면을 보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 외에도 역시 알고 싶지 않지만 수의사로서 알아야 하는 축산 식품의 상품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평소 수의사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동물 진료와 동물 복지 외에도 이주 노동자, 환경 오염, 축산경제 등 다양한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어 우리 식탁을 떠받치고 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 개 농장 이야기는 가슴을 턱 막히게 한다.

작가는 글을 시작하며 정확한 수치로 표현된 통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기 때문에 자신은 통계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개를 1천마리 이상 사육하는 기업형 개농장이 77개, 5백마리 이상 사육하는 곳은 422개나 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다.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개고기 식용 문화는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된 경제 논리와 법규정, ‘개’라는 가축의 법적, 사회적 정의, 개 농장을 운영하는 개인의 신념 등이 얽히고설켜 유지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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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농장에서 연상되는 순간의 냄새와 소리, 장면은 괴롭다. 그래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무겁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고 있다. “너희는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여라.” 성경 창세기의 내용이다.

이 구절과 함께 ‘극도의 권리는 극도의 불의다(테렌티우스, 자학하는 자)’라는 문구로 끝난다. 저자는 이 두 개의 대비되는 문구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 책에 기록된 농장에서는 여전히 신이 부여한 극도의 권리가 행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왜 이러한 지배적 권리를 뒤로 하고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남상섭 (건국대 수의대 수의해부학 교실)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 2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 서평 보러가기

– 3월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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