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구를 연구하는 수의사, KISTEP 김종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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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조정,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체계적인 조사·평가, 관련 예산의 배분과 과학기술 국제협력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생소할 수 있는 기관이지만 과학기술정책, 연구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소입니다.

실험동물전문수의사를 거쳐 KISTEP에서 일하고 있는 김종란 박사는 7일 전남대 수의대에서 예비수의사를 위한 진로특강을 펼쳤는데요, 이날 ‘국가연구개발사업과 보건의료 R&D’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김종란 박사는 KISTEP의 역할과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을 소개했습니다.

수의사로는 처음으로 KISTEP에 입사한 김종란 박사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7일 전남대 수의대에서 특강을 펼친 김종란 박사
7일 전남대 수의대에서 특강을 펼친 김종란 박사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KISTEP에서 일하고 있는 김종란입니다. KISTEP에서 5년차 부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바이오헬스분야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예산 배분·조정, 분야별 투자전략 및 효율화 방안수립 등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KISTEP에 들어오기 전에는 실험동물전문수의사였습니다.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약 6년 정도 실험동물 수의사로 일하면서, 수의대에서 석사과정을, 이후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Q.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어떤 곳인가요?

이름 그대로 한국의 과학기술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 좀 쉽게 와 닿을 것 같아요.

KISTEP은 실제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하는 일반 출연연구기관과는 달리 미래의 사회상과 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미래예측), 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설정하고(정책기획), 그에 따라 정부 연구개발 예산을 어떤 분야에 어떻게 투입해야 할지(예산배분‧조정) 고민하는 기관입니다.

또, KISTEP에서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규 대규모 연구개발사업들이 잘 기획되었는지(예비타당성조사), 현재 진행 중인 정부 연구개발사업들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잘 수행되고 있는지, 그 성과는 어떠한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하기도 합니다.

 

Q. 이 일을 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

실험동물 전문수의사로 일하는 동안 우리나라 첨단에서, 치열하게 보건의료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학부생 때 막연히 알고 있던 ‘연구’나 ‘실험’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며 느끼게 되었던 시기였어요.

병원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치료할 것인지를 탐구하는 연구를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쇼크에 빠져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어떤 상태로 유지시켜야만 신체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회복시킬 수 있는지, 그 최적의 조건을 찾기 위해 돼지를 대상으로 수행되었던 실험들을 들 수 있겠네요.

또 한 마리의 형질전환된 SPF 돼지에서 떼어낸 각각의 장기들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들이 최대한 활용해서 각각의 장기 이식 실험을 했던 것들,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서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환자를 위해 휴대용 ventilator를 개발하고 개에게 적용해서 효과를 보던 연구들입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감명 깊게 기억되는 일들이에요.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수의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었기에, 사람의 필요성 때문에 선택권 없이 인간을 위한 실험의 대상이 되는 동물을 보는 것이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런 연구들을 보면서, 동물실험이 필요악이라는 점을 점점 깨닫게 되었죠.

연구라는 것, 또 동물실험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향하는 과학기술개발 과정 속에서 동물실험이 어떤 포지션에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 저 스스로도 직접 연구를 수행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늦게나마 박사학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과제를 따고, 연구 성과를 관리하고 과제평가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과제 하나하나를 수행하는 것보다 도대체 이런 과제들은 어떻게, 어떤 이유로 기획되는 것인지,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은 뒤에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어요.

막연하게 이런 분야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모교 교수님께서 KISTEP이라는 곳을 소개해주셔서 알게 되었고, 이 기관에 대해 찾아보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과 방향이 맞는다고 느껴 이곳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입사하자마자 배속된 곳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사업을 평가하는 부서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이 목표했던 성과를 달성했는지, 우수한 성과는 무엇인지, 사업 운영체계상의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평가합니다. 이 결과들은 다음해의 예산 배분·조정에 참고 자료가 됩니다.

현재는 제가 바이오 분야 전공자이자 수의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보건의료, 축산‧수의 관련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예산 배분·조정 업무나 투자 포트폴리오 분석, 연구개발에서의 중요한 이슈를 분석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사업’이라고 하면 잘 와 닿지 않을 텐데요. 과기정통부나 복지부, 농식품부, 식약처와 같은 각 중앙부처에서는 큰 정책 방향에 따라 프로그램과 사업을 기획합니다. 각각의 사업은 몇 개의 내역사업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 내역사업들은 수많은 과제로 이루어져 있어요.

보통 연구실에서 교수님들이 수행하시는 연구가 ‘과제’의 단위이고, KISTEP에서 평가를 하고, 예산 배분·조정하는 단위가 ‘사업’입니다.

 

Q. 이 일을 하시면서 수의학 전공자로서의 좋은 점, 그리고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경우 꼭 수의학이라기보다는 바이오 분야의 전공자로서 역할을 하고자 입사하게 되었기에, 이전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실험동물전문수의사로서, 실제 병원 연구소의 첨단 보건의료 연구개발 현장에 있었던 것이 무척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기에 컨텐츠는 이공계를 베이스로 하지만, 이것의 큰 틀을 만들어 갈 때에는 글로, 문건으로 잘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 대해 어려움이 있어요.

사회과학적인 연구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 큰 정책을 보고 인사이트를 갖는 것들에 대해 부족함이 있고, 많은 공부와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ISTEP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직접적인 연구개발이 아닌 연구개발의 방향을 고민하는 분들이시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지났을 기술 분야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 정책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자유로이 논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현재로서는 KISTEP에서 유일한 수의학 전공자이니 만큼, 주변에서 왜 수의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앞에서 긴 글로 이곳까지 오게 된 ‘여정’을 말씀드렸는데, 저도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지, 수의사로의 어떤 역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수의사라는 아이덴티티를 버린 적은 없었어요. 이 기관의 일에 조금 익숙해진 지금은, 다른 이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야라도, 수의학을 공부한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열고, 깊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분야의 통계 분석 자료를 제시하는 형태일 수도 있고, 어느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저 스스로 수의사라는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있는 일을 찾고 싶고, 우리 분야에 있어서, 어느 한 축으로라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수의과대학 재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게 사실 강의주제이긴 했는데, 저는 동물이 좋아서 수의대에 진학했고, 학부생활 초기에는 막연하게 동물원 수의사나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바로 그 분야에서 수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T.O.도 매년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지요.

졸업을 하면서, 제가 지난 본과 4년간 관심 가졌던 분야를 돌이켜보게 되었고, 마침 제 관심사와 기회가 맞닿아 시작하게 된 것이 실험동물수의사였습니다.

학부생 때 짧게나마 연구실에 들어가 선배님들 연구를 서포트하며 경험을 했던 것이 이후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졸업을 하고 주변의 선배님들, 동기들이 찾아가는 진로를 보면서,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부 때, 특히 4학년에 가까워지면서는 매일, 매주 시험 치르기에 바빠 선배님들이 졸업 후 어떠한 진로를 찾아가는지 관심 갖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긴 터널을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갖는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처음부터 나 뭐해야지!’ 하고 정해놓고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신이 아는 정보가 생각보다 편협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진로를 뚜렷하게 정하고 학부생활을 보내는 것도 목표달성의 관점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엔 무척 다양한 길이 있고, 더 잘 맞는 것이 있을 수 있기에, 되도록이면 학부생 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관심 있는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가서 실험을 돕는다거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는 선배들도 찾아보고, 병원에서 인턴도 해보는 등의 경험을 쌓는 것이 되겠지요.

저에게도 아직 어려운 일이지만, ‘어디에서 일을 하고 싶은가?’ 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채윤 기자 jwlee7799@naver.com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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