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멈췄지만‥北접경지 사육돼지 씨가 마른다

살처분 농장은 보상 부족으로 폐업 위기..최농훈 교수 ‘방역 잘 된 농장이라도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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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가 끝났지만 대규모 예방적 살처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발생농장으로 인한 살처분과 수매·도태를 포함하면 경기도에서만 30만두 이상의 돼지가 살처분 될 예정인데다, 강원도 철원까지 수매·도태 정책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과도하게 크다는 문제제기가 업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재입식 전망도 어둡고 폐업 위기에 몰린 농장에 대한 보상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천 돼지농장 진입로에 습기를 머금은 생석회가 도포된 현장 소독약 희석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최농훈 교수는 "수동식 방역기로 농장 출입차량을 모두 소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진 : 최농훈 교수)
연천 돼지농장 진입로에 습기를 머금은 생석회가 도포된 현장
소독약 희석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최농훈 교수는 “수동식 방역기로 농장 출입차량을 모두 소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진 : 최농훈 교수)

`행정구역 단위 대규모 살처분 필요한가` 논란 지속

최농훈 교수, 연천 방역수준 높아져..방비 잘된 농장이라도 살려야

양돈농장에서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은 지난 10월 9일 연천군 신서면 농장(14차)을 끝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통상 4~19일로 추정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가 끝나면서 기존 발생농장으로부터의 수평전파로 인한 추가발생 가능성은 줄어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도높은 수매·도태 정책은 현재진행형이다. ASF가 양돈농장에서 발생했거나 멧돼지에서 발견된 시군의 사육돼지를 선제적으로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과도한 조치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구제역, AI와 달리 직접전파로만 전염되는 ASF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수십 km 범위로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9일 연천 일대의 농장과 거점소독시설 등 방역현장을 둘러본 최농훈 건국대 교수는 “시설이 잘 된 농장은 멧돼지로부터 사육돼지로 (ASF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없을 정도로 방역상태가 좋다”며 방역당국이 보다 탄력적으로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최농훈 교수는 현장 차단방역의 허점으로 소독실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농장이나 도축장에서 출입차량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거나, 반자동 소독기를 사용하는 등 소독약 희석배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농훈 교수는 “도로에 분뇨를 누출하는 차량 등 일부 문제만 제외하면 기존에 지목됐던 차단방역 상의 문제는 대부분 제대로 보완되어 있었다”며 차단방역 수준이 높은 농장까지 예방적으로 살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농훈 교수는 “경기북부의 돼지를 아예 없애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며 “지금이 경기북부 양돈산업 전체의 분수령”이라고 덧붙였다.

연천지역 농장에 설치된 2.2m 높이의 울타리.
연천지역 농장에 설치된 2.2m 높이의 울타리.

살처분 농장 상당수가 폐업위기 처할 것..

이럴 거면 방역시설에 왜 투자했는지 모르겠다’ 한숨

경기도에 따르면, 연천에서 선 수매 후 예방적 살처분(도태) 대상이 된 돼지들은 79개 농가 13만 8천여두다. 10월 30일이 되어서야 예정된 58개 농장 3만 4천여두의 수매를 완료했다.

수매 완료농가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의 진행률은 30일까지 대상두수대비 32%에 그치고 있다. 아직 60% 이상의 돼지들이 ASF가 발생하지 않은 채 살아남아 있는 셈이다.

오명균 연천군 한돈협회 사무국장은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된다고 ‘특단의 대책’이라며 행정구역 안의 돼지를 모두 없애자는 방식은 곤란하다”며 행정구역 단위의 전두수 살처분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연천 지역의 일부 농가가 ‘예방적 살처분 명령 처분 집행정지’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명균 국장은 “살처분 농장의 상당수는 재기가 불가능하다”며 경기북부 북한 접경지역에서 도태된 농장 30~40%가 폐업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살처분으로 겪는 농가의 피해가 정부 보상금만으로는 제대로 보전되지 않다 보니, 방역조치로 인한 부담이 농가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이다. 1만두 규모의 대형 농장이라면 살처분 이후 매출이 정상화될 때까지 수십억원의 손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오 국장의 주장이다.

오 국장은 “6~12개월만에 재입식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돼지를 낳고 길러 출하하여 매출이 발생하는 시기까지 1년반은 걸린다”며 “살처분 보상금으로는 돼지 재구매비용이나 각종 이자를 막기에도 벅차다. 생계안정자금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국 양돈농가 평균에 해당하는 2천두 이상의 농장의 생계안정자금은 월 67만원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연천군 한돈협회가 관내 농장 37개소를 대상으로 부채규모를 조사한 결과 670억원에 달했다.

오 국장은 “우리 농장만 직원 23명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돼지가 없으면 직원을 유지할 수 없다. 사료나 약품 등 전후방 산업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농장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강제 폐업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단방역에 대한 당국의 정책적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평소에는 소독설비, 울타리 등 차단방역에 대한 투자를 농가에게 당부하면서도, 정작 질병이 터지면 농장의 차단방역 수준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같은 시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을 당한다는 것이다.

10월 31일 정오 기준 아프리카돼지열병 현황. 농장 발생(붉은색)은 10월 9일 이후로 멈췄고, 양성 멧돼지 검출(보라색)만 산발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자료 : 돼지와사람)
10월 31일 정오 기준 아프리카돼지열병 현황.
농장 발생(붉은색)은 10월 9일 이후로 멈췄고, 양성 멧돼지 검출(보라색)만 산발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자료 : 돼지와사람)

위험요인 못 밝힌 채 예방적 살처분..재입식 언제 될까 불투명

피해농장에 대한 적절한 보상대책이 중요하다

김현일 양돈수의사회 ASF비상대책센터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특성을 고려하면 행정구역 단위로 예방적 살처분을 대규모로 실시할 필요는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기존 SOP에 규정된 대로 발생농장과 주변 500m 이내 돼지의 살처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현일 센터장은 앞서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키우기보다, 농가 조기신고를 유도하고 대응조치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목한 바 있다.

다만 기 발생농장 기준의 잠복기가 종료됐다 하더라도 발생위험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연천에서도 2차 발생농장(9/18)과 14차 발생농장(10/9) 사이에 잠복기 이상의 시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살처분된 농장의 재입식 문제를 두고서도 우려를 전했다.

김현일 센터장은 “재입식을 하려면 ASF 발생 위험요인이 없어졌다는 판단이 필요한데, 아직 위험요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로서는 재입식을 시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서도 북한 접경지역 양돈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읽힌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7일 발간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현황과 향후 과제’에서 “접경지역을 중점방역관리지구로 지정하여 돼지 사육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목했다.

김현섭 양돈수의사회장은 “(북합 접경지역에) 아예 돼지를 키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재입식 기준에 따라 농가가 제대로 대비한다면 돼지를 기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살처분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 문제를 핵심으로 지적했다. 김현섭 회장은 “정부 방역조치가 과도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정부로서는 위험을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재량권을 행사한 것”이라면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희생된 농가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르던 돼지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한 살처분보상금은 물론 농장 시설의 감가상각, 농장이 기준에 보유한 부채로 인한 손실 등을 제대로 보상하여 농장이 방역조치에 수긍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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