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수의사 칼럼 ①] 플란더스의 개는 과연 흰색의 얼룩덜룩한 무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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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개
쿠로다 요시오 감독의 1975년 작품, 애니메이션 ‘플란더스의 개’

“파트라셰, 보고 싶었어. 널 두고 와서 미안해. 이제 우리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세계 명작 <플란더스의 개>에서 돈이 없어 며칠 간 굶은 소년 네로가 교회에서 얼어 죽으면서 파트라셰에게 한 말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소년 네로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우유배달로 간신히 연명한다. 어느 날 네로는 의식없이 쓰러진 개를 구해 살려내고, 네로와 개 파트라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네로는 그 동네 유지인 방앗간 집 딸 아로아와 친하게 지냈는데, 아로아의 집에 불이나자 아로아 아버지의 미움을 받은 네로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일감이 끊기게 된다. 거기다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고아라는 이유로 아무도 네로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살던 월세 집에서도 쫓겨나 며칠 동안 굶는 가운데, 눈 속에서 아로아 아버지의 거의 전 재산이 들어있는 지갑을 줍자 바로 되돌려 준다. 이 때 네로는 자신은 굶어도 아로아 집에서 파트라셰를 보살펴주기를 바라면서 개를 맡기고 온다. 네로는 혼자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헤매다가 교회에서 얼어 죽는다.

위 장면은 파트라셰가 눈길을 헤치고 네로를 찾아와 마지막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장면이다. 아로아 아버지는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그들은 세상을 뜬 이후이다. 화가가 꿈인 네로는 교회의 루벤스 그림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지만 돈을 내지 못해 보지 못한다. 그림 대회에 출전하지만 상은 그 지방 유력인사의 아들이 받는다. 하지만 천재적인 그림 재능을 알아본 어느 화가가 네로를 찾지만 소년은 이미 죽은 후이다.

아키타와 세인트버나드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서 파트라셰의 모델이 된 아키타(위)와 세인트버나드(아래)

세계적인 작가 위다가 쓴 이 동화는 크리스마스 때 벌어진 이야기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 많은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TV 애니메이션 <플란더스의 개>를 감상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엄마 찾아 삼 만리>, <빨간 머리 앤> 등 1975년 일본에서 쿠로다 요시오가 만든 작품으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많은 어린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아직도 천사들이 네로와 파트라세를 데려가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 파트라셰는 커다란 체구에 펜더 눈모양의 얼룩덜룩한 개로 등장한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개인 아키타와 덩치가 가장 큰 품종 중 하나인 세인트버나드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아키타와 St. Bernard 사진) 하지만 플랑드르 지역에 일반적으로 많이 키우는 개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개와는 달리 부비에 드 플랑드르(Bouvier des Flanders) 종이다.

위다의 작품 안에서 파트라셰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 지방에서 많이 키우는 개로 골격이 크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온순하고 주인에게 충직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수레를 끄는 개라고 나온다. 주인에게 대드는 일도 거의 없어서 이 지방에서 가장 혹독하게 일하는 게 바로 이들 개라고 한다. 그러다 늙거나 병들면 길거리에 버려지기도 하는데 이런 개 중의 하나가 파트라셰이다.

앤트워프 성모대성당
작품 속 네로와 파트라셰가 죽음을 맞이한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네로와 파트라셰는 대성당 안 루벤스의 명화 ‘성모승천’을 바라보며 얼어 죽는다.

플란더스는 플랑드르의 영어식 이름이다. 플랑드르는 북해연안을 중심으로 한 벨기에 북부지역과 인접한 프랑스까지를 일컫는 프랑스어이다. 이런 이유로 나중에 ‘부비에 드 플랑드르’ 품종을 등재할 때 두 국가 모두 서로가 원산지임을 주장했다. 결국 프랑스 벨기에 두 국가 모두 원산지로 인정받게 된다.

벨기에는 원래 네덜란드에서 1830년경에 독립한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융성하게 발전한 나라였다. 특히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종교와 정치사상에 대한 탄압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자본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다.

<플란더스의 개>의 배경도시인 안트베르펜(영어명:앤트워프)는 유럽의 입구로서 17세기의 뉴욕 항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무역도시였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라는 이유로 잦은 전쟁이 일어났고, 여러 차례 지배자가 바뀌기도 한다. 아직도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거래소, 대규모 맥주 양조장이 있는 유럽3대 항으로 불린다.

이렇듯 많은 자본이 쌓이고 자유로운 사상이 보장된 이 도시는 지금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화가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럽 최고의 화가 루벤스를 비롯하여, 루벤스의 후계자인 요르단스, 반 에이크 같은 위대한 화가들과 유명 건축가들을 배출한 곳이 되었다. 지금도 도시 자체가 미술품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네로가 마지막에 죽은 성모 대성당은 건물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이며 그 안에는 예술작품들로 가득한 하나의 미술관이다.

영국인인 위다가 이 지방을 방문한 1871년경에는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벨기에가 식민지를 개척할 정도로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비에드플랑드르
‘플란더스의 개’ 원작자인 영국인 여류작가 위다가 파트라셰의 모델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비에 드 플랑드르(Bouvier des Flandres)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소를 몰고 짐을 나르는 개를 부비에라고 불렀다. ‘Bouvier’는 ‘소’라는 뜻의 고대 라틴어 ‘Bovinus’에서 나온 말로 프랑스와 벨기에 여러 지역의 소몰이 개를 부비에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계화된 현대에 들어 부비에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부비에 드 아르덴느와 부비에 드 플랑드르 정도가 남아있다. 그 중 플랑드르는 1차 세계대전 때 부상병을 구조와 연락책을 맡기도 했고 최근까지 군견으로서 일했다.

부비에 드 플랑드르는 골격이 크고 튼튼하며, 어느 정도 곱슬 거리는 털을 가지고 있다. 몸무게가 40kg나 나가는 큰 몸집의 소유자이다. 색상은 검정색이나 후추 색과 소금색 혼합, 황갈색이 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삽살개랑 비슷하다. 성격은 남에게는 무서워 보이지만 주인에게는 대단히 충직하므로 아무리 힘든 일을 시켜도 대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일생동안 아주 혹독한 일을 한다.

따라서 위다의 동화에서 서술된 내용으로 보아 파트라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애니메이션 속의 세인트 버나드 종보다는 플랑드르 지역의 개인 부비에 드 플랑드르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앤트워프에 가면 부비에 종의 파트라셰와 네로의 동상이 서있다.

성모승천비교
네로가 보고싶어 했지만 돈이 없어 보지 못했던 그림은 루벤스作 ‘십자가로부터의 강하’였다. 하지만 네로와 파트라셰가 죽음을 맞이한 곳은 같은 작가의 ‘성모 승천’ 앞이었다. 네로가 본 성모 승천(왼쪽)과 파트라셰 눈에 비친 그림의 모습(오른쪽)

위다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아름다운 초원과 풍차, 그리고 소들과 소치기 개들을 보면서 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목가적인 풍경 뿐 만아니라, 부비에 드 플랑드르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충직하다는 이유로 죽도록 일만하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서민들의 운명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일거리조차 얻지 못하고 왕따 당하는 소년 네로와 인간에게 쓸모없어져 버려진 파트라셰를 통해 자본주의 전성시대, 사회 안전망이 전혀 없는 사회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준 것이다.

소년이 죽은 다음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어느 화가나 그제야 후회하는 아로아의 아버지, 돈을 내지 않으면 루벤스의 그림을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는 신부, 안타까워 혀를 차는 시민들 모두 죽은 소년 네로와 부비에 파트라셰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그림에 재능이 있으나 돈이 없어서 전시회 구경조차 못하거나 물감도 못사는 아이가 없는지 혹은 남모르게 굶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나중에 남은 이들이 후회한들 소용없으니까.

아직도 안트베르펜의 성모 대성당에는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성모승천’ 그림이 그대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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