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관리 사각지대 놓인 반려동물·농장동물

반려동물, 인의와 항생제 사용 겹쳐..실태조사·가이드라인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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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항생제 내성과 슈퍼박테리아를 주제로 제121회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국제적인 감시체계를 바탕으로 항생제 내성 저감을 위한 실천전략을 고민하는 인의와 달리 수의분야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농장동물의 항생제 사용량은 오히려 증가추세인 데다가 반려동물의 항생제 내성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박용호 서울대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항생제 내성 원탁토론회
박용호 서울대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항생제 내성 원탁토론회

가축-농장종사자-농장환경에 동일한 내성균 검출..농가 위주 사용은 여전

이날 농장동물의 MRSA 분포 현황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윤장원 강원대 수의대 교수는 “가축과 농장환경, 축산 종사자들에 걸쳐 동일한 유형의 항생제 내성균이 검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젖소 우유에서 조사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의 분포율은 0.7%로 일본(1.5%), 벨기에(0~7.4%) 등 선진국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우유와 농장 주변, 축산 종사자들에게서 분리된 MRSA의 유전형이 동일한 것은 문제다.

윤장원 교수는 “원유를 통해 소비자에게 내성균이 전달될 가능성은 낮지만 농가의 동물, 환경, 사람 사이에 내성균의 상호전파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돼지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역본부가 2009년과 2013년 국내 양돈농가 111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개소(19.8%)에서 MRSA가 확인됐다.

돼지와 축주, 농장환경에서 고루 분포했는데 동일한 유전형의 내성균이 검출된 사례가 60%에 달했다.

윤 교수는 “수의사 처방에 따라 세균성 질병에만 항생제를 사용하고, 건강한 동물의 질병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며 “중금속 제제, 소독제 남용으로 인한 내성도 항생제 저항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가축에서의 항생제 사용관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됐지만 처방대상 항생제는 32개 성분에 그치고 있다.

항생제 사용량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식약처와 검역본부가 발표한 2016년 국가 항생제 사용 및 내성 모니터링에 따르면, 연간 축산용 항생제·항콕시듐제 사용량은 820톤이던 2013년 이후 점차 늘어 16년에는 920톤을 기록했다.

동물병원을 통해 유통된 동물용 항생제가 78톤에 그친데 반해, 농가로 직접 공급된 항생제는 879톤에 달했다.


인의와 겹치는 반려동물 항생제 처방..내성관리 가이드라인 시급

매년 동물용 항생제 판매량과 가축·축산물을 대상으로 항생제 내성 표본조사를 실시하는 농장동물과 달리 반려동물의 항생제 내성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선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용 항생제로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느 성분이 얼마나 쓰이는지, 내성 분포가 어떠한지 등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희명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반려동물은 사람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항생제를 사용한다”며 “이미 페니실린 등 기본적인 성분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3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퀴놀론계, 카바페넴계 등의 약재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7년부터 질병관리본부 의뢰로 ‘반려동물, 주변환경 및 사람의 항생제 내성 전파기전 규명’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박희명 교수는 “지난해 동물병원 종사자, 환축,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3천여건의 샘플을 조사한 결과 항생제 저항성이 상당히 높은 내성균들도 분리되고 있다”며 “반려동물 천만시대 속에서 반려동물에 다제내성균이 발생할 경우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용호 서울대 교수도 “3, 4세대 세팔로스포린계 등 반려동물에서 흔히 쓰이는 항생제는 국제기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분으로 지정한 것들”이라며 “반려동물을 접하는 보호자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면역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유럽소동물수의사회가 권고하는 상황별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
유럽소동물수의사회가 권고하는 상황별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

일선 동물병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항생제 내성검사를 의뢰할 수 있지만, 결국 보호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보호자가 검사를 거부하면 경험적인 처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일선 임상수의사들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마루소동물임상의학연구소 황선영 소장은 “일선 수의사들도 항생제 내성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성관리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학계가 한국 상황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럽소동물수의사회(FECAVA), 미국수의사회(AVMA) 등이 소동물 임상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질환별 사용 우선순위를 권고하거나 인의에서 내성문제를 일으키는 성분을 지양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황선영 소장은 “해외에서 내성문제가 있는 특정 항생제 성분이 우리나라 반려동물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한국 상황에 맞춘 연구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희명 교수도 “반려동물의 항생제 내성 실태에 대한 주기적인 감시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임상수의사 연수교육 등을 통해 일선 동물병원에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항생제 내성관리 사각지대 놓인 반려동물·농장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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