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 80%가 소독제 희석법 안다는데‥`맹물소독` 문제 여전

농가·도축장·거점소독시설 가리지 않는 희석 오류..소독 순서·방역기 작동방식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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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시설에서 소독약을 잘못 희석해 사용하는 이른바 ‘맹물소독’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국대 수의대 최농훈 교수(사진)는 23일 건국대 수의대에서 열린 ‘축산현장 방역관리 세미나’에서 국내 축산관련시설의 소독약 희석 실태를 지적하고 시급한 해결과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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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액 부적합 희석문제 여전..AI·구제역 확산 핵심 위험요인

지난해 10월 세미나에서 2017년도 조사결과를 발표했던 최 교수는 이날 2018~2019년초 가금농가, 우제류농가, 도계장, 거점소독시설을 대상으로 벌인 소독제 희석 실태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축산현장(조사대상 수)의 소독제 희석문제는 여전했다. 조사대상 가금농가(99개소)의 67.7%, 소·돼지농가(68개소)의 48.5%, 도계장(26개소)의 61.5%에서 적정 농도보다 낮거나 아예 효과가 없을 정도로 묽게 희석된 소독액이 검출됐다.

축산차량이 몰리는 거점소독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조사대상 거점소독시설(13개소) 중 77%가 구제역에 효과 없는 소독액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AI에 효과가 있는 소독액 희석배수를 유지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최농훈 교수는 “AI·구제역의 수평전파 확산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며 “특히 거점소독시설의 소독약 관리가 허점이라고 한다면 국가 방역이 뚫려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18년 하반기 농식품부가 전국 거점소독시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소독제 희석 관련 안내를 거듭하면서 일부 개선됐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최농훈 교수팀이 올해 1월 거점소독시설 31개소의 소독약 사용실태를 다시 조사한 결과 구제역 대상으로는 42%, AI 대상으로는 55%가 여전히 효과 없는 소독액 농도를 보였다.

소독액 농도를 예전보다 끌어올린 곳이 많았지만, 그나마도 적정농도를 상회한 고농도인 경우도 많아 소독기계의 부식과 사용자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적정 희석농도로 조사된 곳은 농가, 도축장, 거점소독시설을 가리지 않고 10~20% 미만에 그쳤다.

거점소독시설 소독약 희석배수 관리가 올해 들어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부적합 희석 비율이 높았다 (자료 : 최농훈 교수)
거점소독시설 소독약 희석배수 관리가 올해 들어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부적합 희석 비율이 높았다
(자료 : 최농훈 교수)

축산농가 80%가 희석 방법 안다는데..인식과 현실의 괴리 낳는 방역기계 문제

최농훈 교수는 “소독약 희석 방법을 잘 안다고 대답하는 농가가 절반을 넘지만, 실제 조사결과에는 부적합이 훨씬 많다”며 이 차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최농훈 교수가 인용한 농기평의 ‘가축질병대응기술개발 사업 연구보고서’의 201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 농가의 79.1%, 돼지 농가의 86.7%, 가금 농가의 94%가 ‘소독약을 정확하고 희석하는 방법(희석배수/농도)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괴리에는 방역기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소독액을 뿌리면 물만 자동으로 보충되는 ‘반자동식’은 특히 부정확하다. 소독약 농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니 작업자들이 감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소독제를 섞게 되고, 결국 고농도와 저농도 사이를 널뛰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과 소독원액을 설정된 비율에 따라 섞어주는 ‘자동희석’ 방식에도 문제가 지적된다.

최농훈 교수는 “기계가 적정농도로 잘 희석하는지 여부에 대한 품질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납 위주로 공급되는 소독제 종류가 자주 바뀔 때마다 세팅을 조정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료 : 최농훈 교수)
(자료 : 최농훈 교수)

생축 실린 차량에 소독액 뿌려봤자..’ 보기에만 좋은 소독

소독액 희석이 제대로 됐다 한들 소독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독시설마다 기계형태가 천차만별인데다 제대로 약액이 뿌려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

최농훈 교수는 “적정 농도의 소독액이 충분한 시간 동안 뿌려져야 되는데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보기에만 좋은 소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진행방향에 차단막이 없는 설치형 소독기는 차가 지나간 후에야 소독액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앞에만 차단막이 있으면 차량 부식을 기피하는 운전자가 후진해서 기다릴 수도 있다.

지나치게 미세한 입자로 안개처럼 소독액을 분무하거나 하부세척용 노즐이 없어서 주요 소독부위에 소독액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문제다.

생축수송차량의 소독절차 조정 문제도 지적됐다. 생축이 실린 채로 소독액을 뿌려봐야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도축장에 가축을 하차한 이후 세척과 거점소독시설 소독을 거쳐 다음 농장에 가도록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농훈 교수는 “도로에 분변을 뿌리고 다니는 생축운송차량의 불법 개조와 소독 미흡에 대해 일제점검을 실시해야 한다”며 “가축전염병의 핵심 전파위험요인인 만큼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독약 희석문제 전담할 행정력 절실..희석배수 검사기반도 확대해야

당장 농장이나 축산시설의 소독제 희석배수를 점검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최농훈 교수는 “동물약품협회의 동물약품기술연구소에서만 분석이 가능한데, 다른 업무도 굉장히 많은 곳이라 1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라며 “전국 시도 방역기관에서 관할구역 내의 소독약 적정 희석여부를 검사할 수 있도록 시설 구축과 담당직원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소독약 희석농도를 현장에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키트 개발도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최 교수는 “소독약을 희석하는 방역기의 성능기준을 마련하고 인허가 및 사후관리를 담당할 전담 행정조직이 한시적으로라도 필요하다”며 “거점소독시설을 우선으로 효과 있는 방역기가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산농가 80%가 소독제 희석법 안다는데‥`맹물소독` 문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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