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읽어주는 남자 오제영⑤] 내 형제들을 추모하며


1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150624 ojy1
무엇을 읽어드릴까요

칼럼 제목을 “동물원 읽어주는 남자”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것을 읽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아직은 경험도, 글 솜씨도 모자라서 부족하게나마 쉽고 재미있게 동물원의 순기능에 대해 다루고자 노력했다. 동물원, 수족관, 야생동물 그리고 특수동물이라는 생소할지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 대중들이 친숙해지고 더 많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늘의 잡지식 1) 박쥐를 보게 되면 맨손으로는 절대 만지지 마라.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같은 전문가가 있는 곳에 문의하라. 박쥐에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MERS와 같은 인수공통질병이 너무 많고 아직 파악되지 않은 병원체도 많이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150624 ojy2
새끼 박쥐가 귀엽더라도 장갑은 필수

때로는 칼럼이 너무 수의사의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쪽 분야에 후배 수의사들뿐만 아니라 사육 파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오늘은 사담으로 우리나라에서 덜 다뤄지는 동물원∙야생동물의학(zoo and wildlife medicine)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어떻게 이 길을 준비하게 됐는지 써보고자 한다. 추가로 동물들에 대한 몇 가지 재미난 사실들도 소개해보겠다.

오늘의 잡소리)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이메일(jyogoon@gmail.com) 주세요. 🙂  제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사항이라면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50624 ojy3
나의 형제들(어렸을 때)

필자는 일단 동물이 너무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동물들과 함께 자랐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동물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필자가 수의대에 진학한 것은 형제, 자식처럼 함께 자란 두 친구 중 하나가 어려운 케이스로 죽게 되면서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얼마 전 내 곁을 떠난 다른 친구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오늘의 잡지식 2) 앞서 인수공통질병을 언급했는데 이는 질병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또는 사람에서 동물로 전파 가능한 것을 이야기한다. 양쪽 다 아픈 경우, 한쪽만 아픈 경우, 둘 다 보유만 하는 경우 등 나올 수 있는 양상은 다 다르다.

150624 ojy4
동물이 좋아요

동물이 너무 좋다면 관련 분야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외국에서는 그 폭이 굉장히 넓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한정적이다. 어떤 일인지 잘 모르겠다면 수의사, 사육사, 큐레이터, 테크니션, 아쿠아리스트들에게 이메일로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런 후에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의 성향을 파악해 진로를 정하면 되겠다.

야생동물/동물원/아쿠아리움 분야는 공부 외적으로도 자원봉사와 같은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의 잡지식 3) 원숭이의 대표적인 인수공통 질병 중 하나는 허피스바이러스다.(여러 종류의 허피스가 있다). 원숭이 진료를 볼 때 마스크는 필수다. 사람의 허피스바이러스는 신세계원숭이(New world monkey)를 죽일 수 있고 구세계원숭이(Old world monkey)의 허피스바이러스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서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잡지식 4) 거미원숭이(Spider monkey)는 손가락 중 엄지가 없거나 볼록한 흔적만 남아있다.

150624 ojy5
거미원숭이는 엄지가 없다

나는 동물을 직접 치료를 해주고 싶어서 수의대를 택했다. 어렸을 때 수의사의 이미지가 ‘모든 동물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각인됐던 덕분에 이쪽 분야로 뛰어들게 됐다.

사실 수의사는 대부분의 동물에 대해 어느 정도 알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일하는 필드 쪽에서 더 특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종을 골고루 접하기에는 동물원만큼 좋은 곳이 없다.

필자도 종의 광범위함 때문에 처음에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어류로 넓게 접근하고 점차 세분화해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쉽지는 않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잡지식 5) 타조의 친척 중에 깃털이 이상하게 생긴 애들이 있다. 에뮤(Emu)랑 화식조(cassowary)는 깃털이 피부에서 나와서 두 갈래로 나뉘는 특이한 모양을 한다. 어쩜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생물들이 있을까! 깃털모양은 각자 검색해보시라.

150624 ojy6
에뮤(Emu)

앞서 이야기 했듯이 국내는 기회가 많이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직접 해보면 자기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곳 저곳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소동물의 깊이 있는 학문이 좋아서 계속 실습 또는 학회 학생 자원봉사를 했다. 이것이 내게는 수의사로서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유기동물 수의료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니면서 (시험 전날이라도 오기로 갔다!) 얻은 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와 기초적인 보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마음이 맞았던 동기 친구들과 꾸준히 스터디그룹을 하면서 (잘 몰라도) 여러 논문들을 읽었던 경험이 지금의 기회를 주었다.

대동물, 동물원, 말 등 다양한 실습을 다 해본 후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분야를 골랐다.

150624 ojy7
외국에서의 훈련

훈련기회가 많은 외국 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다. 오랜 기간 만들어온 체계적인 트레이닝 과정을 제공하므로 다녀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수의사, 사육사, 테크니션 쪽 실습을 가야 동물들과 일할 기회가 있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니 굳이 강조하지 않겠다. 요점이라면 프로페셔널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쟁률이 엄청나니 떨어져도 사냥에 실패한 고양이 마냥 쿨하게 넘기고 다시 지원할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오늘의 잡지식 6) 영화 ’쥬라기월드’에는 카펜타닐(carfentanil)을 쓰는 장면이 있다. 흰 코뿔소(2000kg 전후)에서 사용되는 양의 다섯 배를 넣는 무시무시한 용량을 보여줬다. 실제로 카펜타닐은 굉장히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약물이지만 우리나라 동물원에서도 사용법을 숙지한 수의사들에게 꼭 필요한 약물이라고 생각한다.

150624 ojy8
동물을 위해 환원되는 수익

한국에서 동물원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기 때문에 관련 종사자로서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

우리나라 동물원을 비판하는 기사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동물을 좋아해서 간 경우가 많지, 학대하려고 간 경우는 없다. 재정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도 돈이 부족해서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입장료가 단적인 예다. 한국 동물원의 입장료는 외국에 비해 싸다.

대중들의 관심과 지원이 있을 때야말로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지금이 동물원/수족관들이 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과도기라 생각한다.

오늘의 잡지식 7) 오리너구리는 이름처럼 생김새도 짬뽕이다. 오리 주둥이에 비버의 꼬리, 그리고 수달의 발모양을 가진 이상한 친구다. 포유류 중에서는 유일하게 알을 낳는 동물이다. 게다가 뒷다리에는 찔리면 중독되는 가시도 달려 있어서 마치 뱀도 섞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150624 ojy9
한 개체를 위한 최선의 노력

나는 수의사로서 큰 그림(야생에서의 개체수의 유지)보다는 작은 그림(하나의 개체)을 보며 눈앞에 당장 있는 동물에 매달리는 편에 속한다.

환경 탓이든 뭐든 간에 아프면 정성껏 돌봐 주는 것이 내 우선사항이다.

동물원이 잘되어야 그 돈이 동물들에게 돌아가고, 더 나아가서는 야생에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의사는 퍼즐을 맞추듯이 진료한다. 퍼즐 조각(혈액검사, 엑스레이 등등)들이 더 많이 제공될수록 정확한 진단이 나올 수 있다. 보호자 입장에서 말한다면 “돈 주고 검사 다 했는데 왜 다 정상이야!”가 아니라 “정상이라 다행이다!”가 올바른 자세인 것 같다.

동물원 입장에서는 동물원 수의사들이 보다 많은 퍼즐 조각을 모을 수 있게, 그리고 애초에 퍼즐 조각을 모을 필요가 없어지도록 사육환경 자체를 잘 제공할 수 있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동물원과 수족관에 모이면 좋겠다.

150624 ojy11
나의 형제들(할아버지가 된 후)

마지막은 다시 사담이다. 얼마 전 친구 수의사가 보내준 내 자식 같은 강아지의 검사결과를 보면서 크게 낙담했다. 보호자로서는 인정하기 힘들지만 수의사로서는 안락사 대상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타지 생활로 장례에조차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비통했다. 20년 같이 해왔으니 떠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이긴 했지만 마음의 준비는 아무리 해도 안되나 보다.

내가 수의사가 될 수 있게 해준 우리 두 강아지가 고맙고, 무척이나 생각나는 밤이다.

[동물원 읽어주는 남자 오제영] 지난 칼럼 보러가기

ojyoung profile1

[동물원 읽어주는 남자 오제영⑤] 내 형제들을 추모하며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