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 수가제·공시제,준비없이 시작하면 혼란만 가중

표준수가제, 공시제 모두 '진료항목 표준화' 선행 필요

등록 : 2018.08.01 12:44:36   수정 : 2018.08.02 00:28:29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 농해수위 위원이 확정됐다. 농해수위는 수의사법 소관 상임위다. 현재 국회에는 일부 항목에 대해 농식품부가 진료비를 정할 수 있도록 한 수의사법 개정안(진료비 표준수가제)과 동물병원 진료비 고지·게시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안(진료비 공시제)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다.

농식품부 역시 조만간 동물보호단체, 동물관련협회 등을 초청해 동물병원 진료비 문제를 놓고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회와 정부가 움직이면서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이에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와 공시제의 개념, 해외사례,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다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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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원유철 의원(진료비 자율공시제 수의사법 대표발의), 정재호 의원(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 수의사법 대표발의)

1.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 실시 국가 단 3곳…. 이마저도 ‘수가제 폐지’ 압력받는 중 

수가제 가장 잘 운영되는 ‘독일’의 경우, 수가의 3배까지 진료비 청구 가능 

우선,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수 있다. 현재 동물진료 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인데, 3개 국가 모두 EU(유럽연합)로부터 수가제 폐지 압박을 받고 있다. ‘자유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 과거 동물병원 진료 표준수가제를 실시했던 국가도 EU의 압박으로 수가제를 폐지했으며, 중국에서도 ‘시장의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원칙 아래 동물진료 수가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영국은 아예 ‘동물진료 수가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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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비 수가제를 가장 잘 운영하는 독일의 경우, 1940년대부터 수가제가 시작됐다. 즉 80년 가까운 시기 동안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온 것이다.

독일의 수가제는 GOT로 불리는데, 현재 약 800여 개의 개별 동물의료 서비스에 대해 GOT가 적용되고 있다.

독일의 동물진료 수가제(GOT)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수가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됐다는 점이다. 서비스의 난이도,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 출장 여부, 지역별 상황, 물가, 생활 수준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 수가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다.

수가제 도입으로 오히려 ‘보호자 진료비 부담’ 증가할 수 있다

’1배~3배’라는 범위의 수가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3배를 초과한 금액을 청구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동시에 수가 미만의 금액을 받는 것도 금지됐다. 즉, 최저수가가 설정된 것이다.

이러한 최저수가는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는 동물병원 간 자율경쟁에 의해 반려동물 예방접종비를 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 사이 금액에서 보호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수가제가 도입되어 ’2만원’으로 예방접종비 수가가 정해지면 ’5천 원에 예방접종을 받던 보호자’는 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서울 및 전국 6대 광역시 소재 동물병원 25개소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백신접종비용 최저가는 모두 5천원이었다. 최고가에서는 질병별로 차이를 보였지만 평균가는 2만원 내외에 분포했다.

수가 인상 문제도 발생

현재 공보험(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어 있는 사람 의료비 역시, 매년 의사협회와 정부가 ‘수가 인상’을 놓고 큰 갈등을 겪는다.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가 도입하면 수의계와 정부의 ‘수가 협상’에서 갈등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사회, 경제, 문화 등 국가 전반에서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져 있는 독일도 1977년, 1988년, 1999년, 2008년에 이어 지난해 7월, 무려 9년 만에 12%의 동물병원 진료비 수가 인상이 있었는데, 항상 수가 인상 논의가 어렵기 때문에 동물진료비 수가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한다.

즉, 일방적으로 수의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수가제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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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표준수가제 도입 ‘수의사법 개정안’ 주요 내용

2.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 

‘중성화수술’에 포함된 진료행위, 동물병원마다 달라 

진료항목 표준화 없이 공시제 도입할 경우 ‘혼란만 가중’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의 ‘대안’으로 진료비 공시제가 언급된다.

공시제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현재 발의된 수의사법(원유철 의원 대표발의)은 ‘동물병원 개설자가 진료비를 동물 소유자 등이 알 수 있도록 고지·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식당, 미용실처럼 개별 동물병원이 진료비를 게시하는 ‘자발적 진료비 공시제’다.

하지만, 공시제 도입을 위해서도 전제 조건이 있다. 동물병원별로 다른 ‘진료 항목’을 먼저 표준화하여 통일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호자에게 혼란만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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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암컷 중성화수술’에 대해 A 동물병원은 수술비용만 생각할 수 있고, B 동물병원은 수술 전 검사, 수술비, 수술 후처치 비용을 모두 포함한 가격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시된 가격과 실제 보호자가 부담하는 금액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진료항목의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수의사가 시행하는 모든 진료행위를 분석하고, 각각의 진료행위에 코드를 부여한 뒤, <암컷 중성화수술은 A1+B3+C5로 이뤄진 행위를 의미한다>라는 정의가 내려져야 공시 가격에 혼란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진료항목 표준화’는 표준수가제 도입을 위해서도 필수다.

결국, 수의사의 진료항목 표준화 없이 수가제, 공시제를 시행할 경우 혼란만 가중할 확률이 높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전무는 지난해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 토론회’에서 “진료항목 표준화 없이 공시제를 도입해봤자 소비자와의 진료비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수의료가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 없이 정부가 수가를 규제하겠다는 것도 넌센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단순 공시제의 경우, 동물병원 시설, 수의사의 실력, 수술장비와 수술방법 등에 대한 차이도 반영하기 어려워 동물의료서비스의 질을 하향시킬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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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관련 비용 항목별 ‘비싸다’고 응답한 참여자 비율
(자료 : 소비자교육중앙회, 2016년)

한국 동물병원 진료비, 미국·독일에 비해 오히려 저렴한 편 

반려동물 사보험 활성화 국가 중 표준수가제 도입 국가 없어 

하지만,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진료비 부담은 상당…. 해결 방안 찾아야 하지만 ‘준비 없는 제도 강행’은 악수 될 수도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지난 2016년 20세 이상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동물병원 진료비용이 비싸다고 응답한 참여자가 70.7%에 달했다.

이처럼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느끼는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은 상당하다. 보호자의 진료비 부담완화 방안을 찾자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통계와 사전준비 없이 시행하는 정책은 혼란만 가중하고, 오히려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는 잘못된 전제로 발의되는 법안과 시행되는 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는 “각 국가의 소득수준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동물병원 진료비는 타 국가에 비해 높지 않으며 오히려 낮은 편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사보험 활성화를 위해 수가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영국, 일본, 미국 등 반려동물 보험이 우리나라보다 잘 정착된 국가들은 모두 ‘표준수가제’가 아닌 ‘자율수가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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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 발췌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수행의 자유 위배’ 여부도 꼭 확인해야

마지막으로,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공시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수행의 자유에 어긋나는지 여부도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병원 진료비 수가제는 직업의 자유 중에서 ‘직업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에 해당한다.

수가제뿐만 아니라 진료비 공시제 역시 수의사의 직업수행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이다. 단, 보고서는 “동물병원 수가제는 공시제와 비교하여 수의사의 직업수행 자유에 대한 포괄적인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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