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삶은 크고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우리는 때론 멈추기도, 달리기도,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하며, 바른 방향을 찾아갑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은 하루동안 선배님들의 모험에 동행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 [어드벳(vet)쳐]에서 우리들의 특별했던 하루를 전합니다.
국내에는 다양한 병성감정 기관이 있다. 국립기관과 지자체 진단기관을 비롯해 전국 10개 수의과대학, 민간 연구소 및 기업에서도 병성감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병성감정은 농가에서 의뢰받은 가검물을 분석하여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확산을 방지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일련의 진단검사 행위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내 가축방역 및 검역 체계를 강화하고, 축산업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옵티팜은 2024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시행한 질병진단 정도관리에서 민간병성감정기관 부문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선정한 민간 진단기관 부문 우수기관이면서, 이종장기 R&D 연구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인체 장기이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종장기이식 연구용으로 특별히 생산된 형질전환 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로서 이곳 수의사분들의 역할이 더욱 궁금해졌다. 청주시 오송읍에 위치한 ㈜옵티팜을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Part 1. 유전자 검사실에서 만난 수의사
㈜옵티팜 동물임상평가센터에 들어서자 전실, 중앙실험실, 혈청검사실, 유전자검사실, 세균검사실, 부검실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연구원들의 일도 분업화되어 있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의뢰된 검체를 분석하며 병성감정을 진행하고 있어, 체계적인 분업이 잘 이루어진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수의사 선배님을 찾아간 유전자 검사실에는 가검물로부터 추출한 유전자를 증폭하는 real-time PCR 4대, conventional PCR 5대 및 전기영동 장치 등 분석에 필요한 일련의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 곳에서 real-time PCR 검사 결과에 대해 논의 중이던 ㈜옵티팜의 동물임상평가센터 팀장 신성호 수의사를 만났다.
그는 돼지 임상수의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으나 ㈜옵티팜에 입사하면서 동물진단업무로 진로를 변경했다. 팀 내에서 실험실 운영에 대한 총괄관리, 검사 시스템 감독 및 의뢰 건 결과물에 대한 검증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양돈 실무 경력을 쌓은 경험이 있기에 현장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있다. 각 질병 검사가 왜 필요한 지, 검사 결과가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잘 알고 결과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농장동물의 질병 진단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는데, 정기진단검사를 통한 병성감정과 직접 생체 또는 부검을 통한 병리학적 진단으로 나뉜다.

㈜옵티팜에는 1년에 약 10,300여건의 검사가 의뢰되고 있다. 하루에만 40~60개 농장에서 검사를 의뢰한다. 혈청검사 시료 개수만 월 9,000개가 넘는 이곳은 가검물에 대한 진단검사를 가능한 24시간 내에 완료해 결과서를 발송한다.
그렇다 보니 내가 팀장님을 만났을 때도 실험실은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Q. 팀장 수의사로서 하루 일과가 어떤 가요?
아침에 출근해서는 실험실 장비들이 잘 유지·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전화업무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현장 수의사분들과 진단 결과값에 대한 부분을 상의하거나 각종 고객 응대를 합니다. 가령 고객이 어떤 질병이 의심된다고 의뢰할 때 어떤 가검물을 채취하여 우리에게 보내줘야 하는지 알려드려야 하죠.
그리고는 회사에 진단 검사 프로세스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관리, 감독하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질병 진단 항목들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오전 9시반부터 업무를 시작하는데 약 1시간 정도면 접수가 다 들어옵니다. 의뢰 건을 점검하고, 가검물에 대한 적정성과 검사항목에 대한 적정성을 판단하죠. 검사 결과가 나오면 내용을 검증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Q. (공통질문) 돼지 임상수의사에서 옵티팜의 질병진단 수의사로 일을 바꾼 후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나요?
임상 수의사로서는 현장에서 진단하고 컨설팅하면서 개선되는 것들을 눈으로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진단 수의사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됩니다.
임상수의사처럼 육안으로 현장을 보진 못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떤 질병이 어떤 지역에 유행 중이고 어떤 방향으로 전파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이 가능해지는 거죠. 진단분야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는 것들이 많습니다.
양돈수의사의 꿈을 갖고 현장에 갔었지만 지금 자리가 훨씬 더 만족스럽습니다.
Q. 수의대생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농장동물 수의사는 먹거리 산업의 일원이지만, 경제성을 떠나 국민의 건강과 보건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학생들이 이러한 관점으로 수의사의 영역을 확대하여 이해하고 이 업무에 접근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어떤 수의사는 반드시 해야 할 역할들입니다. 질병 진단에 전문성을 갖춘 수의사가 담당해야 할 일들이죠. 그럼에도 졸업생들이 그런 분야로 많이 진출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낍니다.
* *
그는 비록 현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는 아니었지만, 항상 현장과 가까이 있으며 현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질병을 진단하는 수의사였다. 그는 비임상과 임상의 경계에서 매일 국내 농가의 질병을 막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질병 진단 수의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일정한 프로세스를 따르면서 다양한 검사와 연구를 수행해야 하므로 꼼꼼한 성격과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하다. 농장을 방문하여 직접 치료하고 컨설팅하는 것보다 실내에서 질병의 발생 원인을 연구하고 예방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신성호 수의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옵티팜에 가검물을 의뢰하러 온 황재웅 수의사를 만났다.
Part 2. 매일 여행을 떠나는 수의사
황재웅 수의사는 서울사료 솔루션팀장으로서 거래처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가금수의사다. 정기적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양가들에게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닭의 생애주기별 사양관리를 기본으로 질병 및 영양도 함께 관리한다.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진단할 수도 있지만,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병성감정이 필수적이다. 오늘도 농장에서 컨설팅을 하고 가검물을 의뢰하기 위해 옵티팜에 방문했다고 한다. 특히 옵티팜은 다른 병성기관에 비해 결과가 매우 빠르게 나오기 때문에 옵티팜을 이용한다고도 덧붙였다.
황재웅 수의사에게 농장동물 수의사의 삶에 대해 질문했다.

* *
Q. 하루일과가 어떤 가요?
가금수의사는 농장에 직접 방문해야 하기에 병원에 있기보다 농장으로 바로 출근하게 됩니다. 농장마다 미리 약속을 잡고 방문하게 되니 보통 정해진 일정으로 일을 하죠.
농장동물의 경우 진료나 컨설팅을 기다리기보다 본인의 의지에 맞추어 일정을 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평소에는 정기적인 일정으로 컨설팅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고, 진료나 컨설팅 요청 연락을 받게 되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하는 식이죠.
소동물 임상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일 수도 있겠네요.
Q. (공통질문)가금수의사로서의 진로를 택하기 전과 후 예상과는 다른 점이 있었나요?
소동물임상을 위해 동물병원에서 인턴으로서 일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병원이라는 공간이 답답했고, 넓은 필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향했죠. 소, 돼지, 닭 중에서 고민을 하다 가금수의사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고 지금처럼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울만한 기회나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애로사항이었어요. 소동물은 인턴십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세미나, 컨퍼런스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데 농장동물은 아직 학습이나 교육에 대한 체계가 미흡하여 기초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3~5년 정도의 수련을 잘 이겨낸다면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옵티팜이라는 병성기관에 많은 검사를 의뢰하여 결과를 확인하고 분석하면서 가금수의사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10여년 전에 비해 축종을 정해서 전문수의사로서 활동하려는 경향이 증가했습니다. 병성감정을 통해 진단을 하는 것은 매우 발전적인 모습이죠. 제가 가금수의사를 시작했던 시기보다 현재는 역량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고 무엇보다 가금수의사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아쉽기만 합니다.
현재는 매일 농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여정이 여행 같기도 합니다. 전국을 다니며 농가에 들르는 김에 각 지역에 유명한 맛집들을 찾아가기도 하죠. 유동성 있는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고 가정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 것은 가금수의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
하루 종일 실내에서 일하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지거나, 전국을 활보하며 활동적인 삶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농장동물 수의사는 적성에 맞는 직업일 수 있다. 실제로 농장동물 수의사는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며 현장에서 직접 동물을 진료하고 농가와 협력하는 등 활동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농장동물 수의사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농장동물 수의사의 수가 현저히 부족하여, 효율적으로 경력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농장동물 수의사 유입을 늘리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동물 컨설팅 수의사는 실내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것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일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특히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또한, 고정된 일정보다는 스스로 스케줄을 조정하며 유동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황재웅 수의사는 학생들에게 “MBTI도 다양하듯이 수의사도 각자의 성향에 맞는 분야가 있을 테니 진로의 폭을 넓혀달라”고 당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점심 이후에는 오후 3시에 있을 자돈 부검에 참관하기 위해 스크럽복으로 갈아입었다. 부검실에 들어가기 전 방역복, 장화, 마스크를 모두 단단히 착용하였다.
이는 의뢰된 사체에 확인되지 않은 감염성 병원체가 있을 가능성을 감안하여 부검을 참관한 내가 다른 장소로 병원체를 운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역 조치이기도 하다.
Part3. 부검실에 들어가다
농장에서 신경증상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개체들이 발생하여 그중 한 마리가 의뢰되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처럼 보이는 패들링을 하던 개체였다.
이 신경증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진행됐다(부검 사진은 서술로 대신하겠다).

부검 담당 수의사는 내부 장기의 병변을 보고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항목 선정을 해야 한다. 각 내부 장기의 병변 정도를 확인하면서 검사에 필요한 장기를 채취한다. 관절과 근육을 보며 이상여부를 확인한다. 여기까지도 문제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목덜미에 주사한 약제가 간혹 뇌실 쪽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후두골과 환추(atlas) 사이도 확인했지만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톱으로 두개골을 6각형으로 잘라서 대뇌를 노출시켰다. 3겹의 뇌막 중 경질막까지 제거하면 그제서야 뇌막하 공간의 염증삼출물 증가로 뇌 주름에서 이랑과 고랑의 경계가 흐려지게 되는데, 부검 당시에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 정확한 감염 여부 파악을 위해 채취한 장기는 항원검사 및 세균배양검사로 넘어가게 됐다.
부검 담당 수의사는 세밀한 증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력이 필요하다. 동물 사체를 다루는 데 거부감이 없어야 하며,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부검실을 나온 후, 부검실에 가지고 들어갔던 휴대폰을 소독하고 환복을 했다. 그렇게 옵티팜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김현일 대표님을 만나러 갈 준비를 마쳤다.
회사 대표가 된 수의사와 옵티팜의 형질전환돼지들을 다룬 2편(바로가기)으로 이어집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 프로젝트 ‘어드벳쳐’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최윤서 기자 wendy224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