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임용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5년 3월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내과학 교수로 새롭게 임용된 유민옥입니다.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서울대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고 지내왔는데요, 제가 이 학교에 다시 교수로 돌아오게 되어서 정말 감회가 새롭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기대돼요.
Q. 학부와 대학원, 임상교수를 거쳐 모교에 교수로 임용되신 만큼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학생으로서 많은 교수님들께 배우고, 치열하게 공부해 왔던 모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책임감도 크고요. 후배 수의사들이 임상 현장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특히 제가 겪었던 고민이나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에게 더 현실적인 조언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Q. 내과학을 전공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소동물 내과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본과 4학년 때 동물병원 로테이션을 돌면서였어요. 병원 로테이션 때 다양한 과를 도는데, 모든 과가 재미있었지만, 내과가 가장 흥미로웠어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느껴지면서 공부 욕심이 불쑥 생겼고, 더 알고 싶고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들었어요. 내과는 흔히 ‘쉬운 과목’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분야예요. 보호자분이 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단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이걸 조합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꼭 퍼즐 맞추기 같아요. 그래서 마치 탐정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 성향과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박사과정과 VIP동물의료센터에서의 임상 경험이 현재의 교육과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특히 임상 수의사로서의 경험이 학생 교육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박사과정 동안에는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리퍼 케이스, 즉 2차 진료 의뢰로 오는 중증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됐어요. 일반 동물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한 질환이나 복잡한 케이스가 많았죠. 하지만 이런 케이스만 접하다 보면 임상의 전반적인 감각을 기르기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VIP동물의료센터 내과 과장으로 일했던 경험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곳에서는 예방접종을 받으러 온 동물의 보호자와의 첫 만남부터, 어린 반려동물의 건강검진 등 일상적인 진료 케이스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보호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법도 더 배울 수 있었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한 판단력도 키울 수 있었어요. 지금은 이 모든 경험이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도 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보호자와 더 잘 소통할 수 있다’ 같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점이 정말 좋아요.
Q. 전공하신 수의내과학 분야에서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연구 주제나 임상 영역은 무엇인가요? 향후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박사과정 때 혈액을 이용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연구를 했어요. 그때부터 ‘질병을 좀 더 빨리, 조기에 발견할 수는 없을까?’라는 관심이 계속 이어졌죠. 지금은 특히 심장내과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심장병은 보통 병이 꽤 진행된 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치료가 어렵고 회복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그래서 저는 심장 질환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사전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지금은 사람의 심장 질환처럼, 반려동물도 질환의 유형이나 원인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유전자 기반 진단도 함께 보고 있고요. 실제로 난치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축이 오면 유전자 변이 분석을 통해 원인을 찾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또 요즘은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내성균 감염 사례가 늘고 있어서, 기존 항생제 외에 어떤 대체 치료 방법이 있을지도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단순히 이론적인 연구보다, 임상 현장에서 마주하는 실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저는 진료와 연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료 중에 생긴 궁금증이나 문제의식을 연구로 확장해 나가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Q. 최근 반려동물 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내과 분야에서도 새로운 흐름이나 도전 과제가 있을까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수의내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의내과학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게 느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MMVD(점액종성 승모판막 질환) 같은 경우, 예전에는 대부분 약물치료 중심으로 접근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심장 수술이나 시술 장비가 도입되면서 훨씬 다양한 치료 옵션이 생겼죠. 종양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엔 항암제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전기 항암기술, 색전술, 방사선 치료 같은 고도화된 치료 방법들이 도입되고 있어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는 거예요.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단순히 소화기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과도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식이, 영양, 장내 환경까지 포함해 전체적인 신체 상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내과학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줄기세포 치료를 해왔는데, 요즘은 엑소좀(Exosome) 치료 같은 새로운 방식도 많이 연구되고 있고, 전국적으로도 이런 시술들이 확산하는 추세예요. 이처럼 내과 진료 역시 기술과 연구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다양하고 정교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느껴요.
Q. 임상 현장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사실 모든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동물병원에 내원하지만, 많은 보호자들이 각자의 사연과 간절함이 있거든요. 그래서 보통 처음 만나는 순간이 기억에 남고, 이후 보호자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들, 환자와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이전에 Acromegaly가 있었던 고양이 환자가 있었는데, 혈당 조절이 잘 안된다는 이유로 인슐린 저항성을 의심해서 전원되었던 아이였어요. 의뢰병원 선생님께서, 당뇨 조절 안 될 때 인슐린 저항성을 의심하는 과정까지를 정석대로 진행해 주신 상태였어요. 저희도 추가적으로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이후 인슐린 저항성 유발 질환 감별 검사들을 진행해서 결국 acromegaly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겉보기엔 아주 평범한, 말단 비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이다 보니 주변에서 놀랐지만, 사실 acromegaly는 시간이 꽤 지나야 외형적인 변화를 거치는 질환이긴 합니다. 이후 치료 방향을 두고 보호자분과 정말 많은 논의를 나눴어서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약물 치료를 해 볼 것인지, 방사선 치료를 해 볼 것인지, 수술적인 방법을 시도할지에 대해서 보호자분과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많은 논의를 거쳤고, 결국엔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는데 안타깝게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과정을 보호자분과 함께 겪으며 정말 많은 감정이 오갔던 것 같아요.
내과 주치의는 단순히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처음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지막을 함께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호자분들도 저희를 단순히 진료만 보는 수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함께 돌보는 동반자(companion)로 여겨주시더라고요. 힘든 치료 과정을 거쳐 결국 환자가 스스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그만큼 기쁘고 보람찬 순간도 없어요. 그런 경험들이 내과라는 분야를 더 애틋하게 만들고, 계속 이 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Q. 입·퇴원과 재발을 반복하던 환자의 용혈성 빈혈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결국 가정 방문까지 하셨는데요, 당시 그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와 현장에서의 발견이 어떻게 진단에 실마리를 제공했는지 직접 들려주신다면 좋겠습니다(관련기사 : ‘왜 집에만 돌아가면 다시 아프지?’ 가정방문까지 한 서울대 동물병원 수의사들)
지역병원에서는 급성 빈혈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면역매개성 용혈성 빈혈을 의심하고 치료해 봤는데, 개선이 되지 않고, 희한하게 병원에서는 괜찮은데 퇴원만 하면 빈혈이 반복해서 발생한다는 히스토리를 가진 환자였어요. 혈액 도말상 특징적으로 산화적 손상에 의한 용혈성 빈혈의 모습들이 관찰되어서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처음에는 유전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부터 의심했어요. 미국 대학 교수님께 부탁드려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산화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과 같은 다른 물질들에 대한 검사들도 진행했습니다. 보호자 문진상 특별한 것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는 괜찮다가 퇴원만 하면 바로 증상이 다시 나타나서 응급 내원을 하는 일이 반복되자 집에 산화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병원 입원 기간을 길게 하면서 증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해 보고, 저희 집에도 데려가 보고, 보호자 친척 집에도 데려가 보면서 테스트를 해 본 후에 마지막에 보호자분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보호자분께 동의를 구하고 보호자분 집을 가정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환경적 요인이 의심되는 친구들이 있으면, 닥터 하우스처럼 집에 가봐야 하나 우스갯소리로 말했었는데, 실제로 가정 방문을 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에 원인을 파악하고 환자가 반복되는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경험이 저에게도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Q. 수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특히 내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내과는 정말 매력적인 과목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해도 끝이 없어서 힘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평생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중요해요. 책만 보는 것보다도 실제 임상 케이스를 겪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고, 보호자와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저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문을 갖고, 자기 의견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본인만의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본기가 탄탄한 수의사를 키워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지식만 많은 수의사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보호자의 감정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하고 건강한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학생들이 책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현장 경험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수의사가 되길 바라요. 봉사활동도 좋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가원 기자 wjsrkdnjs52@snu.ac.kr